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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Jan 07. 2024

카를라의 집 1

방갈로(Bungalow)와 정글

London, England 2017


 영국에서 회사 동료와 일터 밖에서 연락하고 지내는 경우는 그다지 흔하지 않지만, 카를라는 자주 나를 은밀히 불렀다. 우리는 술에 대한 사랑도, 코미디 성향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식물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반짝이는 서로의 눈을 본 뒤로 자주 얘기를 나누며 점심 친구가 되면서 친해졌다.   

    "너 만나는 사람 없다고 했지? 내 친구를 소개해주고 싶은데 다음 주에 시간 어때?"

    "이번주에 우리 집에 와서 옥자 볼래?"

카를라가 소개해 준 멋진 친구는 지루했던 첫 만남에 우리는 타투 이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것에 동의하고 친구의 친구로 남기로 했고, 옥자는 주말에 카를라네서 함께 보기로 달력에 저장했다. 그 외에도 나는 김치를 만들었다거나, 카를라가 바나나잎으로 싼 밥을 한 날에 그의 아담하고 귀여운 방갈로에 자주 갔다.


 카를라는 그의 약혼자, 스튜어트와 함께 구입한 방갈로(Bungalow)에 살았다. 영국의 주거 방식은 크게 3가지로 나눠져 있는데, 첫 번째는 단독주택(Detached house), 두 번째는 세미-단독주택(Semi-detached house), 세 번째는 플랏(Flat)이다. 이것을 한국식으로 이해하려면, 단독주택, 땅콩주택(크기에 상관없이), 아파트(빌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중에 방갈로는 첫 번째, 단독주택에 해당하면서 층수가 1층인 주거 방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영국에서는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노인을 위한 주거로 인식되어 있어, ‘방갈로 = 구식’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이다. 이에 30대인 카를라와 스투어트 커플이 방갈로를 샀다고 했을 때 영국 사람들은 대부분 "정말 잘 됐구나(Oh that's lovely!)"라고 말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구닥다리 집을 샀니?"라는 영국식 표현이다.


 자전거를 타고 막다른 골목을 들어서면 방갈로의 남쪽으로 작은 텃밭이 있다. 토마토와 오이가 우스꽝스러운 크기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귀여워하며 현관을 들어서면 바로 외투를 벗을 수 있는 옷장이 있다. 거기에서 대충 외부의 흔적을 내려놓고 누구든 정면의 화장실, 우측의 침실, 좌측의 거실과 주방으로 목적 있는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중앙에 화장실, 수납, 주방을 두고 침실과 거실을 멀리 배치한 이 길고 작은 평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구성이다. 화장실에는 공기의 수분을 먹고 자라는 식물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고, 거실 이곳저곳에도 커다란 화분이 있어 한참 식물 키우는 재미에 빠졌던 나는 이 집에 오가는 날을 기대했다.

사진을 찍은 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음

 내가 부러워했던 텃밭도 있고 식물도 많은 그 자그마한 집, 그 집을 수리하기 위해, 카를라는,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고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방송으로 내보내는, 우리나라의 '러브 하우스' 같은 개념의 방송에 지원했다. 반신반의하며 지원했던 것을 살아가느라 까맣게 잊어버렸을 때, 프로그램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이 집은 공사 비용 일부를 제공받는 대가로 영국 티브이에 나왔던, 전과 후로 달리 보이게 편집된 집이기도 하다. 그 중 유일하게 내부가 아닌 정원을 공사했던 집이다.

 

 필리핀에서 아주 어렸을 때 영국으로 이민을 와 평생을 영국에서 보낸 카를라에게는 필리핀에서의 기억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어머니의 형제, 자매들에게서 듣고 자란 필리핀의 축축하고 뜨거운 정글의 형상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항상 머릿속에서 자라나는 고국의 그리움과 연결되어 있었다. 여름엔 건조하고, 겨울엔 축축한 정반대의 날씨의 영국에서도 그는 정글을 그리워했다. 무덥고 축축한 필리핀의 여름엔 연한 초록색이던 어린잎들이 시커멓게 보일 정도의 초록색으로 무성하게 자랐다. 그 활기차고 명랑한 활엽수의 이파리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항상 바라서인지 카를라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그의 동글동글하고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며 나는 종종 의아했다. 잘 기억나지 않은 것에 대한 그리움이 그렇게 새파랗고 뜨거울 수 있을까?


 이 날은 정글이 다 완성되어서 구경하러 가기로 한 토요일 오후였다. 정글에서 낮술도 마시고, 해가 지면 넷플릭스에 올라온 옥자도 함께 보기로 했다. 자전거로 집에서 30분이 채 안 걸리는 길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잔디만 무성하게 있던 뒷마당을 다 갈아엎고 새로운 식생을 들이고, 바닥에 돌도 깔았다. 카를라의 얼굴은 전에 없이 밝아보였다. 작은 대나무 길을 기차놀이 하듯이 카를라 뒤를 따라 고개를 숙이며 들어가 걸어보았다. 그 길이 너무 찰나여서 우리는 대여섯 번 왕복으로 걸으며 웃었다.


 해가 지고 옥자를 함께 보고 얘기하기로 했다. 비건인 스튜어트와 이전에 영화계에서 일했었던 카를라와 봉준호의 나라에서 온 내가 함께 여러모로 얘기하기 좋은 영화였다. 여자 주인공인 미자가 옥자가 잡혀간 곳으로 몰래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시꺼먼 밤중에 슈퍼 돼지들의 불안한 눈동자들이 화면에 가득 담겼다. 그때 한국에 있는 형부의 메시지 알림이 가족 단톡방에, 내 허벅지의 진동으로 울렸다.

    

    [어머님 아버님! 저희 지금 분만실로 갑니다. 다시 연락드릴게요.]


 나는 '악'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카를라와 스투어트가 예의 슈퍼돼지들의 크고 불안한 눈동자를 하고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아마도 오늘 나 이모가 되나 봐."

 조카를 임신한 언니네가 분만하러 간다는 연락을  8000km 떨어진 런던에서 받고 더 이상 옥자에 집중하지 못한 나는 카를라 집 거실을 불안하게 서성거리다가 가방과 정신을 최대한 챙겨 방갈로를 나왔다. 10시가 넘은 런던의 밤은 깜깜했다. 괜히 불안한 마음으로 밤 길에 사고가 나지 않게 전조등, 빛반사 밴드를 빠짐없이 다 착용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자전거에 올랐다. 등 뒤에서 스투어트와 카를라가 ‘도착하면 연락해! 천천히 가! 조심히!’ 소리치는 것이 그라데이션으로 작아졌다.  마레 스트리트를 지나, 캠브리지 히스 역을 거쳐 베스널 그린 역에서 우회전을 했다. 오버 그라운드 열차로아래로 난 터널을 지나는데, 주차된 승합차 아래, 깜깜한 바퀴뒤로 뭔가 '반짝' 하는 것이 보였다. 뭔가 이상한 기운에 끌려서 나는 자전거를 자연스럽게 길가에 세우고 안장에서 내려와 주변을 둘러봤다. 영국 여름밤의 건조한 공기만이 느긋하게 바스락거릴 뿐 사람들은 다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듯 길가는 조용했다. 나는 입술을 메 만지고 숨을 한번 크게 내쉬었다. 한 손으로 자전거를 크게 돌려 그 길을 10m 정도 돌아갔다. 어쩐지 터널 안이 아까보다 더 깜깜해진 것 같은데 바퀴뒤에서 뭔가 다시 한번 '반짝' 하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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