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를 읽고
진흙, 종소리, 거미줄, 그리고 비, 비, 비.
책을 덮고 한동안이나 마음이 무거웠다. 끊임없이 등장하던 심상들이, 분위기가 불편하게 남았다. 강렬한 제목에 그보다 더 강렬한 붉은 표지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표제어가 잊힐 만큼 의외로 책은 술술 읽혔다. 거의 하루 만에 읽어냈으니 가독성은 물론이고 문장 또한 수려해 읽는 재미가 좋다. 문제는 책을 읽고 난 후였다. 절망적이다 못해 처절한 소설 속 인물들의 상황이 냄비에 눌어붙은 찌꺼기처럼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쉬이 떨어 지지가 않는다.
때는 1980년대, 헝가리의 집단 농장이다. 이미 몇 년 전 농장은 망했고 떠날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농장에는 어디고 갈 수 없는 최악의 절망적인 사람들이 몇몇 모여 살고 있다. 먹고 입고 사는 기본적인 삶조차 이어가지 못할 만큼 상황은 바닥이다. 이때 과거 농장의 부흥을 이끌었던 이리미야시가 다시 돌아온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술집에 모여 그를 기다리며 흥분된 마음으로 무아지경의 탱고를 춘다. 그는 정부의 말단 정보원이었고 사람들을 자신이 필요한 곳으로 찢어 보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소설을 구성하는 차례다. 1부는 6개 장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된데 반해 2부는 6에서 1로 장의 순서가 역순으로 구성되었다. 탱고라는 춤의 6 발자국 앞으로 나갔다 6 발자국 뒤로 가는 형식을 차례에도 적용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벗어나거나 달라지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도돌이표의 처절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벗어난 것 같지만 실은 같은 스텝을 밟듯 무한히 불행 속에 갇힌 삶. 소설의 첫 문단과 마지막이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도 같은 의미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쳇바퀴 속의 다람쥐는 자신이 챗바퀴에서 달리고 있는 걸 모른다. 무한회귀의 늪은 태생적으로 정해진 걸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걸지 씁쓸한 지점이다.
농장 사람들에게 메시아처럼 여겨지는 이리미야시는 전형적인 사기꾼이다. 사람들의 죄책감을 자극할 줄 알고 이를 빌미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선동가다. 멀리서 보면 보이는 뻔한 거짓말이 그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 의지대로 움직였다 생각한 것들이 계획된 움직임으로 나는 단지 마리오네트처럼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인형이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산다. 농장 사람들은 결국 희망을 품고 이리미야시의 의지대로 정보원의 끄나풀이 되어 뿔뿔이 흩어진다. 단 한 명, 부커트 만이 미지막에 상황을 인지하고 비참한 마음으로 다른 길로 떠난다. 누구보다 이리미야시의 절대적 지지자였던 그였기에 떠나는 뒷모습이 더 짠하다.
소설 속 백미는 술집에서 밤이 새도록 벌어지는 탱고 춤판이다. 모든 욕망이 가시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시간이다. 살아 있어도 생기 없이 조용히 서로의 동향만 염탐하던 사람들이 봉인이 해제된 것처럼 이리미야시의 등장이라는 기대 하나만으로 활기를 찾는다. 평소 억눌렀던, 발산하지 못했던 식욕, 성욕, 쾌락에 대한 욕구가 탱고라는 매계로 모두 풀어진다. 욕망이 실체를 드러낸 순간이 사탄이 찾아오는 악의 시간일 것이다. 본래 악한 사람은 없다. 악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술에 춤에 취해 광기에 휩싸인 순간 어린 소녀가 비 내리는 거리에서 도움을 청하고 있었고 천사를 만나고 싶다며 쥐약을 먹고 숨을 거둔다. 그 시간이 교차되며 비극은 더욱 짙어진다.
사람들이 춤추다 지쳐 잠든 시간 절대 보이지 않던 거미들이 등장한다. 거미줄은 사람들 위로 켜켜이 쌓인다. 치워도 치워도 계속 생기는 거미줄은 벗어날 수 없는 체제 같다. 공산주의 체제는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거미줄 같은 덫이다. 우리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대체 몇 가지나 될까. 하나라도 정말, 있을까?
농장의 의사는 작가의 분신이다. 그는 집 밖에 나오지 않고 하염없이 농장 사람들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몰락에 자신의 기억력으로 맞서려 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기록하고 그 연결을 찾고자 한다. 그 시절 헝가리를 통과한 작가의 시대를 맞서는 의지가 이 책일 것이다. 일견 이해가 되면서도, 모두가 모두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상황은 역시 불편하게 느껴진다. 우리 또한 그런 시절을 안다. 평생을 함께 산 동네에서 옆집의 누군가가, 친구가, 동료가, 서로를 발고하고 죽고 죽이던 시절. 그래서 이 설정은 무엇보다 끔찍하다.
헝가리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전쟁은, 사탄은, 이 순간도 우리에게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그 긴 시간이 지나 아직도 찾아오는 지옥의 모습은 작가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참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