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비다

by 물지우개

천을 누비는 것은 ‘누비다’라는 발음처럼 자유로운 바느질이다. 허약한 천과 천 사이에 솜을 넣고 여러 가지 방향으로 누비면 천이 포근하게 두꺼워진다. 직진만 하던 바늘이 무장 해제된 듯 천위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녔을 뿐인데 천은 탈바꿈했다. 여행을 마친 여행자의 머릿속이 정리되고 새로운 결심을 하듯, 솜을 머금고 단단하게 누벼진 천은 타인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가정용 재봉틀은 섬세하고 예민하며 똑똑하지만 천을 밀어내는 힘이 약하다. 두꺼운 천은 더 밀어내기 힘들다. 천을 누비면 당연히 두꺼워지고 그러면 누비는 재봉틀도, 나도 힘이 들었다. 그러나 새롭게 변한 천은 매력적이었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누빌 수 있을까 생각하며 여러 번 연습했다. 천을 누빌 때는 내 시선이 중요했다. 평소 시선은 재봉선이 어긋나지 않도록 바늘 가까이에 두고 집중한다. 바늘땀의 길이도 확인해야 하고 밑실도 제대로 박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시선을 멀리 둘 수 없다. 그러나 누빌 때는 달랐다. 평소처럼 시선을 가까이 두면 바늘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다. 누비는 것은 솜을 천에 넓게 고정하는 것인데 시선을 가까이 두면 바늘은 최종 목적지를 벗어나기 일쑤였다. 게다가 시선이 가까우면 바늘땀이 촘촘했고 촘촘하면 솜이 밀렸다. 반대로 눈을 바늘에서 잠시 떨어뜨리면 천 전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전체를 바라보면 바늘이 최종적으로 가야 할 방향으로 누벼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바늘땀도 촘촘하지 않게, 재봉 속도도 느리지 않아야 전체를 바라보는 데 편했다. 무엇보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재봉하려는 욕심을 잠시 놓는 것이 중요했다. 일반적인 재봉이 나무를 보는 것이라면 누비는 재봉은 숲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내가 맡은 반만 운영을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다른 반 친구들과 긴밀하다. 쉬는 시간에도 만나고 학원에서도 만난다. 작년에 같은 반 친구도 있고 엄마들끼리 친한 경우도 있다. 우리 반 아이와 옆 반 아이가 같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옆 반 아이가 우리 반 아이에 대해 더 잘 아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학년 전체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학교 전체의 분위기나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료 선생님과 자주 소통하고 고민을 나누고 의지해야 한다. 나만 똑똑하고 내 반만 바르게 운영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넓게 누벼야 튼튼하면서도 따뜻한 천이 되는 것처럼, 거기다 바르게 누비기 위해서는 천 전체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비는 것이 익숙해지자 발 매트를 만드는데 도전했다. 인터넷에서 파는 저렴한 발 매트는 질이 좋지 않았다. 미끄럼 패드가 약하거나, 솜이 두껍지 않거나, 물을 잘 흡수 하지 못하는 천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강력한 미끄럼 패드를 준비하고 솜도 보통 때보다 두 겹으로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물을 잘 흡수하는 면 원단을 골랐다.


솜이 두꺼워서 그런지 누비는 게 쉽지 않았다. 재봉틀은 턱턱 소리를 내며 힘들어했다. 빽빽하게 누비고 싶은 욕심도 내려놓았다. 누빌 선을 듬성듬성하게 다시 그었다. 속도도 조금 늦추고 바늘땀 크기도 크게 했다. 제일 중요한 것, 시선을 재봉틀에서 조금 떨어뜨려 가며 누볐다. 기성품에 비하면 어설프지만, 화장실용 발 매트 2개, 주방용 발 매트 1개를 완성했을 때의 기쁨이란! 완성품을 가볍게 세탁하고 털어 말릴 때는 정말 뿌듯했다.

이제 곧 여름이 된다. 우리 아이들은 나와는 다르게 땀이 많다. 잘 때 특히 땀을 많이 흘린다. 이번 여름은 상당

히 덥다는데 마땅한 여름용 패드가 없었다. 작년에 인견 패드를 구입하려고 알아보니 가격이 너무 비싸서 저렴한 것을 샀더니 역시 촉감이나 흡수성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의 인견 패드를 만들기로 했다. 선생님은 예쁜 인견 천을 소개해 주셨다. 편하게 누비기 위해 일반 솜이 아닌 누빔 솜으로 샀다. 패드의 테두리 부분을 위해 바이어스도 준비했다. 이제 인견과 누빔 솜을 넓게 누비면 된다.


어린이용이지만 패드는 넓었다. 시선을 넓게 두려 해도 너무 넓었다. 바늘은 최종 목적지가 아닌 곳으로 자꾸 도착했다.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너무 넓어 전체를 보기 힘들어 절반씩 누비기로 한 것이다. 바늘땀을 뜯을 때는 한숨이 났다. 그냥 돈을 주고 살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절반으로 나누어 한쪽을 먼저 누빈 후 나머지 한쪽을 누벼보았다. 절반을 보는 것은 전체를 보는 것보다 어렵지 않았다. 아까보다는 만족스럽게 누벼졌다. 이제는 ‘바이어스 싸기’다. 뒷면에서 먼저 바이어스를 붙이고, 앞에서 다시 고정했다. 바이어스까지 끝낸 후 패드를 바라보니 세상에서 제일 예쁜 인견 패드로 보였다. 갑자기 나의 시그니처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빔패드서연.jpg

기화 펜으로 내 글씨체를 살려가며 ‘서연아 사랑해 잘자’라고 썼다. 다시 재봉틀 앞으로 패드를 가져왔다. 이번에는 시선을 바늘로 가까이 집중했다. 재봉틀에서 여러 가지 스티치 종류 중에서 굵기가 있으면서 글자를 표현할 수 있는 스티치로 선택했다. 천천히 펜으로 쓴 부분을 재봉해 나갔다. 내가 만든 인견 패드에다 나만의 시그니처를 새긴 것이다. 이렇게까지 발전한 내가 대견스러웠다. 이 과정 그대로 서진이 패드에 반복했다.

먼저 원룸에 깔아 보았다. 남편도 아이들도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금요일이 되어 발 매트 3개와 인견 패드 2개를 들고 집으로 가는 길은 승전 후 귀향하는 장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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