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새벽 2시 15분. 나는 제주로 가는 배 3등 객실에 누워있다. 내 등이 바다를 항해하는 듯 어찌나 넘실거리는지 죽을 맛. 삼십 분 전까지 건너편 3등 칸 아저씨 세명이 치맥을 즐긴 탓에 소음과 냄새마저 죽을 맛. 마음은 진작에 정의로웠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저씨들이 사라지자 또 다른 아저씨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 순간 코 고는 아저씨가 부럽다. 이 상황에서 코를 골 수 있다면 세상 그 어떤 어려움도 끄떡없으리라.
처음에는 배에서 우아하게 책을 읽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 더위에도 굳이 도서관에 다녀왔다. 사실 독서는 핑계고 잠을 청하기 위한 조커 카드였다. 그러나 처음 마주한 3등 객실의 현실-방향도 순서도 없이 먼저 돗자리를 깔고 누우면 끝-을 보니 내 조커는 틀려먹었다는 것을 알았다
9호 태풍 레끼마는 중국으로 비껴가도 이 배를 제외하고 제주행 모든 배가 결항되었다. 나는 이 배를 탈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했다. 기꺼이 2시간 전에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고 처음 본 외관도 칭찬했다. 특히 큰 화물차를 마구잡이로 집어삼키는 페리 출입구는 놀라웠다. 우리처럼 작은 승용차는 애피타이저. 배는 몇백대의 차를 먹고 후식으로 승객을 흡입했다. 후식이어도 좋다. 여객선에 발을 디딜 때는 영광스러움에 가슴이 벅찼다.
3등 칸을 예매하며 1등 칸을 기대한 적 없다. 바닥은 딱딱하고 공기는 추울 거라 예상했기 때문에 피난민 이불 보따리도 챙겼지 않은가. 바닥과 추위가 아니라 파도에 휘청이는 선체와 파도에 부딪혀 발생하는 소음이 나를 미치게 했다. 시간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니 몸 여기저기서 통증이 왔다. 먼저 장을 강제로 꺾는 복통이 왔고 두통은 진작부터 뒤통수에 진을 쳤다. 출렁이던 위는 뒤집어졌다.
잠은 틀렸다. 구글 지도로 현재 위치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태풍 앱을 얼마나 들여다봤는지. 쪼그라드는 심장은 평온의 바람을 불어넣어도 제맘대로 피시식- 날아갔다. 차리리 결항이 나았을까. 뼛속까지 파고드는 태풍의 파도는 고통이었다. 부서지는 파도소리는 배가 만드는 최대치의 고함이었다.
결국 일어나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뼛속까지 쑤시는 고통을 견디느니 잠을 구걸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괴롭히던 너를 차라리 마주하고 말겠다. 그러다 쳐다본 풍경- 지금껏 보여준 모습과 너무 다른. 거친 들숨의 바다, 날숨을 토해내는 파도, 이들의 호흡소리에 춤을 추는 구름, 물끄러미 지켜보는 하늘은 신비롭다 못해 황홀했다. 게다가 이제야 곁을 내주며 부끄러워하는 일출의 홍조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빛깔이었다.
그 붉은 볼이 더 진해질 때쯤 떠오른 해- 달궈진 진심을 드러낸 태양은 황홀의 정점이었다. 자연의 진심을 보자 나는 안정을 찾았고 내 안정에 안심한 듯 바다도 잔잔해졌다. 나는 그제야 노곤해지더니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하고 대자로 누워버렸다.
제주에 도착했다. 승선과 동시에 단단히 뭉친 과대 불안증은 하선과 동시에 풀렸다. 모두가 잠든 시간 나에게 보여준 자연의 관대함 덕분이다.
제주도립미술관에 만난 제주화가 김성옥의 <오름의 향기>에서 오늘 새벽에 마주한 장면을 보았다. 놀라 소리 지를 뻔! 담백해서 매력적인 태양, 온통 빨간 하늘, 해를 먹으려는 입 벌린 오름은 나였다. 내 몸 아래 푸르고 어두운 기운은 파도이자 내 불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