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가 할리우드를 이겨내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일 것이다.
의견은 갈리겠으나 정답이란 건 없다.
하지만 다르게 접근해볼 수는 있다.
오스카가 무려 3개의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영화제들과 겨룰 수 있는 규모의 '단일 이벤트'라는 점에 주목해본다면 말이다.
"오스카는 로컬 이벤트"
얼마 전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에 대해 이렇게 평한 바 있다.
이 말이 미국 영화인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준 듯하다.
외국어영화상이라는 이름도 국제영화상으로 바꾸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오스카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이러한 평가가 과연 합당할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엄밀히 말하면 오스카는 로컬 이벤트가 맞으면서도 아니다.
오스카는 미국에서 개봉한 모든 영화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이다.
미국에서 개봉만 했다면 세계의 모든 영화가 오스카에 입성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룡영화상이나 대종상영화제와 같은 로컬 이벤트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스카는 ‘미국 자본이 만들어낸 영화(이하 미국 영화)’에 거의 모든 상을 수여해온 시상식이다.
이 때문에 오스카가 로컬 이벤트라는 비판을 받아온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미국 영화산업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 말해준다.
미국 영화만을 대상으로 한 시상식인 오스카가 세계 최대 규모의 시상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말이다.
즉, 오스카는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영화산업의 영향력과 스케일을,
말하자면 미국 자본이 사실상 전 세계의 영화계를 지배하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로컬 국제 이벤트인 셈이다.
오스카에 ‘순수 비(非) 미국 자본으로만 제작된 영화(이하 비미국 영화)’만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영화상이 존재하는 이유 또한 같다.
국제영화상 후보작 또한 타 부문 후보에 오를 수 있다. 실제로 몇 번씩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여지없이 작품상 트로피는 미국 영화에 돌아갔다.
오스카가 인정한 최고의 비미국 영화, 즉, 국제영화상 수상작이 최고상인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다면?
혹은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한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든 비미국 영화도 미국 영화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티스트>라는 외국 영화에도 작품상이 돌아간 적이 있다.
그러나 <아티스트>의 시공간적 배경이 할리우드라는 점,
제작진 대부분이 미국 현지 영화인들이라는 점,
그리고 예산의 일정 부분도 미국계 자본이 투입되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순수 비미국 영화라고 보기엔 어렵다는 시선이 많다.
결정적으로, <아티스트>는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지 않았다.
오스카가 <아티스트>를 미국 영화의 일부로 인식한다는 증거이다.
아시아계로서는 최초로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했던 이안 감독도 그렇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누가 봐도 아시안 영화가 아니다.
그나마 아시안 감성이 반영된 <와호장룡>이나 <라이프 오브 파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감독의 국적과는 상관없이, 미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미국 영화’의 일부분이다.
게다가 작품상은 결국 받아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기생충>은 오롯이 한국 자본으로, 한국인들에 의해 제작된 비미국 영화이다.
충무로의 영화 제작 시스템을 그대로 따른,
가장 한국스러운 방식으로 제작된
가장 한국스러운 '한국영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비미국 영화를 대상으로 수여되는 국제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오스카 최고상인 작품상을 수상했다.
92년 만에 탄생 이래 최초로
미국 영화산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오스카가,
완전한 비미국 영화인 <기생충>에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2019년 미국 자본이 개입하여 제작된 전 세계 모든 영화들 중에
오롯이 한국 자본만으로 제작된 <기생충>보다 위대한 영화는 없었다."
라고 선언한 것과 같다.
혹자는 요새 오스카를 향한 정치적 올바름과 개방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며 <기생충>이 어부지리를 얻었다고 그 의의를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기생충>의 수상 의의를 깎아내릴 수는 없다.
아무도 오스카의 목에 '<기생충>에 상을 달라'며 칼을 들이밀지는 않았다.
자본에 들이밀 수 있는 칼은 무엇이겠는가?
더 큰 자본, 더 큰 규모의 시장이다.
<기생충>을 만들어낸 한국 영화산업에는 미국 자본에 대항할만한 자본이 없다.
아니, 미국 이외의 모든 영화계에는 그럴만한 자본이 없다.
개방을 요구하는 세력의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산업과 자본은 이익이 없으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2020년, 봉준호는 드디어 자본이 아닌 다른 힘으로,
금전적 이익이 아닌 다른 가치로 미국 자본을 움직였다.
서두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일본의 소노 시온 감독은 얼마 전 이렇게 얘기했다.
‘아무리 다른 영화제에서 수상해봐야 북미에서는 아카데미 외에는 관심도 없다.’
이는 그만큼 오스카의 자본·관객 동원력이 3대 영화제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크다는 의미이다.
결국 소노 시온 감독은 일본 영화계를 떠나 미국 영화계에서 활동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거장조차 미국 자본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 자본과 미국 시장은 그만큼 거대하다.
그리고 봉준호는
그것이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뤄낸 쾌거이자 의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