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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대신 응급실에서

어쩌면 응급실 여행일지도...

by 작은물방울

대학교, 대학원 시절, 아니 30대 초반까지는,

난 진짜 세계 어디서든 어느 나라에서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여권 하나랑 약간의 돈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았다.
적응력 하나는 자신 있었고, 도전하는 것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땐 그랬다.


근데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는 한국에서 살아야겠구나.’
해외살이 꿈꾸는 거, 이제 그만할 때가 됐구나 싶은 거다.

머리로 하는 판단이 아니라,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온 결심 같은 거.



아마 그 결심 얼마 전이었을 것 같다. 신랑이랑 살짝 다퉜던 때였던 것 같다.
내가 여권이랑 100달러 꺼내 들고선,
“이거 하나면 나 어디든 갈 수 있어!”
이랬던 기억이 난다. 신랑에게 엄포 같은 거였다.

그땐 진짜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화가 나거나 토라지면… 떠나봤자 국내 어디쯤이겠지...
그나마도 집 놔두고 진짜 가출할까? 싶다. 현실적으로는.


작년에는 여행 얘기만 나오면 마음 한편이 좀 찡했다.

5월 황금연휴에 일본 여행을 가려고 다 계획했었는데,
그 기간에

나는 비행기 타고 간 일본이 아닌
엠블런스 타고 간 대학병원 응급실에 있었다.


보호자로.




응급실이라는 곳,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있는 장소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응급실에 있었던 어느 날 밤.

하룻밤 사이에 CPR이 세 번 있었고,
그분들이 살아나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분은 확실히 돌아가셨고,
가족이 운동화랑 옷가지가 든 봉투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봤다.


또 한 명은 아주 어린아이였던 것 같다.
걷지도 못하는 어린아이.


그 가족들의 심정을 내가 어떻게 알겠냐,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냐

감히 짐작도 못 하겠다.


간호사분들은 정말 말 그대로 목숨 걸고 뛰어다니셨다. 살려야 하니깐.
마음의 다급함이 진짜 그대로 느껴졌다.



엄마 옆 베드에는 젊은 남성분이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 말로는 간경화 말기라고 했다.

얇은 커튼 사이로 여러 말들이 들렸다.


의사 선생님은 "간이 두 달도 못 버틴다"
간 이식밖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가족분에게 기증자 이야기를 꺼내면서 형제관계를 묻고,
술 많이 드셨냐고도 물었다.


오며 가며 본 그 환자분 발은 퉁퉁 부어 있었고,
옆에서 간병하던 동생 분이 울면서 통화했다.

엄마가,
“아빠에 이어 형까지 이렇게 되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라고 했다더라.
그 말이 참... 마음에 남았다.



엄마 병실이 없어서 (소화기내과 병상),
응급실에서 꽤 오래 머물러 있었는데
그 덕분에 별의별 상황들을 다 보게 됐다.


한 분은 꾀병으로 추정되었다. 의료진에게는 꾀병이었다.

하지만, 계속 병원에 있기를 주장하는 환자였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까지 함부로 내쫓지 못하는 의료진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급실에 있는 보호자용 의자가 너무 불편했다.

신랑이 아이디어를 내서 캠핑의자 가져왔다.

진짜 신의 한 수였다 싶었다.
4일을 응급실에서 버텼으니까.


생각해 보면,
그때 일본 여행을 가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해외 다녀오면 코로나 검사나 그런 걸로 응급실 출입이 안 됐을 수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나에겐 엄마가 더 소중하니까.



바로 다음 달인 6월에 시아버님 칠순 여행으로 시부모님을 동유럽으로 보내드리려 했는데,
시어머니께서 요즘 우울감이 너무 심해서 결국 취소했다.
우리의 일본여행 취소 수수료 40만 원, 시부모님의 여행 취소 수수료만 60만 원…
아깝긴 했지만, 뭐 건강이 먼저니까. 어쩔 수 없다고 위로했다.



가만히 돌아보면
작년은 여행이랑은 전혀 안 맞는 해였던 것 같다.

취소 수수료만 거의 100만 원…

근데 그만큼 알게 된 것도 있다.

모든 게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구나.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긴 하구나.

그래서 요즘은 자주 이렇게 생각한다.



할 수 있을 때,
갈 수 있을 때,
쉴 수 있을 때,
행복을
미루지 말자.



이제는 나에게는
여권 하나랑 100달러만 있으면 떠날 수 있다는 그 호기는 없다.

하지만,
틈틈이 내 삶을 지키고,
나의 행복을 챙기려는 마음은
더 단단해진 것 같다.



사실 일본보다 응급실에서, 난
여행보다 훨씬 많은 걸 느낀 것 같다.



여권과100달라.jpg 일본 여행 가기 위해 찾아본 여권에는 100달러가 끼워져 있었다. 예전의 호기로움이 생각났다.



*작년 6월 30일에 작성한 글을 퇴고해서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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