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생일 선물

'특별'이 더 평범해지길

by 물지우개


오늘은 내 생일이다. 지금까지 평범하게 살아온 날에 감사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나와 평범한 가정을 이룬 평범한 남자와 평범한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평범한 신체에 평범한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감사한다. ‘평범’이 인생을 가득 채워 눈물겹게 감사한다.

‘특별’이 곳곳에 숨어 있어도 ‘평범’만 못하다. ‘특별’은 평범이 가득 채워져 있는 데에 나타나야 특별하기 때문이다. 즉, 평범하지 않다면 특별하지도 않다. ‘평범’과 ‘특별’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A에게 ‘평범’이 B에게는 특별할 수 있고 A에게 ‘특별’이 B에게는 평범할 수 있다. 삶을 채우는 바탕은 사람마다 다르다. 중요한 점은 ‘평범’이라는 바탕이 있다는 것과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특별한 생일 선물을 두 가지나 받았다.

첫 번째는 새벽이었다. 일찍 눈이 떠져 혼자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변덕스러울 거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변화무쌍할지 몰랐다. 해가 나오다가 갑자기 구름이 끼고 그러다 비를 뿌렸다.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다시 멈추고 해가 나왔다. 바람도 마찬가지. 방향과 속도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사람의 마음 같은 날씨를 체감하며 멀리 보이는 바다를 향해 무작정 걸었다.

해안가를 걷는 동안도 날씨의 변덕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비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 다시 비옷 단추를 끝까지 잠갔다가 단추만 풀었다가 변덕에 맞추었다. ‘종잡을 수 없는 네 마음은 하루 종일이겠다. 사실 나도 그래. 오늘도 나는 몇 번이나 변할지... 화를 내고, 짜증내고, 체념하고, 아쉬워하고, 무덤덤하고, 안심하고, 흐뭇하고, 또 행복할까.

그런데 땅과 하늘과 바다에 무지개가 걸렸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무지개가. 수평선에서 시작해서 땅 위의 하늘까지 걸쳐있다. 날씨가 제멋대로 왔다 갔다 하더니 무지개를 만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무지개를 응시하니 배가 무지개의 시작점에 딱 걸렸다. 배와 무지개가 만나는 찰나, 저 높은 곳에서 희미한 무지개가 하나 더 보였다. 처음 보는 쌍무지개였다.

잠깐의 응시는 특별했다. 곧 잠잠하다가 툭툭 튀어 오르는 죽 끓는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좀 더 걷다 보면 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욕심냈지만 만나지 못했다. 아주 특별한 무지개를 선물로 받았다. 내 마음 같은 평범한 제주 날씨 덕분이다.

두 번째는 늦은 점심을 먹은 오후였다. 때마침 열린 ‘제주국제관악제’ 덕분에 1일 1 공연을 무료로 관람하고 있다. 공연은 가장 중요한 여행 일정이라 우리는 일찌감치 공연장에 도착해 땀을 식혔다. 팸플릿을 본 남편은 오늘 공연은 특별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의 취향을 알지만 딱히 갈 데도 없었다. 첫 번째 공연은 발달장애인의 밴드였는데 아주 특별했다. 봉사자의 도움을 받으며 무대로 오르는 모습부터 보컬이 해드 뱅잉을 하는 모습, 공연자가 공연 중 위치를 잘 못 잡아 당황하는 모습, 조금씩 어긋나다가 절묘하게 들어맞는 모습은 눈물이 날만큼 특별했다.


두 번째는 인공와우이식술을 했거나 보청기를 낀 청각장애인의 공연이었다. 그들은 클라리넷 앙상블이었는데 어찌나 특별하던지. 프로 연주보다 더 내 귀를 호강시켰다. 나는 그들의 엄마인 양 공연 내내 기쁨의 눈물이 났다. 기대 않던 남편도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고, 아이들은 졸지 않았다.

두 팀의 공연은 특별했다. 그들에게 평범한 연주가 나에게는 특별했다. 그 모습을 또 보고 싶어 축제의 전체 일정을 뒤졌지만 공연은 단 한 번 뿐이었다. 아주 특별한 감동을 선물로 받았다. 두 팀이 지금처럼 평범하게 연습하고 성장하고 공연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다시 특별하게 만나고 싶다.

생일 선물은 특별하지만 평범하다. 생일이라는 게 원래 특별하고 또 평범하다. 2019년의 오늘과 오늘 받은 생일 선물을 평범하게 기억하고 싶다. 나는 ‘특별’이 특별하게 따로 떨어지지 않고 내 삶에서 지극한 평범함으로 녹아들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인생 곳곳에 숨어 있는 특별함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 삶이 ‘평범’으로 더 풍성해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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