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제주 여행을 추억하며

그땐 그랬지. 패키지여행

by 물지우개


나는 2003년 여름, 제주도에 처음 여행을 왔다. 부모님과 나, 이렇게 3명이었는데 이 구성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이었다. 나는 그때 교직 1년 차라 학기 중에 연가를 쓰는 일이 민폐이자 관리자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용감한 1년 차는 방학 직전에 연가를 이틀이나 쓰면서 부모님과 제주도 여행을 왔다.(당시 나는 음악전담교사라 연가로 빠지는 수업을 미리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당연히 여행사에 돈을 주는 단체관광을 했다. 그땐 자유여행이라는 개념도 몰랐고 여행에 대해 알아볼 여유나 용기도 없었다. 단체관광도 큰 맘먹어야 할 수 있는 호강이었다. 부모님도 큰 맘을 먹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딸이 돈을 벌기 때문이리라. (당신들 여행비도 딸이 내라고 하실 분은 절대 아니고) 딸 여행비는 스스로 내라고 말할 수 있었으니까. 오빠는 서울에서 회사를 다녀 시간을 맞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오빠 없이 우리 3명만 그렇게 생애 첫 제주도를 갔다.(슬프게도 오빠와 내가 성인이 된 후 우리 식구 4명만 여행을 가본 적이 없구나... 앞으로도 없겠지?)

45인승 버스에는 우리 식구와 여러 팀이 있었는데 내 기억에 버스는 거의 꽉 찬 것 같다. 당시 엄마 뻘쯤 인 가이드는 으레 그렇듯 제주도 사투리를 가르쳐 주며 소개를 하며 귤을 살 때는 아무거나 사지 말고 자기한테 와서 맛있는 귤인지 확인을 받으라고 했다. 버스 안의 손님들은 여러 호텔에 흩어져 묵었는데 가이드가 가장 강조한 점은 다른 팀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아침 미팅 시간을 꼭 지키라는 것이었다. 우리 숙소는 제주시에 있었기 때문에 순서가 앞이라 눈 뜨자마자 급하게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러 갔다. 다행히 우리는 아니었지만 시간 약속에 늦는 경우 가이드는 무서웠고 내내 잔소리가 많았다.

2박 3일 동안 관광지를 둘러봐야 하고, 숙소는 팀마다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우리는 버스를 꽤 오래 탔다. 가이드의 짧은 브리핑만으로는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머문 시간도 짧아 관광지에서도 혹시 늦을까 걱정이 되어 서둘렀다. 이 낯선 곳에서 버스나 택시를 함부로 탈 수도 없고 어디를 구경해야 좋은지도 모르는 시절이니 가이드는 절대자요, 버스는 꼭 붙들어야 하는 지푸라기였다.

특히 가이드가 식당으로 데려갈 때는 얼마나 감사하던지. 낯선 곳에서 우리의 끼니까지 챙기는 것도 감사한데 데려간 음식점은 얼마나 맛있던지. 우리는 감동하며 먹었다. 특히 돔베고기를 먹을 때는 제주도 음식이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다며 마주 보며 감동의 눈을 끔벅였다. 짭조름한 갈치조림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 아버지는 원래 갈치를 좋아하시니 갈치는 당연하거니와 조림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밥에 비벼 드셨다.

그 바쁜 여정에도 가이드는 틈틈이 특산품 가게로 우리를 데려갔다. 가이드가 권하는 상품은 솔직히 다 좋아 보여 구매욕구를 참느라 엄마는 애를 썼다. 고르고 고르다 산 것이 성읍 민속마을의 오미자청, 공항 앞 쇼핑센터의 젓갈과 귤이었다. 성산일출봉에서는 부모님은 처음으로 말을 탔는데 얼마나 즐거워하시던지 나는 기념사진구매를 강력히 권했다. 비싼 사진값으로 망설이던 부모님도 말 표정이 좋다며 액자를 샀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우리는 제주도가 참 좋았다며 회상했다. ‘그 가이드가 참 야무졌었지라’고 칭찬했고, 만병통치 오미자 차를 마시며 건강해진 듯 흐뭇했다. 나는 그 여행을 ‘첫 제주’라는 고유명사로 지금까지 기억하는데 그 감동을 잊지 못해 여러 번 제주에 왔다. 첫째와 둘째를 임신했을 때 태교여행으로도 왔고 아이가 24개월이 되기 전, 항공료 무료 특수를 노리기 위해서도 왔다. 남편들 빼고 친구 가족과 오기도 했고, 영어전담을 했을 때 원어민을 포함한 영어 선생님들과 오기도 했다. 초성수기 때도 왔고 눈 오는 겨울에도 왔다. 어찌 시간이 맞아 가을에 온 적도 있다. 우도에서 1박 하며 섬 전체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았고 1일 1박스로 귤을 먹어치우기도 했다. 지칠 때까지 온천을 했고, 해수욕도 했다. 그러나 모든 여행은 렌터카로 달리는 자유여행이었다. 첫 제주 여행이 패키지 덕분에 그리 아름다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패키지는 없었다.


생각해보니 딱 그때가 아날로그의 마지막 시대였다. 이후 인터넷은 급속도로 발달했고, 신선도를 유지하는데 활어회보다 최신 정보가 더 까다로운 시대가 되었다. 특히 여행은 뒤쳐진 정보로 SNS에 포스팅을 할 수 없다. 최신 정보로 여행해도 내가 가면 더 멋있어 보여야 더 나은 최신 정보가 되고, 열렬한 ‘좋아요’를 받을 수 있다. 이러니 패키지 제주여행은 이제 보기 힘들다. ‘원데이투어’라는 이름으로 미약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 '렌터카’에서도 더 자유롭고 싶어 우리 차와 함께 제주도에 왔다. 제주여행의 뿌리가 된 마지막 아날로그, 그 패키지여행을 추억한다. 지금 패키지 관광버스가 보기 힘들 듯 앞으로 제주에서는 렌트카가 보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배가 여러 가지로 불편하니 사람은 항공을 이용하더라도, 차를 제주로 보내는 방법이 지금보다 더 편리해지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