파우치, 가방, 카펫, 커튼, 앞치마, 발 매트, 패드를 만들며 기초적인 재봉틀 기술과 바느질의 기본기를 익혔다. 그러고 나서 파자마, 원피스, 블라우스를 만들며 옷 만들기의 기본적인 순서와 원리를 알아갔다. 주말에 큰 도서관에 가도 재봉틀, 손바느질, 퀼트, 재봉틀, 옷 만들기, 패턴에 관한 책만 읽었다. 비슷해 보이는 작품도 작가마다 순서나 방법이 달랐다. 크기를 늘리거나 줄이는 법을 공부했고 기존의 패턴을 변형하는 방법을 알기도 했다. 책에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지 못하면 동영상을 보기도 했다. 동영상은 제작의 전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어 내가 하는 과정과 비교가 쉬웠다. 공방에서도 모두가 같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옆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묻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었다. 새롭게 알게 된 재봉기술이나 원단 정보, 패턴 정보를 공유했다. 서로 시행착오 경험을 이야기하며 책이나 동영상에서는 보지 못한 새로운 정보를 알기도 했다.
선생님의 샘플이 없이 책과 동영상만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자 공방식구들은 다양한 작품에 도전했다. 남편의 티셔츠나 바지를 만드는 분, 집에 필요한 큰 카펫을 만드는 분, 차 방석을 만드는 분, 주방 커튼을 만드는 분, 베개나 쿠션을 만드는 분 등 각자 필요한 것을 원하는 크기, 원하는 원단,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모두 공통적인 목적이 있었는데 바로 자녀들이었다. 아들이나 딸이 입을 옷을 만드는 일은 마치 우리에게 주어진 필수 임무처럼 최선을 다했다.
“이거 우리 아들한테 어울릴까요?”
“우리 딸 입으면 너무 좋겠다.”
“우리 아들 주려고 만들고 싶어요.”
“이 원단이 우리 딸 얼굴하고 맞을 것 같은데.”
“우리 아들이 딱 좋아하는 디자인이에요.”
“우리 딸이 긴 원피스를 만들어 달래요.”
대화하고 있으면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그분들의 아들, 딸을 여러 번 만난 느낌이었다. 우리는 재봉틀 앞에 앉아서 옷을 만들면서도 자녀를 키우며 겪었던 에피소드, 자녀를 키우는 철학이나 원칙, 현재 자녀가 하는 일과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옷이 어울릴지 함께 고민했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프릴 원피스를 완벽히 숙지하자 바로 서연의 원피스를 만들기로 했다. 서연이에게 어울릴 만한 스트라이프 무늬에 활동성과 흡수성이 좋은 다이마루(신축성 있는 원단) 면 원단을 골랐다. 성인 패턴에서 상의와 소매의 길이를 조금 줄여 재단했다. 재봉틀에 앉아 옷을 입은 서연이 모습을 상상하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드디어 원피스가 완성되었다. 아직 서연이가 집에 올 시간이 멀었고 원단도 조금 남아서 원피스와 세트가 되도록 손가방도 만들었다. 손가방은 예전에 했던 지퍼 파우치에서 끈만 달면 된다. 그렇게 완성품들을 바라보니 뿌듯하고 기뻤다. 혼자 만족하고 있는데 서연이가 왔다.
“와, 엄마 너무 예쁘다. 내 옷이지? 가방도 있네?”
진짜 마음에 들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혼자 좋아하는 나를 기쁘게 하려고 한 말인지 몰라도 서연이는 바로 옷을 입고 가방도 멨다. 다행히 치마는 내가 생각한 길이감 그대로 딱 떨어졌다. 반소매가 약간 길어 보였다. 서연이에게 잠시 벗어보라고 하고 소매를 한단 더 접어 올려 재봉했다. 다시 입으니 모든 게 다 적당했다.
옷을 입은 서연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흰 바탕에 남색 스트라이프 무늬가 있어 초록과 어울릴 것 같아 나무와 풀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엄마는 디자이너이자 사진작가고 서연이는 모델이었다. 온종일 옷 만드느라 밥도 대충 먹으며 재봉틀 앞에 앉아 있었지만, 서연이가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런 것은 아무렇지 않았다.
서진이에게 어울리는 티와 바지도 만들어 주었다. 서진이는 아예 원하는 사항을 주문한다.
“나도 아빠처럼 더울 때 티셔츠 지퍼를 팍 내리고 싶은데 저렇게 생긴 거 만들어 줘.”
“주머니가 여기에도 2개 있고 다리에도 2개 있는 바지 만들 수 있어?”
“모자가 달린 티셔츠인데 앞에 손을 넣으면 손이 딱 만나지는 그런 주머니로 만들어 주면 안 될까?”
“두꺼운 건 싫고, 색깔도 검정이나 남색이면 좋겠고 길이는 딱 여기까지 오도록 해줘.”
원하는 것이 워낙 분명해도 난감했다. 어려운 부분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 책, 동영상, 선생님, 공방식구들을 통해 알아내 가면서 만들었다.
옷을 만들자 라벨을 붙이고 싶었다. 강현정이 직접 만들었다는 증명, 즉 나만의 라벨을 붙이고 싶었다. 고민 끝에 평소 쓰는 아이디에 작품이라는 뜻의 WORKS를 넣어 ‘wateraserWORKS’라고 정했다. 이 단어를 넣은 의류용 스탬프를 주문하고 라벨 테이프를 샀다. 빈 라벨 테이프에 내 도장을 꾹 찍어 작품에 붙였다. 이 라벨이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부끄럽지 않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라벨을 단단히 붙이는 그 순간만큼은 나는 디자이너이자 재봉사이니 작품에 더 책임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