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킹스맨? A.데드풀!

<킹스맨>을 통해 본 영화 <데드풀> 의 후기

by QVD

<킹스맨1>과 <데드풀1> 두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는 '영국의 가치'를 수호하는 비밀 첩보기관 "킹스맨"이, '지구를 살리려는(?)' 목적으로 인류의 대다수를 죽여 없애려는 미국인 악당 "발렌타인"을 막아내고 인류를 구해낸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죽어가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인간을 대량 학살할 계획을 세운 발렌타인


고결하고 관대한 '영국의 가치'를 수호하는 집단 킹스맨과 대비되는 발렌타인은 이중적이고 자의적인 '미국의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피와 잔인함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는, 사람들을 서로 잔인하게 살해해 피 흘리게 만드는 이중적인 인물이며

지구를 사랑하고 자연환경을 보호하려는 그는, 그 수단으로써 대량학살을 선택하는 자의적인 인물이다.


그런 발렌타인에게서는 미국이 보인다. 미국 그 자체가.

타국에 민주주의를 전해주겠다며 침략하고 내정에 간섭하는 이중적인 태도.

세계의 경찰, 수호자 노릇을 자처하지만 자국의 이익에 따라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의적인 태도.


반면, 킹스맨의 구성원들은 고결한 신사도와 관대한 인류애를 보인다.

물론, 세계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해봤다면 그런 킹스맨으로부터 영국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흔히 영국인들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영국의 가치'라고 한다면

킹스맨이 수호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미국의 방식으로' '미국의 가치'를 실현하려던 발렌타인

'영국의 방식으로' '영국의 가치'를 수호하는 킹스맨에 의해 저지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영국식 블랙유머로 유쾌하게 미국에 한방을 먹였다.


결국 킹스맨은 제대로 흥행했고

미국은 완벽하게 복수했다.

바로 데드풀을 통해서!

<데드풀>

데드풀(deadpool)은 누군가의 죽음을 놓고 벌이는 도박을 뜻한다.

누군가가 과연 죽을지 죽지 않을지, 거기에 돈을 걸고

그 사람의 생사에 따라 돈을 잃기도, 또는 돈을 따기도 한다.


주인공 '웨이드 윌슨'은 스스로 데드풀이 되기를 선택한다.

즉, 자신이 곧 자신의 죽음을 건 게임 그 자체가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결코 죽을 수 없는,

다시 말해 '데드풀'이라는 게임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불멸의 몸이 되는 것이다.


웨이드 윌슨

그는 불명예제대한 군인이었으며

암환자였다.


사랑하는 여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죽음을 맞이할 운명에 처한 불쌍한 처지.

실낱같은 희망을 찾던 그는 스스로 에이잭스의 실험체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에이잭스는 웨이드를 비롯한 실험체들을 돌연변이로 만들기 위해 고문에 가까운 생체실험을 하는 빌런이었다.

그리고 그 생체실험의 끝에 웨이드는 데드풀로 거듭나게 된다.


암환자에 불과했던 웨이드를 데드풀이라는 강력한 히어로로 탈바꿈시킨 것은,

다름 아닌 빌런, 에이잭스라는 말이다.


빌런이 탄생시킨 강력한 초인, 이 아이러니한 경우의 유래를 어디에서 찾아낼 수 있을까?


바로 미국사에서.

16-17세기 영국

국교회와 대립각을 세우며 박해받던 청교도들

그들은 영국이 세운, 그러나 정부의 입김이 본국만큼 미치지는 못하던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전쟁과 수많은 고통을 겪었고,

그 위에 비로소 그들만의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데드풀은 바로 그렇게 태어난 미국을 상징한다.

빌런 영국으로부터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겪었고

오히려 그로 인해 강해진,

그것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 미국을.


그렇다면 에이잭스는 영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재미있는 것은, 에이잭스가 자신의 본명인 프란시스를 극도로 혐오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본명을 자꾸 불러대는 데드풀에게 집요하게 묻는다.

자신의 이름이 뭐냐고.

그가 원하는 대답 에이잭스.


그러나 그의 이름은 프란시스이다.

그러나 스스로 프란시스라는 이름을 거부하며 이를 부정한다.

왜 그는 프란시스라는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혐오했을까?


그의 본명 프란시스는 François, 즉 프랑스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물론 영국인들이 프랑스를 마치 한국인이 일본 싫어하듯 싫어하기는 한다.

그러나 좀 더 역사를 들여다보자면, 과거 영국은 프랑스와 군신관계를 맺고 있던 국가였다.

100년 전쟁으로 이 관계가 끊어지기는 하였으나 영국은 그전까지 프랑스의 충실한 신민 국가였다.

프란시스는 바로 그런 영국의 초라했던 과거를 상징하는 이름이며,

미국의 영향력에 압도되어 초라해진 현재를 반영하는 이름인 것이다.


데드풀, 즉, 전 세계를 쥐고 흔드는 강력한 미국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에이잭스, 즉, 영국에게는 화려했던 과거 대영제국의 영광을 뒤로함과 동시에 초라하고 미개했던 프랑스의 신민 국가 잉글랜드를 상기시키는 상징이 된 것이다.


데드풀이 에이잭스를 끊임없이 프란시스라고 부르는 행위는

바로 그런 영국을 조롱하는 행위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프란시스는 데드풀에게 자신의 이름을 묻는다.

잊혀가는 영광스러웠던 제국의 시대를 잊고 싶지 않아서...


두 주인공의 성격 역시 대비된다.

데드풀이 끊임없이 농담을 던지고 유머 코드를 발동하는 한편,

에이잭스는 단 한 번도 웃긴 대사 같은걸 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발랄하며 위트 있는 데드풀의 성격이 '미국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라면,

엄격하고 진지하며 근엄한 신사적인 태도의 에이잭스는 '영국의 정신'을 상징한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그런 신사적인 태도와는 상반된 에이잭스의 추악한 모습 역시 보여주고 있다.

킹스맨과는 반대로 영국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데드풀은 무조건적으로 미국을 예찬하고 영국을 까내리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데드풀은 엑스맨에 가입하기를 거부하며, 콜로서스가 강조하는 도덕률도 무시한다.

자신의 거대한 힘에 따르는 책임을 지기를 애초부터 거부한다.


스스로 자신은 슈퍼지만 히어로는 아니라고 자조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현재 미국의 자화상을 볼 수 있다.

더 이상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도록 흉측하게 변해버린 그의 모습이,

강력한 힘과 영광, 그 이면에 숨은 추악하게 변해버린 일그러진 미국을 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킹스맨>이, 발렌타인이 스스로 교회 사람들을 학살하고 해리를 죽이면서도 스스로 악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구토까지 해가는 미국의 이중적 모습을 지적한 데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하는 모습을 모여준 것이다.


데드풀은 단순히 영국의 정신을 비판하며 미국의 정신을 추앙하는 영화가 아니라

강력한 힘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데 나태하고 무능했던 미국의 태도를 반성하고 돌아보는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데드풀>은 영국이 던진 <킹스맨>이라는 질문에 부합하는 가장 완벽한 미국의 대답인 것이다.






요약하자면,

영국이 미국에 킹스맨을 물었다면,

미국은 영국에 데드풀을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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