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나, 그대로인 너

<인간 실격>을 읽고

by 고라니

평소에는 실감하지 못하는 나이를 문득 체감하는 순간이 있다.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었을 때다.


분명 같은 책인데 그때 읽었던 그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다르게 느껴질 때, 당황스러울 만큼 놀라고 내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데미안’이 그랬고, ‘위대한 개츠비’가 그랬고, 이번에 읽은 ‘인간 실격’이 그랬다. 생각해 보니 낯설게 다가온 책들은 모두 십 대 시절에 읽은 것들이었다.


‘인간 실격’은 그 시절 구절구절 공감하며 읽었던 책이다. 주인공 요조의 세상과 사람을 낯설어하고 견디지 못하는 모습들은 나의 모습과 겹쳐졌었다. 마냥 하루하루가 재미있고 즐겁던 유년기를 지나 당연하던 모든 것들에 의심이 생기고 심지어 가족들조차 싫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던 시절의 나. 일상적인 말들에 날 선 반응을 하고 나만 세상에서 동떨어진 듯 외로웠던 열몇 살의 시절. ‘톰 소여의 모험’ 속의 톰처럼 힘든 날이면 내가 죽으면 모두는, 세상은 어떨까를 상상하며 마음을 위로했었다. 마음이 괴로워 일기를 썼다가 글로 남긴 마음이 부끄러워 찢어버리기를 반복했었다. 한 번쯤 나를 괴롭혔던 치졸하고 부끄럽던 순간들을 누군가 엿보고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건 아닐까 싶었던 책이었다.


다시 읽은 책은, 놀랍게도 불편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완성된다는 일본 특유의 정서가 불편했고 자라지 않는 주인공이 한심스레 보인다. 혼자서는 서지 못하고, 누군가에게(심지어 자신보다 약자인 여자들) 의지하며 삶을 이어가는 주제에 의심하고 질투하는 모습은 기가 찼다. 무엇도 열심히 하지 않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견딜 수 없으면 죽음으로 도피하는 패턴을 반복하다 결국 스스로를 인간 실격이라 선언하는 마무리는 비겁하기 그지없다. 자신의 삶에 대한 작가의 변명에 고개를 흔들게 된다.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다시 책을 넘겨보다 알았다. 한 시절 나를 이해해 주고 위로를 주었던 요조를, 작가를 다시 만난 나는 시간을 버티고 견뎌 불혹을 지난 지금에 이르렀다. 세상과 타협하며 나를 갈고 쳐내며 둥글어지고 있다. 내가 불편한 이유는 아직도 뾰족하고 위태롭게 열몇의 날 것 그대로 자라지 않는 그를 통해 나이를 먹고 변해가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요조의 모습에서 열다섯 십 대를 관통하는 내 아이를 본다.


십 년 후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그때의 나는 무엇을 느낄지 아직은 불편한 마음으로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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