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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Oct 18. 2023

사빈느의 집

긴 직사각형 평면의 소중함

 Milan, Italy 2016 

 연말 한국에서 온 정아와 영국에서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아시시에서는 호텔에 묵었고 밀라노에서 새해를 맞이하기로 하고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이 밀라노의 에어비엔비는 내가 묵었던 1인 주거 중에 베스트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이유는 바로 활용성이 높은 긴 평면 때문이다.

사진을 찍은 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음

 이 집처럼 크기가 크지 않은 공간에서는 정사각형보다 장변과 단변의 차가 큰 직사각형의 평면이 공간을 구성하기가 편하다. 양끝으로 방이 2개, 중앙에 거실 겸 주방이 있고 안방과 주방사이에 욕실이 있다. 사실 특별한 구성은 아니지만, 이 집이 특히 좋았던 점은 안방으로 들어가려면 2개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점이다. 우리가 게스트 룸에 지내는 동안 사빈느도 같이 생활했기에 안방은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크기, 창 위치 알 수 없음) 필요한 공간만 있는 욕실과 공간을 잘 활용한 주방 옆에 최대한의 창을 내, 환기, 채광을 극대화한 것 그리고 그 옆으로 보이는 나무의 풍경이 오래 잊지 못할 기억이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이 편안함이 가능한 비밀은 바로 천장고(반자높이)에 있다. 2.2M만 넘으면 되는 보통 아파트 평면에서 이렇게 긴 평면을 계획하면, 너무 납잡하고 멀어보인다. 그 부분을 해결하려면 창을 청장 끝까지 높게 계획하면 된다. 하지만 건물의 기밀,단열과 유지관리를 생각하면 창문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사실 평면도의 오른쪽 끝에 있는 우리가 실제로 묶었던 방의 본래 용도는 작업실에 가까웠다. 거실과 연결된 양 여닫이문이 기밀성이 낮아 방음이 전혀 안되었기 때문이다. 12월 31일 NYE(new year's eve) 파티를 하고 새벽 2시에 술에 잔뜩 취한 사빈느의 친구들이 거실로 들이닥쳐 노래를 부르며 사빈느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연이은 여행의 피로에 지쳐 자고 있던 우리는 들었다. 연말 기분을 내자며 흥분했던 우리가 밤 11시에 여행의 피로함에 곯아떨어진 것도 억울한데 자다가 호스트의 소음 때문에 일어난 것이 짜증이 난 내가 옆에서 깬 듯한 정아에게 물었다.

    "호스트가 저래도 돼?"

    "응 돼. 싸잖아."

 맞다. 연말 파티가 많이 있는 대도시 밀라노는 숙박비가 엄청났다. 그래도 돼지. 암. 작업실은 필요 없지만 용돈 벌이는 필요한 사빈느 덕에 우리도 라면하나 끓여 먹을 수 있는 곳에서 숙박할 수 있는 것인 것. 맞아 맞아. 흠냐 흠냐 하면서 다시 잠에 든 우리는 1월 1일 밀라노의 작업실을 개조해 게스트 룸으로 꾸민 한 작은 아파트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아침에 거실 테이블 위에 사빈느가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은 차와 비스킷 더미 위에서 작은 노트가 발견됐다.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 내일 런던으로 잘 돌아가! 새해 복 많이 받아!  -사빈느]

 어제 새벽 30분쯤 있다가 다시 나가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때 다시 채워 놓은 것이겠지.

    "휘갈겨 쓴 노트가 또 귀엽고 그르네. 새해 복 많이 받자 친구야!"

    "사빈느 쟤도 리뷰 잘 받으려면 노력해야지, 그래그래 새해 복 많이 받자고"

 런던의 2명과 함께 사는 플랏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한다. 런던의 집은 복작복작하고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집이라도 돌아가서 내 방의 익숙한 침대의 익숙한 냄새가 나는 이불에 코를 박고, 아 사빈느의 집에 새벽 2시에 쳐들어온 친구들이 없어서 다행이다 하고 잠들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여행을 했다는 뜻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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