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오르는, 이기적일 수 있는 주민

저는 이제 안 합니다

by 물지우개

지금도 나같이 운동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사실은 있다고 믿는다) 한때 나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노동 같은 운동을 했다.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는 지하 2층부터 35층까지여서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면 37층을 오를 수 있었는데 적으면 3번, 많으면 5번을 올랐으니 나는 매일 평균 150층을 올랐다. 내려올 때는 소중한 무릎의 연골을 지키려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했고 한번 오를 때 걸리는 시간은 12~15분이었다.


계단을 오르는 목적은 당연히 운동이었는데 많은 장점이 적은 단점을 충분히 커버한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접근성이었다. 대문만 열고 나오면 바로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둘째가 5살이었는데 엄마의 부재로 인한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신속하게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편리성이었다. 굳이 복장을 갖출 필요가 없었다. 옷, 화장, 신발, 머리 등 현재 상태 그대로 뛰쳐나와도 즉시 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경제성이었다. 운동을 하는데 드는 비용이 0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파트 복도는 환기가 잘 되지 않으니 공기가 나쁘다는 점, 어느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을 갑자기 놀라게 할 수 있다는 점(간혹 내가 더 놀랐다), 악취가 나는 인간의 분비물과 예상치 못하게 마주칠 수 있다는 점, 어디 가서 운동한다고 자랑할 수 없다는 점(아무래도 좀 빈티 나니까)은 단점이었지만 장점으로 덮어진다고 생각했다.


한 번 오르면 숨이 찼고 두 번 오르면 이마가 촉촉해졌다. 세 번째부터는 열린 모공에서 짠 육수가 본격적으로 흘러내렸다. 당시 나는 방송대 중문과 3학년에 편입해서 첫 학기를 다니고 있었는데 들어야 할 강의가 밀려있어 이 시간을 이용해 들었다. 교재 없이 귀에만 의지해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청각 학습이 더 효과적인 과목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부터는 귀에 땀이 흘러 이어폰이 자꾸 고장이 나서 결국 스피커폰으로 강의를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네 번째 왕복이었을까 몸이 뜨거워지고 땀으로 젖을 때쯤 나는 중국 경제 변천 과정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오르고 있었다. 정신없이 계단과 진도를 빼며 35층에 다 올랐을 때쯤 어느 아저씨와 34층에서 정면으로 부딪혔다. 아저씨는 제법 나이가 들어 보였고, 느낌상 주민 같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아주 커다란 백 팩을 메고 있었는데 등 뒤에서 창을 빼는 전사처럼 아저씨는 가방에서 전단지를 한 묶음 뽑고 있었다. 내용은 정확히 못 봤지만 흔히 대문에 붙어 있는 빨간색 바탕의 배달음식점 광고지였다. 아저씨는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듯 깜짝 놀랐고 나는 나대로 적지 않게 놀랐다. 나는 아저씨가 내려가도록 한쪽으로 몸을 붙였다. 아저씨는 바로 아래층 대문에 전단지를 붙이며,


와 씨*, 팔자 좋네. 지 혼자 사나.


순간 나보고 한 말이 맞는지 의심했지만 불행히도 그곳에는 나 밖에 없었다. 내 팔자가 좋은지 나쁜지 아저씨가 어떻게 아느냐고, 그렇다고 욕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아저씨는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 버렸다.


잠시 억울했다. 그래도 내 행동의 어떤 점이 잘못돼서 저런 말을 생성했을지 생각해보았다. 제일 먼저 ‘지 혼자 사나’의 원인부터 분석했다. 그 말은 분명 내 행동이 이기적이라는 뜻이다. 일단 스피커폰의 강의 소리가 컸다. 하긴 누구나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니고 설령 누구나 듣기 좋은 소리라도 계단은 분명 공공장소이니 허락을 받아야 한다. 듣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해도 우연히 들을 수도 있으니 일단 인정. 그다음, 계단 등은 움직임 감지 센서가 있어서 내가 계단을 오를 때마다 해당 층 주황색 등이 3초간 켜졌다가 꺼졌다. 거기다가 엘리베이터도 끝에서 끝까지 여러 번 이용하니 그 전기세는 공동전기료였다. 내가 계단을 오르는 동안 소비하는 전기세를 내가 내지 않으니 역시 인정.


다음은 ‘팔자 좋네’다. 내 팔자가 그리 나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지도 않다(나는 분명 생계형 맞벌이니까)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저씨 입장에서는 분명 내 팔자가 좋다는 얘기니 어떻게 보면 부럽다는 비아냥거림이다. 그렇다면 비아냥거림이 문제인데 아저씨는 분명 내려오고 있었고 나는 올라가고 있었으니 힘든 걸로 치면 내가 더 힘들었다(나는 분명 땀을 팥죽같이 흘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시간 날 때 하는 운동이고, 아저씨는 분명 신성한 노동이었다. 나는 계단을 여가선용으로 쓰고 아저씨는 돈벌이로 쓰니 비아냥거림도 타당하다. 같이 근무한 동료 중에 ‘심심해서 다녀요’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적잖이 분개했다. ‘심심해서 학교에 다닌다고? 그렇게 돈이 많나? 얼마나 많으면 저런 말을 하지?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 신성하다고는 못하더라도 한낱 시간 때우는 용도가 될 정도로 가볍단 말인가?’ 나는 그때 ‘선생님반 아이들은 선생님의 취미용이라니 참 안됐네요.’라고 비아냥거리고 싶었다(다행히 참았다).


욕을 먹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나는 욕을 먹고 나서야 계단 오르기를 멈췄으며 지금까지 아파트 헬스장과 친하다. 아파트 헬스장은 한 달 사용료가 저렴했고, 아들이 호출할 때도 뛰면 5분이면 집에 도착했다. 예쁜 운동복을 골라 입는 일도 나름 즐거웠다.






저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피해 본 ***아파트 입주민께 늦은 사과를 드립니다.

그때 전단지 돌리던 아저씨께도 죄송해요. (그래도 욕은 참아주세요)

혹시 지금 계단을 오르고 있다면 저처럼 욕먹을 수 있으니 참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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