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쏟아진 바람의 울림

제주국제관악제-마에스트로 콘서트1

by 물지우개


제주국제관악제를 위해 여행 날짜를 맞추지 않았다. 내가 날짜와 여행지를 정하는 과정은 단순하다. 나보다 바쁜 남편이 오케이 한 날 보이는 저렴한 표를 클릭한다. 제주에 오기 직전 ‘제주국제관악제’가 우리의 여행 기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는 용의주도하지 못한 내 손가락에 감동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관악기가 주인공인 관악 오케스트라, 윈드오케스트라, 관악앙상블, 브라스, 군악대 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내가 다뤄본 관악기는 리코더뿐이니까. 관악기의 이름, 음색 정도만 구분하는 수준이니. 변명하자면 현악기가 내 취향이다. 내 마음은 줄이 흐느끼는 비브라토에 민감하고, 활이 만드는 날카로운 테크닉에 감탄한다. 연주하는 동안 연주가의 표정-음악에 따라 눈을 감거나 눈썹이 아래위로 움직이는 모습, 붉어지는 볼, 움직이는 입술은 한 편의 영화라 생각할 정도이다. 소리만 듣는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듣는 동안 연주자의 모습을 상상한다. 내가 플레이어가 된 듯 왼손으로 지판을 누르고 허공에다 활을 긋는다. 감정에 몰입하면 내 얼굴은 연주가의 표정을 짓는다(누가 봤을 까 봐 무섭다).

현악기가 섬세한 독무(獨舞)이라면 관악기는 단련한 군무(群舞)다. 내 귀에는 ‘관악 솔로’라도 군무이고, ‘현악 오케스트라’일지라도 독무다. 나에게 다가오는 현악기와 관악기의 차이는 극명하다. 그러나 무지한 까닭에 관악 연주는 예상하지 못한 데에서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다. 쓰러지는 이유도 모르고 말을 잇지도 못한다. 바람의 울림은 습격이다.

호른은 잘 뭉친 바람소리다. 뭉쳤으나 딱딱하거나 무겁지 않다. 누르면 푹 들어갈 정도로 부드럽지만 형태가 반듯하다. 호른의 바람소리는 솜사탕처럼 달콤하다. ‘노부아키 후쿠가와’가 연주한 ‘랩소디 인 블루(G.Gershwin/Rapsody in Blue for Horn/Arr.Fukukawa)’는 내가 아는 곡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게다가 그가 표현하는 재즈 스케일은 흐트러짐 없이 반듯했는데 거쉬인이 말하는 ‘우울’-어둠이 뚝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우울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중간에 침을 빼기 위해 악기를 돌리는 제스처와 피아노가 화려한 솔로 파트를 연주할 때 보면대로 들고 옆으로 살짝 빠지는 그의 센스에서 연주자의 표정만 집중하던 나는 강한 어퍼컷을 당했다.

클라리넷은 화려한 위로의 바람소리다. 포근하고 안락한 데다가 잘생겼다. 불규칙으로 달려 불안한 심장에 그 외모로 다가와 괜찮다고 말한다. 클라리넷의 바람소리는 베개처럼 단단하기도 하고 푹신하기도 한데 다 편안한 형태를 가졌다. ‘조성호’가 연주한 ‘바흐헌정곡(Belarus Kovacs/Hommage to Bach)’은 단단한 목침이었는데 단단한 나무를 편안하게 깎은 듯 빼어났다. 그는 그동안 들어온 클라리넷 소리는 편견이었을 정도로 다양한 음색을 표현했다. 바흐 스타일의 오르내리는 스케일 선율은 그의 클라리넷 덕분에 더 화려해졌다. 특히 그가 몰입할 때 하는 발끝과 어깨의 움직임, 그리고 소리의 끝에 악기를 살짝 회전하거나, 딱 멈추거나, 위로 쭉 뻗는 마무리 동작은 그의 음악에 정점을 찍었다. 바흐가 들었다면 작곡자도 연주자도 꽤 기특했으리라. 나는 바흐 옆에 앉은 허약한 관객으로서 그저 공격받아 쓰러질 뿐.

유포니움은 생소한 악기인데 호른보다는 헐거운 바람소리다. 호른보다 밀도가 낮아 더 부드럽지만 소리의 부피는 거대하다. 유포니움의 바람소리는 온돌바닥처럼 집 전체를 은근한 온기로 시작해서 뜨끈뜨끈하게 데운다. ‘스티븐미드’가 편곡하고 연주한 ‘카페 1930(Astor Piazolla/Cafe 1930./Arr.Steven Mead)’은 성기지만 따뜻하게 다가왔고 그 따뜻함이 온몸을 겹겹이 감싸 결국 덥게 했다. 음악 중간중간의 복잡하고 정교한 리듬을 배움이 풍부한 두터운 소리로 공격하니 무딘 내 몸뚱이도 결국 리듬을 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는 어깨와 발끝과 고개를 까딱거렸다.

트럼펫은 날카로운 바람소리다. 날카롭지만 아프지 않고 객관적으로 냉철해 한쪽으로 기우는 마음을 바로 세운다. 트럼펫의 바람소리는 지휘봉처럼 날렵하고 긴데, 없으면 모두가 엉켜 버리는 집단에서 길잡이가 되는 바른 소리다.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가 연주한 ‘환상소곡집 73번(R.Shumann/Fantasiestuke Op.73)’은 우직했다. 리듬과 선율이 아름답거나 화려해도 그는 연주에 도취하지 않았다. 그는 트럼펫을 통해 만드는 소리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듯 믿음직한 연주를 했다. 관객은 그의 트럼펫 소리 외에는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없으니 눈을 감아도 상관없었다. 그도 그런 듯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감았다. 올바른 소리를 내는 트럼펫이 더 트럼펫 같은 연주가를 만나니 음악은 깔끔하다 못해 윤이 났다. 특히 표정이나 몸짓의 변화 하나 없이 오직 연주법만으로 음색의 변화를 표현할 때는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을 번쩍 떠버렸다.

줄의 마찰이 혼자 격한 흐느낌이라면, 바람의 울림은 같이 울어주는 눈물이다. 활을 누르는 오른손 검지가 슬픔을 덧칠하는 어두운 파랑이라면 취구에 불어넣는 숨은 슬픔을 희석하는 물이다. 현을 누르는 왼팔의 비브라토가 슬픔의 기폭제라면 구멍이나 키를 막는 열 손가락은 슬픔을 보듬는 가슴이다. 나는 관악기의 소리를 들으며 현악기와 다른 위로를 받았다. 위로는 두텁고 포근하고 부드러워 나도 모르게 기댔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위로는 훅 들어온 진심이었으니까.

바람이 많은 제주라 했다. 음파의 전달 통로가 풍부한 곳이다. 오늘 밤은 특히 바람이 많이 분다. 지금 제주는 풍성한 바람을 탄 관악기 소리가 섬 전체에 쏟아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