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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Nov 08. 2023

데미안의 집 a 1

튜더 양식과 고양이

Pembrokeshire, Wales 2017

 

 데미안의 어머니는 웨일스의 큰 집을 대수선해 숙박업을 하고 계시다고 했다. 웨일스도 처음이고 숙박업을 하는 친구네 집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친구 집에 20명이 함께 가는 여행도.

 어머니가 외국으로 여행 가신 동안 비게 되는 큰 집에 그의 여자 친구 엠마의 생일을 중심으로 모인 생일 파티 겸 3박 4일의 여행을 계획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 계획보다, 어떻게 20명의 사람들이 친구 생일에 이렇게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가 더욱 경의로웠다. 그 당시에 놀라웠던 그 여행의 단합의 이유를, 데미안이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 엠마와 데미안이 함께 뭘 하자고 할 때는 실패가 없다는 것을 모두 수년간 체득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도 같은 방법으로 지금껏 배우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생일이 주안점이 아니라, 3박 4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여행을 할 수 있는가로 접근하면 사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어떤 이는 여행 갈 시간과 돈을 누가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 언제나 여행에 쓸 돈과 여행 갈 시간을 없다고 여겼지만, 어떤 이는 돈과 시간의 주인이 되어, 내킬 때나 가능할 때 왕왕 쓰면서 혹시 그중 한 가지가 불가능하더라도 무심히 넘기며 크게 좌절하지는 않는 삶을 살아간다. 나는 첫 번째처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도 알고, 두 번째처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도 안다. 나는 후자로 살았지만 그중 한 가지가 불가능할 때 크게 좌절하는 사람이었으나, 새옹지마의 힘을 믿고, 과거의(시간과 돈을 당겨 쓴) 나를 반성하며 요새는 크게 좌절하지는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후자에 속하는 데미안은 내가 아는 가장 자신의 돈과 시간을 주체적으로 관장하는 사람이었다. 여자 친구집(우리 집)에 몇 날 며칠을 같은 옷을 입고 지내면서 내가 먹던 감자칩이나 잡채를 나눠 주면 정말 고마워하곤 했었는데, 어떤 날은 프랑스로 스키여행을 가서 한 달을 못 봤고, 어떤 날은 멕시코 바다의 거대한 바위 구멍에 수영을 하러 갔다가 새까맣게 타서 돌아왔다. 그런 식으로 데미안은 자신의 엄마의 집이 이렇게 크다고는 말한 적 없지만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내서, 기꺼이 시간과 돈을 들일, 우리 모두를 초대해 주었다.


 도로에 도무지 읽을 수도 없는 사인이 (자음이 두 개씩, 모음이 두 개씩) 보이기 시작하면 웨일스이다. 런던에서 만난 데미안의 차를 타고 3시간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이 집은 정말 대저택이었다. 건물이 두 채로 나눠져 있었는데 함께 온 20여 명이 거실에서 자는 이 없이 모두 침대에서 잘 수 있게 데미안은 건물의 10개 정도 되는 방에 아이들을 잘 나눠서 배치했다. 나는 안채 옆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사랑채에 가까운, 방이 4개인 건물로 배정되었는데 오렌, 윌이 1층의 방을 맡았다.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천창이 3개나 있는 방이었다. 가장 로맨틱한 방에 두 명의 남자가 배정된 것이었는데 사실은 발코니를 확장해서 만든 방이기 때문에 단열에 아주 취약할 거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러나 그들도 내심 사실 이방이 프라이버시가 없으며 춥고 더울 것이라는 것도 알았던 것 같다. 밤에는 덜덜 떨면서 자고 아침엔 사방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거실에서 떠드는 소리에 강제 기상했다고 그 둘은 아침 내내 툴툴거렸다. 그래도 그런 불편함을 어려서부터 잘 감수해 와서 인지 커피를 마시고 나서는 잠잠해졌다.

1층 평면/ 사진을 찍은 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음

 '여기가 웨일스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 중에 하나야'. '여기가 내가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랑 여름방학 때 매일 수영하던 곳이야' 할 때 그 펨브록셔 국립공원을 4시간 함께 걷고, 그 포핏 해변에서 바다 수영을 하고 해안가에서 잊지 못할 해산물을 먹으며 데미안이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했다. 그러고 나서 하루의 끝에 이 집에 오면 아늑한 집이 모두 3번 우리를 따뜻하게 반겼다.

  

 이곳의 1층은 주방, 거실, 발코니를 확장한 침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튜더양식(Tudor 왕조 시대의 건축양식, 박공지붕과 직선의 검은 목재장식이 특징)이 내부 천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건축가인 엠마가 잉글랜드, 웨일스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라고 했다. 바닥이 진짜 돌바닥이었다. 구조기둥과 천장의 장식을 그대로 살려 그 주변으로 싱크대를 두르고 선반을 배치한 것이 아주 좋았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유럽에서는 불편을 조금 감수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들 몸에 배어있다. 이 사랑채는 데미안의 어머니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에어비앤비로 빌려주는 용도로만 쓰인다고 했다. 이와 비슷하게 대들보가 남아있는 어떤 서귀포의 집이 겹쳐 보이니 웨일스도 가깝게 느껴졌다.


 집 곳곳에는 이렇게도 멋진 뒷마당, 앞마당이 있었는데 여기서 축축한 공기의 아침과 저녁에 커피나 차를 마시며 끝없이 넓게 펼쳐진 웨일스를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 보면 이 집에 사는 고양이 마리가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다. 어디서 잡았는지 쥐를 물고 와 이리저리 갖고 놀다가 흥미를 잃고 쥐의 목을 물어 죽여 놓고 보란 듯이 신장만 빼고(신장에서 신맛이 나기 때문에 고양이는 신장을 먹지 않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와작와작 먹는 쇼를, 우리 눈앞에서 자랑스럽게 진행한다. 함께 차를 마시며 윌이 어젯밤에 추웠다고 하던데 넌 잘 잤냐고 묻고 답하던 제임스와 나는 입을 벌리고 멈춰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 뒤 정신을 차리고 우리는 동시에 조용히 읊조린다.

    "Mother-fucking-nature(씨발 존나 대자연이다)."


-다음 화에 ‘데미안의 집 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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