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에 대하여

너와 평생 함께 가고 싶어

by 물지우개


8일간 집을 비운 동안 제일 걱정한 것은 내가 기르는 식물들이었다. 몇 개 없는 선인장이나 다육이는 괜찮지만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 많아 여행기간 내내 걱정을 했다. 집으로 후닥닥 뛰어들어가 보니 천냥금 열매는 쪼그라들기 직전이었고 국화는 이미 바싹 탄 상태였다. 불을 끄는 소방관처럼 나는 긴박하게 페트병에 물을 담아 화분에 부었다. 아사 직전인 천냥금을 시작으로 트리안, 퓨미라, 테이블야자, 싱고니움, 행복나무, 커피나무, 아이비, 팔손이, 페페, 무늬페페, 뱅갈고무나무- 잎이 작고 얇은 것부터 크고 두꺼운 순서대로 물을 주었다.

동물은 끔찍하게 무서워하고 병적으로 싫어하지만, 식물은 누구보다 사랑한다(혹시 반려동물을 키우신다면 개인적인 취향이니 이해해주세요).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듯 나는 상가의 식물 가게를 지나치지 못한다. 나는 가까운 길을 놔두고 반사적으로 식물 가게 쪽으로 둘러간다. 바닥에 모인 작은 화분 앞에 쪼그려 앉으면,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우리 아이들은 ‘엄마, 그냥 가자’가 아니라 ‘빨리 골라요.’라고 말한다.

식물을 사랑하지만 나 때문에 죽은 식물도 많다. 당장 국화가 죽었다. 여러 번 시도해도 율마는 실패했다. 영산홍도 안됐고 스투키도 안됐다. 아파트 화단에 누가 버린 스킨답스는 우리 집에 와서 잘 크고 있지만 그전에 내가 산 스킨답스는 죽었다. 식물이 잘 크는 원인이 무엇인지, 실패하는 원인은 또 무엇인지 아무리 검색해도 사실 아직 잘 모른다.

우리 집 행복나무는 아주 예민한데 며칠만 무관심해도 잎이 쪼글쪼글 늙는다. 놀래서 물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주름이 팽팽해진다. 트리안과 퓨미라는 더하다. 이 삼일만 안 쳐다봐도 다 죽은 듯 잎이 축 처지고, 화분 아래에 진 잎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커피나무도 그러한데 마지노선이 딱 일주일이다. 일주일이 넘어가면 잘생기고 반짝거리는 잎이 기가 다 죽는다. 물을 주면 삼십 분 안으로 훤칠한 상태로 돌아간다.

내 관심을 아주 싫어하는 식물은 다육이다. 다육이가 나와 멀어지고 싶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원래 우리 집 다육이 4 총사는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 옆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물을 주게 되고 이름도 불렸는데 그때도 상태가 나쁘지 않아 나는 잘 몰랐다. 그 4 총사를 1년간 섬에 살 때 사택으로 데려가서 집 밖에 두었다. 집 밖에 있다 보니 나는 한 달이 지나도 물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어느 날 우연히 쳐다본 다육이는 놀라웠는데 잎이 통통하게 살찌고 심지어 처음 보는 꽃봉오리마저 올라와 있었다. 섬에서 돌아와도 다육이 4 총사는 행복한 그곳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식물과 자주 대화를 나눈다. 먼저 식물의 잎에 손가락을 댄다. 마치 악수를 건네듯. 잎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 넣고 비비면서 식물의 컨디션을 느낀다. ‘저는 오늘 건강해요!’라고 말하는 페페는 두껍고 매끈하다. 다음은 양 손바닥으로 잎을 쓰다듬는데 그러면 잎은 반짝이는 윤기로 답한다. 뱅갈 고무나무는 잎이 커서 우리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잎이 꺾이는데 그 부분에 생채기가 난다. 나는 약을 발라주듯 손바닥으로 가만히 온기를 전한다. 커피나무는 잎이 약해 찢어지기 쉬워 만지는 게 조심스럽다. 그래도 나는 잘생긴 잎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손가락으로 살짝 터치하고 윤기를 눈에 담는다. 트리안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듯 손바닥으로 휘휘 쓰다듬는다. 그땐 숨어 있던 진 잎이 우수수 떨어져도 괜찮다. 어린 노란 연두 잎이 매일 여러 개 돋아나기 때문이다. 천냥금은 잎보다 빨간 열매를 본다. 빨갛게 매끈한 열매는 건강하다는 신호이고 살짝 쭈글거리는 건 목이 마르다는 뜻이다. 이도 물을 주면 다시 매끈하게 부푼다.

싱고디움과 개운죽, 스킨답스는 물에서 키우는데 물을 규칙적으로 갈아주어야 냄새가 나지 않는다. 특히 개운죽은 물에 줄기가 오래 잠기면 미끈거리는데 나는 그때 개운죽이 피곤하다고 느껴져 마사지하듯 뽀독뽀독 닦아준다. 물에서 키우면 잎보다 뿌리와 대화를 나눈다. 물론 잎도 자라지만 새 뿌리가 돋아나는 게 기특하다. 뿌리가 점점 무성해져 용기를 꽉 채우면 더 큰 용기로 옮기는데 그때만큼은 우량아로 키운 듯 나 자신이 기특하다.

잎이나 뿌리가 무성해도 기특한데 꽃봉오리를 만들어 꽃을 피울 때는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딸이 처음으로 재롱잔치를 하면 엄마는 웃고 있어도 눈물을 펑펑 흘린다. 딸이 기특해서 울기도 하지만 실은 그동안 무사히 자식을 키운 자신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다. 꽃을 피울 때도 마찬가지인데 울지는 않더라도 나는 매일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보다가 마음에 들면 색연필로 그림을 그린다(식물 세밀화를 ‘보태니컬 아트’라고 하는데 조금 배웠다. 잘하지는 못한다). 꽃이 핀 식물을 사 오기도 하지만 그보다 스스로 꽃대를 만들어 꽃을 피우는 모습이 훨씬 감동적이다(아쉽게도 아직 그런 식물은 드물었다).

결국 국화를 보냈다. 가위로 지르려고 손으로 잡으니 뿌리까지 단숨에 뽑힌다.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뿌리까지 힘이 다 빠졌나 보다. 나는 뿌리에 묻은 흙을 탈탈 털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파트 화단에 묻었다. 큰 바다로 보내는 방생 물고기처럼 국화도 넓은 토양에서 마지막 생명의 끈을 놓지않기를 바란다. 불가능하다면 큰 나무를 돕는 거름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괜히 데려와서 결국 보냈으니 한동안은 국화를 편히 보지 못할 것 같다. 국화를 편히 볼 수 있을 때까지 우리 집에 있는 식물들을 더 아껴야겠다.

그나저나 방학 동안 우리 교실에 있는 식물들이 걱정이다. 나는 열흘에 한 번씩 교실에 가서 식물에 물을 주려고 했다. 방학하고 일주일 후 교실에 가니 지진 보강공사를 하느라 우리 교실에 다른 교실 짐이 잔뜩 쌓여있어 식물을 제대로 볼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가까스로 물을 주고 오기는 했는데 그 이후에 가니 아예 출입문을 막아서 물을 주지도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학교 공지에 우리 교실은 공사에 포함되지 않아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일 학교에 전화를 해서 잠시만 문을 열어줄 수 없느냐고 사정해봐야겠다.

의도하지 않는 죄를 종종 짓지만 나는 식물을 포기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생명력으로 묵묵하게 나를 응원하는 식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식물에게 늘 먼저 손을 내밀지만 사실 위로는 내가 더 많이 받는다. 식물이 부족한 나를 언제까지 응원할지 몰라도, 내 관심이나 무관심으로 식물이 불행해지더라도, 나는 또 죄를 쌓더라도 식물을 포기할 수 없다. 같이 살기 때문이다. 반려, 말 그대로 평생 함께 갈 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