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정말 너란 놈

너를 잡으려다 상처만

by 물지우개

모기가 자꾸 맴돈다. 사이즈도 작다. 휘휘 손을 저어 쫓아봐도 멀어지기는커녕 귓가에서 앵앵, 나 잡아봐라 하며 놀린다. 내 너를 꼭 잡고 말리라. 내 두 눈은 모기의 움직임에 초집중한다. 작은놈이 어찌나 빠른지 내 눈동자가 따라잡을 수 없다. 순간 이동하듯 여기저기서 번쩍거린다. 두 손바닥을 딱 마주쳐도 안되고, 주먹을 꽉 쥐어봐도 실패. 창문을 과감히 내려쳐도 시체가 없다.

그래도 네가 제정신이면 겁은 먹었겠지. 이러다 조만간 죽겠다 싶어 멀리 도망갔겠지. 나는 다시 하던 일에 집중한다. 어디까지 읽었더라? 그래, 여기였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그림을 마저 그린다.

왼쪽 발목 어디쯤이 따끔거린다. 아니 톡 쏘는 느낌이다. 손을 뻗어 문지른다. 오른쪽 종아리도 마찬가지. 뭐지? 손을 뻗어 문지르다가 고개를 숙여 눈으로 확인한다. 조금 빨간데 붓지는 않았다. 어제 음식물 쓰레기통을 물로 두세 번 흔들어 헹구다가 풀이 우거진 곳에 들어가 들이부었는데 그때 풀독이 올랐나?

왼쪽 무릎 뒤가 갑자기 따끔한다. 이번에는 제법 아프다. 통증이 주변으로 퍼지는 느낌. 나도 모르게 발목으로 손이 간다. 종아리도 긁는다. 벅벅 긁어도 시원하지가 않다. 다시 왼쪽 무릎 뒤다. 살이 겹쳐지는 데라 더 시원찮다. 왼손 중지와 약지 끝 제일 두툼한 부분으로 발목을 더듬으니 피부가 솟아 있다. 오른손바닥으로 종아리를 더듬으니 역시 불룩하다. 다시 허리를 구부려 보니 아, 아까 그놈이었다. 내가 공격하던 그 모기가 역습을 시작했구나.

모기, 정말 너란 놈,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을까. 다시 움직임을 멈추고 공기의 흐름에 눈을 집중한다. 나타나기만 해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반드시 성공한다. 그런데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다. 세상 정지 버튼도 무색하게 먹잇감을 쫓던 너 아니더냐? 오늘은 너한테도 정지 버튼이 먹히는 모양이다. 네 처세술, 감탄한다.

네가 흘리고 간 분비물이 본격적으로 내 몸에 흡수되나 보다. 간지러워 죽겠다. 손톱으로 긁을수록 흉측해진다는 사실을 알지만 참을 수가 없다. 손끝에 침을 발라 묻혀봐도 소용없는 것을 보니 네 분비물이 한 수 아니라 십 수 위인 듯. 간지러움은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다. 어젯밤 바짝 깎아버린 손톱이 아쉽기만 하다. 손끝도 마찬가지. 현을 하도 짚어 손끝에 굳은살이 배긴 듯 어찌나 무딘지.

아니나 다를까 부푼 살의 지름이 3cm는 되었다. 단단하게 부푸니 모공마저 커졌다. 억울한 건 아직도 간지럽다는 것이다. 다시 긁으면 결국 피를 보고 말리라. 이건 아니다. 부푼 지름을 살짝 벗어나 긁는다. 검지와 약지로 평행선을 긋는다. 내가 너한테 졌다. 제발 네 분비물 효력을 멈춰다오. 나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졌다. 떠나가다오. 백기를 펄럭이고 있는 게 안 보이니?

너를 결국 죽이지 못하고 내 다리에 생채기만 남았다. 결국 피를 보고 말았다. 피를 본 곳은 네가 문 곳이 아니라 내가 평행선을 그은 곳. 네 타액이 저지른 불장난은 저절로 소멸했는데 내 손톱의 화마는 피딱지를 남겼다. 연고를 찍어 바를 때마다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 짧은 치마도 입을 수가 없다.

내 피를 빨아먹은 너는 아직 살아 있냐? 내 피는 이제 소화가 다 되었겠지? 다시 배가 고파졌으려나? 그래서 지금 어디쯤이냐? 적당한 먹잇감을 찾아다니며 살찌울 상상을 하고 있겠지? 너 설마 아직도 내 책상 주변이냐? 새로운 먹잇감을 찾는 거보다 그냥 나를 기다리는 게 편하겠지? 네가 어디에 은신하고 있는지 대충 감이 온다. 내 책상 아래에는 숨을 데가 많지. 나도 다 안다. 그래, 거기쯤 붙어서 과식한 내 피를 즐겼겠다. 오늘은 내가 너보다 한 수 위일 테니. 각오해라. 어제처럼 당하지 않겠다. 헛발질 따위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아버릴 테니. 내가 정지 버튼을 눌렀는지 너는 눈치채지도 못하리라.

이번엔 목 뒤다. 아, 내 오른쪽 겨드랑이도. 뭐지? 왼쪽 옆구리에 따끔거리는 통증이 온다. 다시 가려움의 파도가 친다. 또 잘못짚은 건가? 너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네 시체를 휴지로 싸서 변기통에 넣지 않겠다. 훼손 없이 가볍게 잡아 창밖으로 경건하게 보내줄 테니 제발 나타나다오.



나는 너를 잡지 못했다.
나는 너에게 여러 번 물렸고,

나는 상처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