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로 만든 원피스는 ‘로즈 블라우스&원피스’였다. 뒤쪽 목둘레선에 2개의 리본 끈으로 여밈을 하고 소매에는 프릴이 달린 디자인이다. 처음에는 짧게 블라우스로 제작했다. 선생님도 샘플을 만드실 때 리본 끈 부분이 쉽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샘플 경험을 바탕으로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큰 오류 없이 만들어 갔다. 이미 프릴원피스를 만들어 본 덕분에 원단에 주름을 잡는 것이나 그것을 천에 연결하는 것은 아주 어렵지 않았다. 로즈 블라우스를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이전한 것보다 훨씬 컸다. 난이도가 높은 만큼 옷도 더 예뻐 보였다. 이 디자인으로 더 제작해서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신축성이 있으면서 하늘색 체크무늬의 시원한 원단을 샀다. 신중하게 재단하고 배운 것을 천천히 되새겨가며 재봉을 했다. 두 번째이긴 하지만 나 혼자 하는 것이라 첫 번째만큼 시간이 걸렸다. 완성 후 물로 살짝 헹궈 말리고 다리미로 다렸다. 마지막으로 곱게 접어 봉투에 넣었다. 이 옷은 진주 시어머님께 선물하기로 했다. 어머님은 옷 선택이 까다로우신 분이라 마음에 드실지 솔직히 확신은 없었다. 그런데도 시어머님께 보내려는 이유는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여느 시어머님과 다르게 나의 시어머님은 며느리에 대한 베이스 감정이 ‘고마움’인 분이다. 부족한 아들과 살아줘서, 귀한 손자를 낳고 키워줘서 나에게 늘 고마워하신다. 어머님은 섬으로 가는 내 걱정을 하시고, 안쓰러워하셨다. 나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디자인에 대한 자신은 없지만, 옷에 까다로운 분이시기에 핸드메이드의 가치를 더 알아주실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포장된 옷상자를 들고 우체국에 갈 때는 옷을 받을 어머님 표정을 상상했다. 소포에 붙일 송장에 발송인과 수취인을 쓸 때는 손이 살짝 떨렸다. 상자에 송장을 붙이고 직원분이 운반구 상자에 넣을 때는 거의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무사히 도착하기를. 소포를 부치고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은 솜털처럼 포근해졌다. 지나가는 고양이도 무섭지 않았다. 길가에 아무렇게 나 있는 잡초도 예뻐 보였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말을 그때 실감했다.
헨리넥 셔츠를 배울 때는 목둘레선이 어려웠다. 셔츠 자체가 원단 조각이 아주 까다로웠다. 앞트임을 처리하는 것도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런대로 해냈는데 컬러 부분은 한 치의 오차 없는 정확한 재단이 필요했다. 컬러에 접착심지를 붙이고 재봉해서 이제 몸판과 연결만 하면 되는데 2센티가 부족할 때는 정말 울고 싶었다. 완성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렇게 겨우 완성을 해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헨리넥 셔츠를 만든 이유는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섬에 살러 가는 나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신 분이다. 믿고 의지하던 사위에게도 원망의 눈길을 보낸 분이다.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딸은 재미있게 잘살고 있고 학교에 다니는 것만큼 보람차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후회하며 섬에서 뛰쳐나올까 하는 걱정 따위는 필요가 없다고 전하고 싶었다. 아버지를 염두에 두고 신중히 원단을 고르고 재봉을 시작했다.
아버지를 위한 헨리넥 셔츠가 완성되자 공방식구들은 정말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 주셨다. 아버지가 좋아하시겠다며 같이 기뻐했다. 내가 만든 셔츠를 보고 다른 분도 만들고 싶다며 만들 때 도와 달라고도 하신다. 그런데 아버지를 생각하며 한 땀 한 땀 공들인 옷을 막상 보내려니 걱정이 많아졌다. 오히려 더 역정을 내시는 것은 아닐까. 혼자 벌어서 넉넉하지도 않을 텐데 무슨 돈으로 재봉틀을 샀냐고 혼내면 어떡하지. 학교나 다닐 것이지 먼지나 먹어가며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야단을 치지는 않을지. 그나저나 크기가 안 맞으면 어떡하지. 옷이 포장된 상자를 들고 우체국으로 가는 동안 내내 불안했다. 송장을 적는 동안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걸까. 상자가 운반구 상자로 들어가는 순간에는 거의 체념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어머님은 옷은 예쁘지만 지금 입기에는 옷이 더우니 다음에 서늘해지면 입겠다고 하셨다. 물론 정말 고맙다고,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감탄도 하셨다. 친구들 만나면 며느리 자랑을 하겠다고 하셨지만 ‘옷은 마음에 안 들었구나.’라고 감지했다.
아버지는 인증 사진을 보내주셨다. 사진 속 아버지는 내가 만든 옷을 입고 웃고 계셨다. 눈물이 날 뻔했다. 아버지의 사진을 보는 것도, 웃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거기다가 아버지 몸에 꼭 맞아 보였다. 엄마는 아버지가 이 옷만 찾으신다고 전해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