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당신의 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춥다물 Nov 02. 2023

카밀의 집

런던에서 집 찾기와 다국적 플랏메이트

London, England 2016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를 위아래로 훑은 직원은 다시 컴퓨터에 눈을 고정한 채 예산을 물었다. £600라는 답을 듣고 나를 데리고 간 두 군데의 방은 마약을 이용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의 방이거나, 역에서 20분은 걸어야, 혹은 버스를 갈아타야 갈 수 있는 먼 곳에 있었다. 나는 그 엄청난 담배냄새가 나고 주사기가 떨어져 있는 침대가 있는 방의 이미지와 냄새를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플래닛 어스를 다시 봤다. 중개소는 안 되겠다 싶어 런던의 매물들을 개인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스페어룸에서 금액대 ~ £600 필터의 결과 중 가장 좋아 보이는 방을 보러 갔다.

 자신은 출장 때문에 집에 거의 비운다던 30대 남성이(실제로 60대) 방 두 개 중 (실제로 방하나에 거실 겸 주방 하나) 하나를 세 준다고 했다. 실제로 남, 여가 함께 플랏메이트로 거주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고 이 집주인은 대부분 해외 출장이라고 해서 문제없을 것 같았다. 괄호 안의 사실들을 모두 마주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조금 전까지 자고 있던 방이 분명한 유일한 방을 보여주며 이방이라고 했다. 좋은 방이었다. 그럼 네가 집에 오는 경우에 넌 어디서 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거실 소파에서 잘 거라고 했다. 주방과 분리되어 있지 않은 거실에서 그가 트렁크를 입고 코를 골며 자는 것을 봐야 하는 스트레스를 가늠해 봤다. 방을 나오는 길에 나는 주인 몰래 방문이 잠기는지 확인했다. 예상대로 문고리는 고장 나 있었다.

 

 이런 상황들에 나는 2주 동안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매일 스콘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로티드 크림을 듬뿍 얹은 스콘을 먹으며 찾아보던 스페어룸에서 크기는 작지만 커다란 창에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중심가에서는 조금 먼 방이 눈에 띄었다. 방이 4개인 이 집에는 전부 5명이 함께 살며, 그 집은 거실을 없애서 방을 만든 구조인 것으로 보였다. 방의 주인인 대학생 카밀은 라트비아로 5개월 동안 돌아갈 사정이 생겨서 그 기간 동안만 방을 세 준다고 했다. 자신의 화분들과, 큰 짐(침대아래에 넣어둔)을 그대로 둔다는 전제하에 한 달에 £550라는 것이었다. 임대 기간을 변경할 수 없으며, 꼭 여자여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재빨리 문자를 보내고 약속을 정했다. 그날 저녁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카밀을 만나러 갔다.


 다행히 카밀은 나의 조심스러운 접근과 전체 상황에 대한 이해도를 높게 샀고, 나는 5명이 한 집에 산다는 것이 기가 막힐 일이었지만 그것이 이 집의 제일 큰 단점이라면, 약쟁이, 변태와 사는 일에 비해서는 아무 일도 아닌 것도 아닌 듯이 느꼈다. 아니타가 했던 말도 기억났다.

 "런던에서는 좋은 점이 많은 집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되고, 단점이 적은 집을 찾는다 생각해야 해. 그리고 찾으면 바로 계약해. 다음 날이면 없거든."

 우리는 서로의 니즈가 톱니바퀴처럼 꼭 들어맞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카밀은 나를 더욱 궁금해하는 4명의 다른 플랏메이트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들은 모두 밝은 얼굴로 인사해 줬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었다. 이들은 은근하고 날카롭게 하지만 친절하게 내가 사이코가 아닌지, 무개념이 아닌지를 자신들의 기준으로 심문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똑같이 심문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집에 내가 있는 지도 모를 거야. 너무 조용해서. 샤워도 정말 빨리하고 깨끗하지. 한국인들은 매일 발도 닦아. 심지어 난 집먼지 알레르기도 있어서 청소도 열심히 하거든. 아 근데 빨래를 미친 사람처럼 자주 하진 않으니까 물을 많이 쓸까 봐 걱정하지는 않아도 돼."

 각오와는 다르게 나의 말은 거의 무릎을 꿇은 수준으로 읍소하듯 나왔다. 나의 그 우스꽝스러운 절박함과, 이제 자신도 곧 짐을 다 싸두고 그것을 헤치지 않을 사람과 함께 두고 떠나야 하는 카밀의 도움으로 나는 그다음 주, 혼자 살던 집에서 5명이 사는 이 집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은 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음

 마일엔드 역에서 내려서도 빠른 걸음으로 15분을 걸어야 도착하는 이 집은 하층민들을 위한 집합주거이다. 거실 없이 5명이 하나의 화장실과 하나의 욕실을 공유한다는 것은 보통 다툼이 일어나기 쉬운 조건이고 일상에서 그런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보통 돈을 더 쓴다. 건축디자이너로서 절대로 이런 집은 계획하지 않을 것이지만 가장 좋은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님을 우리는 대부분 알고 싶지 않은 방식으로 배운다. '가장 좋은 것'보다, 먼 타지에서 안전하고 최대한 저렴하게, 무탈하고 살고자 '가장 상황에 맞는 것'을 택한 5명의 마음이 이 집에 함께 모였다. 여기에서 나는 밤새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30개가 넘는 이력서를 넣고 또 더 많은 좌절을 하는 런던에 사는 일반적인 외국인의 생활을, 4명의 반쯤 눈을 감은 플랏메이트들과 귀를 닫는 법을 익히며 시작했다.


 내 옆방의 리슬은 프랑스에서 온, 음대를 다니는 학생으로 언제나 애인을 데려와 아침마다 시끄럽게 사랑을 나눴고 그 옆 방의 비올레타는 라트비아에서 온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머리가 보라색이었다가 핑크색이었다가 하면서 종종 욕실 세면대를 같은 색으로 물들였다. 제일 끝방의 호텔리어인 카밀라는 비올레타의 친언니였는데, 네덜란드 출신 사진작가인 파트너 세브와 제일 큰 방에서 함께 투닥투닥, 꽁냥꽁냥 살았다. 이 커플은 자주 태국식 캐슈넛 치킨요리를 해 먹었는데 이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가스불을 4개를 거의 다 써가며 주방을 뒤집어 놓았기에 다음 1시간 동안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어서 나는 방에서 한숨을 내쉬면서도 속으로 맛있겠다고 부러워했다. 이렇게 나는 이 집의 유일한 취준생으로서 24시간 거주하며 이 집의 상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고 파악하며 필사적으로 이들의 중요한 택배를 받는 택배 요정이 되었다. 그들이 모두 출근이나 등교를 하면 드디어 조용해진 주방으로 가서 라면을 끓여 먹고 차를 마시고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 조금 일찍 주방에서 저녁을 만들었다. 그러면 누가 낮시간에 복도를 지나다니는지도 다 보였는데 편복도식 아파트인 저 복도에서 다들 담배를 폈다. 신기하게도 그 담배냄새들은 금세 사라졌다.

 

 이렇게 많은 소리와 다양한 냄새의 두 달 후 아직도 일을 구하지 못한 나는 점점 사기가 꺾였다. 오랜만에 술 마시러 오라고 해서 갔던 엠마의 하우스 파티에서 아니타가 남자친구와 함께 집을 사서 나가게 되었다는 정보를 접했다. 엠마와 소피가 너무 술에 취하기 전에 나는 이 집이 너무 마음에 들고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얼른 고백했다. 그 방을 탐내는 그들의 지인들은 나 말고도 많이 있었지만 그땐 아마 나의 타이밍이던 것 같다. 누구도 나처럼 비정식 계약을 한 집에서 살지는 않고 있었기 때문에 2주 안에 들어올 수 있다고 대답한 (대책 없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은 뻥이었고 나는 초역세권 £430의 월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카밀에게 이 소식을 비장하게 전했다.


[카밀 나 이사를 해야 해. 원하던 방이 하나 나왔는데 너무 좋은 조건이고 장기 계약이라 이 걸 잡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대신에 내가 남은 3개월을 채워 줄 사람을 꼭 찾아주고 나갈게. 그건 걱정 마. 그리고 이런 말하게 되어서 정말 미안해.]


 라트비아에 있는 카밀은 크게 실망한 것 같았다. 당연히 다른 나라의 두고 온 자신의 방에 살 사람을 다시 찾는 것은 아마 절망에 가까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나는 요새 절망이 뭔지 너무 잘 알아서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세입자’ 한국인 에이미를 04uk에서 찾아 연결해 주었다. 나처럼 워킹홀리데이로 영국에 온 에이미도 방을 알아보면서 여러 좌절을 겪었던 터라 방을 보자마자 이사하고 싶다고 결정했다. 그는 나 대신 남은 3개월을 이 집에서 무탈하게 다 채우고 나서도 집안 사정으로 돌아오지 못한 카밀 후임으로 공식적인 재계약을 했다. 카밀은 이렇게 되려고 그랬나 보다며 정말 고마워했고 에이미는 나보다 리슬, 비올레타, 세브, 카밀라와 죽이 잘 맞았으며, 사랑꾼 리슬이 나가고 그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2년을 더 살았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내 타이밍이 와서 떠나야 했던 런던에서의 내 3번째 숙소이자 첫 번째 장기 주거지인 이 집의 냄새와 소리가 아직 생생하게 잊히지 않는다. 태국 여행을 갔다 와서 피쉬소스에 미쳐버린 카밀라와 세브가 온 아파트에 피쉬소스 냄새를 풍기며 요리하는 저녁,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귀가하는 나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같은 층 주민이 냄새의 방향과 내 까만 눈동자를 번갈아 가며 본다. 나 아니라고! 복도 끝방에서는 세브가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면서 헤드셋 너머에 넣는 추임새가 네덜란드어로 크게 들리고 카밀라와 비올레타 자매가 욕실에서 비올레타의 뿌염을 도와주며 라트비아어로 이래라저래라 다투는 소리도 들린다. 대학생인 리슬은 다들 잠을 자고 있는 아침에 들어올 것이다. 술에 취한 애인과 함께. 이 각양각색의 많은 다국적 플랏메이트들은 이 작고 정신없는 집에서 2016년 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같이 들었다. 우리는 좁은 주방에 반은 앉고 반은 서서 함께 술을 마시며 영국은 이제 망했다고, 우리도 망했다고 분개했다. 그리곤 각자의 고국의 음식에 대해 얘기 나눴다. 이렇게 나는 이 집에서 다른 외국인들과 외국인으로서 런던에 조금씩 스며들어 가고 있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티븐의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