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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Nov 09. 2023

데미안의 집 a 2

숙박업의 기술

Pembrokeshire, Wales 2017


 2층에서는 나, 프랭키가 한 방을 쓰고 탐슨-프레드 커플이 제일 큰 방,  맥스-안나 커플이 나머지 방을 썼다. 가장 큰 방인 탐슨과 프레드의 방은 외부에서도 돌음 계단을 통해 출입이 가능했다. 원래 뻥 뚫려있던 대공간을 작게 나눠서 방을 3개로 나눈 듯 한 평면이었다. 왜냐하면 bedroom 2와 bedroom 3 사이에 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작은 거실이 있어야 야 할 공간에 최대한의 침대를 넣고 숙박인원을 늘리는 숙박업의 기술이었다. 이 집은 총 8명이 숙박할 수 있는 집이다. 그 최대치의 수용 인원을 위해 작은 공간을 재밌게 나눈 재치가 돋보였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탐슨과 프레드 커플이 묵었던 방에 있던 욕조였다. 건식인 바닥에 배수구를 연결하여 문 없이 레이스 커튼으로 가릴 수 있는 있는 이 욕조에 몸을 담그고 대자연을 바라볼 수 있게 숙박객들을 홀릴 만한 인테리어였다. 그러나 탐슨과 프레드 누구도 저 욕조를 사용할 만큼 취하지는 않아서 예쁜 장식품으로, 사진의 배경으로 그 역할을 다 했다.

 

 오른쪽의 1층에서 연결되는 내부 계단을 통해 올라오면 아주 작은 홀에서 욕실, 창고, 방 2개로 진입할 수 있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려고 한 노력도 보인다. 평면에서는 조금 복잡해 보이지만 창고 storage는 거의 닫혀있기 때문에 실제로 홀은 신호체계가 잘 잡힌 회전차로처럼 보기엔 혼잡해도 한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2층 평면/ 사진을 찍은 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음

 물론 이런 평면은 며칠만 묶는 숙소이기 때문에 가능한 계획이다. 최대 8명이 하나의 욕실 겸 화장실을 공유한다는 건 사실상 악몽에 가깝기 때문이다. 1층의 오렌과 윌은 샤워를 하려고 계단을 4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나와 프랭키가 묶었던 방에는 아주 작은 싱글 침대가 있고 그 아래로 슬라이딩 침대가 나온다. 저 좁은 아치형 오프닝으로는 문이 없는데 화장실을 쓰려는 탐슨과 프레드가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큰 침대가 아니라 작은 침대를 넣은 것이 아주 맞는 계획 같았다. 벽에 재치 있게 걸려 있는 거울들이 여러 위치의 우리의 얼굴들을 바라보게 해주기도 했다. 그 거울 속에서 프레드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프레드는 얼굴로 하는 유머 말고도 영국식 아재개그를 많이 하는 친구였는데, 그 농담에 웃으면 나 스스로가 조금 비참해지고, 안 웃으면 프레드가 조금 처량해 보였다. 내가 그걸 한국에서는 아재개그 uncle's jokes라고 부른다고 말해줬더니, 영국에서는 아빠개그 dad's jokes라고 한다. 아빠랑 삼촌(아저씨)이 어떻게 다른지, 만국의 중년 남성의 어떤 일관성이 있는지 쓸데없이 진지한 토론을 하다가 프레드가 덧붙인다.

    "그게 결국 같은 얘긴 게, 아빠(dad)와 삼촌(uncle)은 형제일 거잖아."

 진지한 표정으로 헛소리를 하던 우리는 빵 터지며 웃었다. 무슨 일인가 우리에게 다가온 윌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더니 윌은 모두에게 목소리를 높여, 이제 프레드가 공식적으로 엉클조크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엉클조크와 탐슨을 포함한 모든 친구들은 밤이 늦도록 큰 건물 거실에서 술을 마셨다. 나는 아침에 웨일스를 조금 더 깨끗한 정신으로 보고 싶어 혼자 몰래 시끌벅적한 파티 룸을 빠져나와 사랑채에 들어왔다. 1층의 윌과 오렌의 빈 방에서 천창으로 새카만 밤의 별을 조금 보고, 2층으로 올라와 모든 창 밖으로 다른 하늘도 봤다.


 따뜻하고 시원하게 또 편하게 오래 살기 좋은 집이 있고 사진에 잘 담기고, 보기 예쁜 집이 있다면 이 집은 후자였다. 그러나 내가 가족과, 친구들과 3박 4일 이런 풍경이 있는 펨브록셔 같은 곳으로 여행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사랑채에서 묶을 것이다. 숙박객들이 잠시간 저 풍경에 머물다 안으로 들어와서 이 창밖을 봤다가, 저 창밖을 봤다가 하는 그런 집. 어느 창 밖을 바라봐도 이런 정원과 들판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집. 고양이 마리가 뛰어다니며 쥐를 사냥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집. 이 건강하고 푸르른 풀이 끝없이 펼쳐진 창밖을 보고 있으면 왜 웨일스에 인구보다 양의 숫자가 많은지 알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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