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이 질문은 좀 쉽네요. 편하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로 잘 알고 친할리 가요. 절더러 누군가가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 친한 선생님이 누구야?”라고 묻는다면 안타깝지만 없어요. 진짜 요즘 소원이 있다면 학교에 친한 선생님 딱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아무 때나 교실로 찾아가서 커피 마시고 수다 떨고 고민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동료 말이죠. 제 성격이 문제일까요? 걸리는 학교마다 낯선 별에 나 혼자 뚝 떨어지는 느낌... 대학 때 친했던 내 친구들 다 어디 있는 거야?
드라마를 보면 회사에서 회의라는 걸 하잖아요. 모든 직원이 모여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제가 회사를 안 다녀봐서 잘 모르지만 매일 하지 않나요? 그럼 최소한 한 번은 서로 얼굴을 보겠네요. 한 공간에 있다면 말할 것도 없고요.
초등학교는 교실이 곧 개인 사무실이에요. 아이를 가르치는 일도, 담당업무도 자기 교실에서 해요. 솔직히 옆반 선생님이 언제 출퇴근하는지도 몰라요. 물론 연구실이나 교무실에 모여 회의나 연수를 해요. 그러나 매일은 아니고요. 필수도 아니에요.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공문이 있거나 학부모가 상담하러 오면 빠져요. 모여도 난상토론이나 활발한 질의응답 거의 없고요. 발표자의 일방적인 정보전달이 대부분이라 선생님들은 모여도 듣고 메모한 후 자기 교실로 돌아와요. 한 공간에 모여도 서로 얼굴 볼 일 없다는 뜻이죠.
그래요. 얼굴 안 봐도 친할 수 있죠. 어차피 모든 사람과 친하지 않잖아요. 친한 사람은 소수인데 그 사람 얼굴만 자주 보면 되죠. 그러니까요. 그렇게 우리 교실을 찾아오는 교사도, 내가 찾아가는 교실도 없다고요. 노력해봤냐고요? 글쎄요. 그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인가요?
대학 때부터 알던 사람이면 모를까 같은 학교에 발령받았다는 이유로 친해지는 일은 잘 없었어요. 예전에 같은 학년을 해서 친하게 지낸 사람도 있었는데요, 그 해가 끝나면 관계도 끝났어요.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같은 학년 시한부 친한 척’도 싫어서 안 해요. 학년이나 업무적인 대화는 나누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는 굳이 꺼내지 않죠.
나를 포함하여 교사들끼리 이렇게 신비주의를 유지하는 데에는 ‘수업 비공개’가 한 몫해요. 사실 교사라는 직업의 알맹이가 바로 수업이잖아요. 그런데 교사들은 그 수업을 자발적으로 절대 공개하지 않아요. 해도 어쩔 수없이 공개하죠. 내수업만큼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자 치외법권이라 할까요. 10년 전에는 학년에 한 명은 ‘공개수업’이라는 업무를 맡아야 했어요. 모든 교사에게 수업을 공개하고 공개 후 수업에 대해 난도질까지 겪는 엄청난 부담이라 주로 저 경력 교사들이 떠밀려했어요. 요즘에는 전체 교사에게 수업을 공개하지 않고, 같은 학년 안에서 공동 연구한 수업을 자유롭게 공개해요. 부담이 적죠. 그런데 제가 볼 때 예전만큼 수업에 대해 열띤 논의가 없어요. 그때 저는 강제로 맨 총대로 몸과 마음은 힘들었지만 많이 배웠거든요. 수업을 보고, 보여주고, 묻고, 답하고, 나누고, 배우고 싶은데 요즘에는 가급적 안 보는 게 ‘암묵적 미덕’이라 안타까워요.
저는 정말로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오늘 2교시에 제 과학 수업 좀 봐주세요. ” “그래? 나 3교시에 전담인데 3교시에 갈게.” “네, 그럼 3교시에 오세요.” “그럼 자기는 내일 5교시 체육수업 봐줄래요?” “네, 저 그때 수업 없어요. 갈게요.”
(서로 수업을 보고 커피를 마시며)
“수업자료는 정말 좋은데 너무 많아서 다 하기에 시간이 부족했어요. 여유 있게 하면 선생님도 아이들도 편할 것 같아요. ” “그죠, 저도 그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 보여서 어느 것 하나 포기를 못하겠더라고요. 다 욕심이죠. 다음 시간으로 넘겨도 됐는데... 그리고 제가 말이 너무 빠르죠?” “사실 뒤에 앉은 **이와 **이는 선생님 말을 못 알아듣는지 옆 친구한테 자꾸 묻더라고요. 잘 알아듣는 친구들도 많았으니 빠르기는 괜찮아요. 아이들이 활동할 때 개별적으로 찾아가서 제대로 하는지 선생님이 직접 확인하면 좋겠어요.”
이렇게 수업의 속살을 스스로 공개하고 나면 그 어떤 이야기도 쉽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약 힘든 어린이로 내가 고민하고 있다면 수업을 봤으니 더 내 고민을 이해하고, 객관적인 해결방법도 찾아줄 것 같은데...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조언이 아니라 내 성격과 그 아이에게 맞는 솔루션도 같이 고민해 줄 것 같은데... 그런 동료가 옆에 있다면 어떤 학교든, 어느 학년이든 다 순응할 것 같은데... 오늘 저녁 반찬은 뭘로 하고 애들 공부는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남편이 마음에 안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편히 이야기할 수 있다면 출근이 조금은 즐거워질 것 같은데...
아직 날이 많으니 희망을 가져볼게요. 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어볼게요. 거절당할까 봐 솔직히 자신 없는데요. 지금처럼 내 교실에서만 신비롭게 있으면 별 재미가 없을 것 같거든요. 언젠가는 “선생님들은 서로 잘 알고 친하죠? “라는 질문에 “네! 그럼요, 저는 **선생님과 아주 친해요. 서로 모르는 게 없어요. 우리는 서로 수업 스타일까지 다 꿰고 있는걸요.”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