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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Jan 09. 2024

카를라의 집 2

여름의 탄생과 5파운드

    "아마도 오늘 나 이모가 되려나 봐."

 조카를 임신한 언니네가 분만하러 간다는 연락을  8000km 떨어진 런던에서 받았다. 더 이상 옥자에 집중하지 못한 나는 카를라 집 거실을 불안하게 서성거리다가 가방과 정신을 최대한 챙겨 방갈로를 나왔다. 10시가 넘은 런던의 밤은 깜깜했다. 괜히 불안한 마음으로 밤 길에 사고가 나지 않게 전조등, 빛반사 밴드를 양 발목에 빠짐없이 다 착용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자전거에 올랐다. 등 뒤에서 스튜어트와 카를라가 ‘도착하면 연락해! 천천히 가! 조심히!’ 소리치는 것이 그라데이션으로 작아졌다.  마레 스트리트를 지나, 캠브리지 히스 역을 거쳐 베스널 그린 역에서 우회전을 했다. 오버 그라운드 열차로 아래로 난 터널을 지나는데, 주차된 승합차 아래, 깜깜한 바퀴뒤로 뭔가 '반짝' 하는 것이 보였다. 뭔가 이상한 기운에 끌려서 나는 자전거를 자연스럽게 길가에 세우고 안장에서 내려와 주변을 둘러봤다. 영국 여름밤의 건조한 공기만이 느긋하게 바스락거릴 뿐 사람들이 다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듯 길가는 조용했다. 나는 입술을 메 만지고 숨을 한번 크게 내쉬었다. 한 손으로 자전거를 핸들을 잡아 크게 돌려 왔던 길을 10m 정도 돌아갔다. 어쩐지 터널 안이 아까보다 더 깜깜해진 것 같은데 바퀴뒤에서 뭔가 다시 한번 '반짝' 하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자전거를 일단 아무도 없는 인도에 대충 뉘이고, 승합차 앞바퀴의 뒷부분에 낙엽이 수북이 바퀴주위로 쌓여있는 것을 살짝 들췄다. 연한 갈색, 진한 갈색의 말라버린 각양의 낙엽사이에 초록색 빳빳한 종이가 나왔다. 5파운드였다. 최근에 발행된 퀸엘리자베스의 초상이 담긴 신권 화폐. 이전보다 작아지고, 빳빳해진 5파운드가 맞다. 이게 어떻게 여기 있었을까, 아니 그것 보다, 이걸 어떻게 자전거 타고 가다가 봤을까 생각이 드니 맨 살에 누가 매끄럽고 얇은 나무 막대를 손목에서부터 어깨까지 쓱 밀어 올리듯이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이내 이게 내 것이 아니라 여름이 몫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누가 볼세라 그 빳빳한 새 돈을 바지 주머니에 재빠르게 구겨 넣었다. 그런데 뭔가 더 있는 것 같았다. 그 비슷한 색깔의 돈뭉치가 승합차의 뒷바퀴에 떨어져 있는 것이 우측의 시야각의 끝에 어렴풋이 걸려있다. 수십번 지나친 이 터널 내부가 전에 없이 낮고 길며, 적막하다. 어렸을 때부터 희한하게 '저건 만지면 안 되겠구나.', '저 사람은 가까이하면 화를 보겠구나.' 하는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근데 그 기운이 지금보다 강렬했던 적은 없었다.

    '저 돈은 가져가면 안 된다.'

 그래서 얼마였을지 모르는 그 돈뭉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차도, 사람도 없는 차도에 자전거를 던지다시피 세워 놓고 얼른 올라탔다. 나에게 혹은 여름이에게 들어올, 오늘의 절대적인 양의 운이라는 게 있다면, 심지어 그날이 여름이가 이 세상으로 오는 첫날이라면, 그 운이 저 돈뭉치여서는 안 된다. 나는 그 돈뭉치가 나를 더 따라오기라도 할까 봐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그 터널에서부터 쉬지않고 도망쳤다.


 집 앞에 멈춰 숨을 고르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다. 빳빳한 지폐가 손끝에 만져진다. 한참 전에 일인 것 같은데 고작 10분 거리의 터널이다. 크게 숨을 내쉬었다가 열쇠와 핸드폰이 있는 다른 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으로 시계를 봤다. 시간 아래로 가족 단톡방에 메시지가 여러 개 보인다. 숨을 멈추고 엉거주춤하게 서서 자전거를 허리춤에 기대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메시지를 열었다.

    

    [여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산모랑 아기 모두 건강하대요! (눈물)(눈물)(눈물)]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리는 사이 자전거가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자전거를 들어 창고에 욱여넣고 3층으로 쉬지 않고 뛰어 올라왔다. 곧장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더니 새 돈이 내 당황함만큼 구겨져 있다.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가족단톡방에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조카 태어날 때 런던에서 주운 5파운드

    [언니! 형부! 나 지금 말도 안 되게 길거리에서 돈을 주웠어요. 이거 내가 잘 가지고 있다가 한국에 가져갈게]









 다음 날 회사에서 카를라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한다며 포옹을 했다. 나는 감격해서 말도 안 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미처 다 보지 못한 옥자 이야기로 얼른 그 순간을 공중에 날려 보냈다. 다시 정글에 나를 초대하라고, 옥자를 꼭 마저 다 보자고. 나는 그래서 옥자를 몇 년도 몇 월 며칠에 보(다 말) 았는지 기억하고 있다. 카를라 집의 정글에서 후무스랑 터키 브레드를 먹고, 스튜어트가 민트잎을 공들여 짓이긴 모히또를 마시고 집에 가는 길에 돈을 줍고 더 많은 돈뭉치에서 도망치고 여름이가 태어난 날 그날이 너무 새파랗게 무서웠어서.  


 카를라가 어머니와 어머니의 형제, 자매들에게서 듣고 자란 필리핀의 축축하고 뜨거운 정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항상 머릿속에서 자라나는 고국에 대한 향수와 연결되어 있었던 그 아련함. 잘 기억나지도 않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그렇게 새파랗고 뜨거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이 지나고 나서 알았다. 어떤 그리움은 만나보지도 못한 이로부터도 생겨난다. 그로부터 7개월 후, 한국으로 돌아가 조카 여름이를 처음 만나 안아보기 전까지 나는 그를 매일매일 그리워했었으니까. 저 5파운드짜리 지폐도 나와 함께 7개월을 더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액자에 보관되어 여름이가 매일 밥 먹는 식탁 옆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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