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그런 생각 안 해봤겠니. 생리 시작 일주일 전부터 가슴이 스치기만 해도 아프고, 생리가 터지면 그 고통은 허리와 아랫배가 이어받는다. 생리대가 주는 불편함, 피가 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둘째치고 배꼽부터 발가락 끝까지 하반신 전체에 퍼지는 통증은 식은땀마저 흐르게 한다. 식욕도 없고 기운도 빠져 책을 보는 것도 힘들다. 생리통이 심한 날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고등학생 때 이런 적이 있었다. 생리통이 너무 심해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50대 남자 선생님께 말씀드리기 부끄러웠지만 수업 중 엎드리기도 힘들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배에 손을 댄 채 생리통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보건실에 가란 말인지, 가지 말란 말인지 알 수 없어 짝을 봤지만 짝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말 잘 듣는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수업 중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히 뒷문을 열고 나와 보건실로 갔다. 이때 그 선생님이 나를 제지했다면 난 아마 “아프다고요!” 소리치며 울었을지도 모른다. 두고두고 선생님을 증오했을지도.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보건실에서 진통제를 먹고 침대에 누웠다. 처음 누워보는 보건실 침대였다. ‘보건실 침대는 병원 침대랑 비슷하구나.’라고 생각하며 이불을 끌어올렸다. 낯선 곳에서는 잠들지 못하는 나지만 고통을 견디느라 진이 빠진 나는 약기운에 곧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그 수업이 지나고, 그다음 수업도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수업에 빠진 날이었다.
그때는 생리대가 비싸다고 생각했다. 열 개가 든 한 봉지에 삼천 원이 넘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대량으로 구매할 수도 없었고 마트에서도 여러 봉지를 묶어 할인한 가격으로 팔지 않았다. 동네 슈퍼에 가서 일단 남자 주인인지 확인한 후 생리대를 골랐다. 주로 흰색, 핑크색, 보라색으로 포장된 여러 생리대 앞에서 나는 값이 싼 생리대를 골랐다. 비싼 생리대는 어떤 느낌일까, 오래 있어도 새지 않을까, 덜 불편할까 궁금해도 비교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갑자기 생리가 나와도 친구한테 생리대를 빌려달라고 말하기가 미안했다. 그때는 보건실에 가도 지금처럼 당연하게 생리대를 주지 않았다(실제로 보건실에서 넉넉히 보유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내 기억에는 선생님께 그런 안내를 받은 적 없다). 생리대를 친구에게 빌릴 때도 차용증을 쓰듯 “꼭 갚을게.”라는 약속을 해야만 했다(나는 당연히 갚았고, 나 역시 갚는다고 말한 친구에게 생리대를 빌려주었다).
십 대 중반 아무도 모르게 옷에 묻은 생리를 힘차게 비벼 빨면서 여자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남자도 남자라서 힘든 점이 있을까도 생각했지만 한 달에 한번 일주일씩이나, 일주일이면 무려 4분의 1인데. 40년간 생리를 한다면 10년 동안 피를 흘린다는 말인데 아무리 군대가 힘들어도 10년보다는 낫다며 불평했다.
미래에는 ‘생리 흡입기’가 나오지 않을까도 상상했다. 생리가 터지는 날 병원에 가면 몸에 있는 생리를 단 몇 초 만에 모두 흡입하는 기계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산부인과가 제일 돈을 많이 벌겠구나. 병원비가 좀 비싸도 일주일간 쓰는 생리대, 진통제 값보다는 싸겠지’라고 생각했다.
임신기간 동안 제일 좋은 건 생리를 안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출산과 동시에 시작된 가슴의 통증은 생리통의 백배였으니. 도대체 누가 모유수유가 아름답다고 말했는지. 내 유선은 얼마나 촘촘한지 겨드랑이까지 젖이 차서 팔을 편히 놓을 수도 없었다. ‘젖이 많아서 좋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미웠다. 젖몸살은 흔한 진통제 한두 알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무리 아파도 생리통으로 통곡한 적 없다. 젖몸살로 열이 펄펄 나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인데도 유축기로 젖을 짰고 젖병에 모유가 아닌 피가 모이는 것을 보고 나는 통곡했다. 애는 같이 만들었는데 출산의 고통과 모유수유마저도 왜 여자 몫인지 나는 울부짖으며 신을 원망했다. 다 양보해서 임신과 출산은 여자가 하더라도 젖만큼은 친부의 몸에서 나와야 육아가 공평해지지 않냐고 말이다. 남자의 저 몸뚱이는 고작 정자 생산 말고는 자손번식을 위해 무슨 기여를 하느냐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애 낳을 때 남편 머리채나 실컷 잡아 뜯어버릴 걸 후회했다.
딸이 벌써 남자가 부럽다고 말한다. 아직 한참 남았는데. 여자라서 부당하고 불편하고 원망스러울 일이 아직도 많은데. 사실 나도 다 겪어보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평생을 피해자로 억울해 할 수도 없고 피해자가 아닌 척 숨길 수도 없다. ‘원래 다 그렇다’고 인정할 수도 없고 ‘모두 부조리한 사회 탓이다’며 거리에 나설 자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