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이 내 팔 힘에 대해 처음으로 놀라신 때는 첫아이 출산 이후였다. 3Kg으로 태어난 첫 아이가 백일 만에 10Kg에 육박했는데 몸조리 중인 내가 아기를 너무 쉽게 들었다 놨다 하는 모습을 보고 하신 말씀이었다.
“아가, 니는 보기보다 팔 힘이 장사다. 아무리 니 자식이지만 그렇게 자주 들었다놔도 괜찮냐?”
아기를 낳아서 키워본 적이 처음이라 솔직히 무거운지도 몰랐다. 그때는 아기의 몸무게가 곧 엄마의 육아 성적이라 급속히 불어나는 딸의 몸무게가 자랑스러웠을 뿐(지금은 약간 후회된다. 적당히 먹였어야 하는데).
내 팔 힘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사건이 있었으니 추석을 앞두고 재래시장에 갔을 때였다. 모처럼 사람들이 많아 활기를 띠는 데다가 행사가 있는지 시끌벅적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자, 지금부터 주부 팔씨름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푸짐한 상품이 기다리고 있으니 도전하실 분은 지금 바로 모여 주세요. 곧 시작합니다!”
“(장난스럽게) 자기, 한 번 해 봐. 힘세잖아.”
“싫거든!”
“재밌잖아.”
남편은 기어이 힘 좀 쓸 것 같은 거구의 아줌마들 사이에 나를 끼워 넣었다. 8명이 모이자 진행자는 줄 선대로 두 명씩 짝을 짓더니 바로 예선을 시작했다. 상대가 워낙 세 보여 우리 아이들은 벌써부터 눈빛에 걱정이 뚝뚝 흘렀다. 그래도 나를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엄마, 할 수 있어, 파이팅!”
생각보다 쉬웠다. 팔씨름 전용(?) 책상에서 하니 팔꿈치도 안 아프고 왼손도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있어 힘주기 편했다(나는 오른손잡이다). 내가 의외로 가볍게 넘기자 우리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남편은 조금 떨어진 인파 속에서 팔짱을 끼고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준결승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상대편의 아줌마는 내가 보기보다 힘이 세다며 칭찬해주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팔 힘과 덩치가 비례하는 건 아니구나. ‘
결승전을 앞두고 나는 자신만만해졌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남편은 나를 보고 팔꿈치를 몸에 딱 붙여 넘기라는 몸짓을 하고 있었다. 마치 코치처럼. 내 옆에서 응원하던 아이들은 나보다 더 얼굴이 더 벌건 상태로 거의 울먹였다.
“엄마, 조금만 더 힘내!”
결승전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최대 게이지를 올려도 버틴다는 느낌이었다. 아... 어쩌면 내가 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오기가 생겼다. ‘넘긴다는 욕심을 버리자. 이대로 버티기만!’ 결국 연장의 연장을 시간을 버티니 상대는 스스로 포기해버렸다. 응원하던 딸은 나 대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상품으로 받은 큰 과일상자를 가볍게 들고 가는 남편은 행복해 보였다.
이후 남편은 한동안 ‘주부 팔씨름 대회 우승 사건’을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우리 동네에서 팔 힘이 제일 센 여자가 나라며 자기가 훌륭한 감독인 양 어깨에 힘을 줬다. 이러다 보니 이야기를 듣는 사람마다 자기랑 한번 붙어보자고 나한테 팔을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네가 잘하면 얼마나 잘하는지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투지로 눈빛이 이글거리니 부담백배. (심지어 시어머님도 나랑 한번 붙어보자며 팔을 들이밀었다!)
그 에피소드를 남편이 꺼낸다면 나는 쌍심지 켜고 말린다. 그 일은 우리 가족만의 비밀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절대로 힘자랑을 하지 않는다. 이미 나보다 거구가 된 딸은 내가 업을 수도 없다. 주부 팔씨름 대회 한번 더 도전해서 확실히 인정을 받으라고? 남편의 앵벌이를 거부한다. 센 척과 약한 척 중에 고르라면? (실제로 세겠지만) 약한 척을 고르겠다. 나를 향한 이글거리는 도전에는 분명 장난기가 없었다. 나는 진심 뒤가 무섭다.
그때보다 저 나이도 많이 먹었고요. 힘세지 않아요. 팔목도 당신보다 가늘다고요. 그래도 재미로 꼭 한번 붙어 보고 싶다고요? 아, 진짜 이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