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엄마를 닮지 마라

나는 우리 엄마를 꼭 닮았지만

by 물지우개


딸의 덩치가 나보다 커졌다. 몇 달 전부터 생리를 시작하더니 급격히 몸이 커진 느낌이다. 확실히 재보지는 않았지만 나보다 몸무게도 더 나갈 듯싶다. 언제부터인가 딸을 껴안는 게 부담스럽다. 가슴이 나와 아파하기도 하고 내 손이 배나 등을 터치하면 바로 비명을 지르기 때문이다. 뻥튀기 과자처럼 갑자기 부풀어버린 딸은 새삼 낯설다.

딸은 또래에 비해 키가 큰 편인데 어깨가 굽어 있다. 남편과 나는 볼 때마다 잔소리를 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딸은 ‘알았어, 알았다고. 나도 노력하고 있어!’라고 대꾸하지만 당분간 고치기 힘들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가슴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젖꼭지가 도드라져 보일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나도 5학년 때부터 가슴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시절 친구들은 브래지어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얇거나 몸에 붙는 상의를 입으면 봉긋 솟아 오른 내 가슴이 너무 부끄러웠다. 어떻게든 가슴을 숨기려고 나는 어깨를 구부렸다. 엄마는 나를 보고 제발 어깨 좀 펴고 다니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키가 작아 보이더라도 가슴이 드러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때 구부러진 등과 어깨를 성인이 되어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잘 안된다. 심지어 어깨교정 밴드도 착용해 봤다.)

딸은 생리 첫날과 이튿날 양이 많아 이불이나 바지에 잘 묻는다. 처음 겪은 아침, 딸은 일어나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엄마, 피가 샜어. 어떡해.” 나는 당황해하는 딸을 일단 안심시켰다. 양이 많으면 그럴 수 있다고. 엄마도 그랬다고. 갈아입을 옷을 들고 뒤처리를 하러 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니 살짝 마음이 아팠다. 그것도 잠시, 나는 이불에 주방세제를 묻혀 비비면서 딸에게 고함을 질렀다.

“바지랑 팬티는 네가 최대한 빨아. 세탁기 넣어도 잘 안 지워진다고!”

한참 뒤, 피곤한 얼굴로 나온 딸은 세탁기에 빨래를 넣으며 “거의 지웠어.”라고 힘없이 말했다. 평소 먹는 걸 좋아하고 발랄하게 뛰어다니는데 생리가 터진 날에는 밥도 잘 못 먹고 밖에 나가려 하지 않았다. 창백한 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팥주머니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건넬 뿐이었다.

내가 중학생 때 하필이면 시골 할머니 집에서 생리가 터진 적이 있었다. 할머니 집 화장실은 재래식이라 뒤처리가 서툰 나는 매우 곤란했다. 화장실이 멀고 불편해 생리대를 자주 갈 수가 없어 나는 결국 바지와 이불에 커다랗게 묻히고 말았다. 엄마는 화가 난 듯 큰 소리로 바지와 이불을 빨라고 했다. 나는 마당 한가운데 우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핏자국에 빨랫비누를 묻혀 마구 비볐다. 아빠와 오빠가 슬쩍 쳐다보고 지나가면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딸은 인형을 좋아한다. 아직도 인형을 사달라고 조른다. 조금 과장하면 크고 작은 인형들이 침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인형을 볼 때마다 한숨을 쉰다.

“제발 좀 치워. 먼지도 많고, 침대도 좁잖아. 안 그래도 더운데 인형 쳐다보면 엄마는 더 덥다고!”

속사포 잔소리를 해도 딸은 꿈쩍도 안 한다. 출장이 빨리 끝나 일찍 집에 간 날, 나는 딸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친구가 온 줄 알았는데 방에 가보니 딸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인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를 들킨 딸은 부끄러워했다.

내가 어릴 때 선물을 고르면 꼭 인형이었다. 미미, 곰돌이, 오줌싸개 콩순이 인형은 제법 오래 가지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기저귀 찰 때도 인형만 주면 하루 종일 혼자 잘 노는 순한 아기였다고 했다. 엄마는 선물을 사줄 때 내가 인형을 고르면 돈이 아깝다고 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먹을 걸 사지 쓸데없는 걸 산다며 핀잔을 줬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에 들어갈 때도 부끄럽지만 인형을 챙겼다.



나와 꼭 닮은 내 딸, 우리 엄마와 꼭 닮은 나다. 내 딸이 나를 닮지 않았으면 싶고, 나는 우리 엄마를 닮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내 딸은 나 같고 나는 우리 엄마 같다. 딸이 나와 비슷할 때, 나는 우리 엄마처럼 잔소리를 한다. 딸이 여자일 때 나는 화가 나고, 우리 엄마는 내가 여자일 때 화를 냈다. 엄마가 화낼 때 나는 부끄러웠고, 내가 화낼 때 딸은 부끄러워한다.



우리 엄마도 나를 키울 때 나처럼 외할머니를 떠올렸을까. 내가 엄마를 닮아 속상했을까.
내 딸이 딸을 낳아 키운다면 나를 떠올릴까. 어떤 엄마로 나를 떠올릴까.

딸아,

네가 딸을 낳는다면,

너는 못난 이 엄마를 닮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