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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터커리어 May 27. 2024

해가 드는 집

내방 창가옆에 높인 책상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으면

집앞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린다.

더불어 시원한 바람도 들어오고 바람따라 들어오는 나무향도 맡을 수 있다.

거실에선 겨울과 초봄에는 볼수 없는 초저녁의 지는 햇빛도 들어온다.


8년여를 해가 전혀 들지 않는 빌라에서 살았다.

창문을 열면 맞은편 빌라의 벽이 보였다.

우린 농담삼아 옆집분들과 하이파이브를 해야하는거 아니냐고 이야기 나눴다.

아침에 일어나 그날의 날씨를 확인 하려면 아이방 창을 열고 건물과 건물 사이 보이는

작은 틈새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확인하곤 그날의 맑음 흐림을 알아냈다.

그전 살던 집들보다 제법 넓어지고 구조도 여느 아파트 구조와 비슷하여 우린 불만 없이 잘 살았다.

1층이라 아이와 집안에서 온갖 놀이도 하고, 부담없이 동네 지인들을 불러 편하게 놀기도 했다.

맞은편 원룸 건물에 살던 고양이도 창문틀에 앉는 날이면 아이방 창에 붙어 마냥 구경할 수 있었다.

어두워서 낮엔 내내 형광등을 켜고 생활했지만 주말이되면 낮엔 공원을 다니고 밤에는 그윽한 조명을 켜 분위기를 냈다.

동네 지인들은 우리집에만 오면 술맛이 난다고 한껏 늘어지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렇게 8년여를 잘 살았다.

마지막 이사즈음엔 해가 안드는 집이 너무 지겨워 빨리 떠나고만 싶었지만..


지금 분양받아 이사온 이집은 창을 열면 나무도 보이고 해도 들고 그날의 날씨를 별 노력없이 바로 확인 할 수 있다.

복작거리는 서울 구도심 빌라촌을 떠나 모든게 크고 멀끔한 신도시로 오니 삶의 질은 많이 나아졌다.

무엇보다 밝은집에서 지내는건 생각보다 나의 하루 감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서울 변두리에서 경기도 외곽까지 나와서야 누리게 된 집안에 드는 햇빛 느끼며 살기..

당연한것 같은 집안에 드는 햇빛 느끼며 살기는 당연하지도 쉽게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님을 나도 알고 모두 안다.


그전 해 안들던 빌라가 싫은가? 라고 하면

해가 안드는건 싫었지만 그곳의 모든게 싫지는 않다.

지금 밝은 집에서 사는게 좋은가? 라고 하면

밝은건 좋지만 모든게 좋은건 아니다.

삶에는 다양하게 필요한것이 있고 원하는것 또한 여러가지이기에 어떤걸 충족한다고 무조건 좋거나

어떤게 채워지지 않는다고 무조건 싫은건 아니니까

다만 나는 이집에서의 첫 초여름을 나는 와중에 저녁즈음 거실에 걸쳐 머무는 지는해의 빛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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