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고 싶다, 아시시
코로나가 삶에 깊숙이 침투하게 된 지 10개월이 되어가고 있네요. 나에게 원하는 만큼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떠올렸을까요? 당연히 고민할 겨를도 없이 1순위로 여행을 생각했겠죠? 알프스와 자연이 곁들여진 스위스이든, 고대 유적과 자연이 숨 쉬는 남미이든, 계절이 반대여서 매력적인 나라 호주든 어디를 가는지가 문제이지, 갈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요. 코로나가 모든 걸 뒤바꾸어 놓았죠. 이제 여행을 꿈꾸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멈칫하게 돼요. 여행이 그만큼 일상에서 멀어지게 된 거겠지요?
하루 동안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또는 10일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라는 대답에 여행을 마음껏 세세하게 그릴 수 없었던 게 참 슬픕니다. 그만큼 여행에 둔탁해졌어요. 암요. 카페에서의 시간 조차 허락되지 않는 지금 시대인데, 밤 9시 이후면, 고 깃 집도, 술집도, 마트도, 헬스장도 모두 닫는 시대에 여행이란 건 사치에 불과한 느낌이에요. 어디를 간다는 걸 생각하면 아득하고 머나먼 이야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시간이 많이 주어진다면, 그리고 코로나가 없어진다면, 전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다시 가고 싶어요. 코로나 시대에 간다면 2주의 격리 기간을 포함해서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요. 이탈리아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아요.
신랑과 함께한 마지막 해외여행의 장소가 이탈리아였어요. 사실 로마는 예전 동생과 유럽 패키지로 간 적이 있었지요. 그때 로마에 너무도 빠져있어서, 언젠가 다시 꼭 오리라 생각했지요. 그래서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 한 개만을 던졌어요. 참고로,. 트레비 분수에 동전 하나를 던지면 로마에 다시 돌아오고, 두 개를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개를 던지면, 이탈리아 여행 중 큰 행운이 온다고 해요. ( 해석하는 이에 따라 세 개를 던지면 이별한다는 말도 있어요.)
2019년 3월의 트레비 분수에서 전 당당히 동전 두 개를 던졌어요. 신랑과의 사랑이 조금 더 견고해지기 위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1개만 던졌어야 했는데, 살짝 아쉽네요. 로마로의 여행이 두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른거리는 이탈리아의 모습들이 한 번 더 그곳을 방문에서 좋겠다는 확신이 강하게 드네요.
이탈리아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습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이탈리아 중부 소도시 ‘아시시’라고 대답하겠어요. 사실 아시시는 정말 작은 도시예요. 반나절이면, 아시시 시내를 모두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또 어찌나 예쁜지. 아침이라 하기에는 조금 이른 새벽시간 발코니 문을 열었는데, 고요한 느낌의 안개가 내려앉고, 초록이 보이는 나무숲들 사이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이곳이 천상계의 세계구나 싶었어요. 아시시 만 2박 3일 아니 일주일을 있어도 좋을 거 같아요. 저는 혼자만의 시간도 좋지만, 신랑과 함께하는 것도 정말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우리 부부는 ‘따로 또 같이’를 잘하니까.
땅에도 기운이 있는 거 아시나요? 특히나 신랑이 그런 걸 잘 느끼는데, 기차역에서부터 땅의 느낌이 좋다고 하더군요. 아시시는 땅의 기운이 신성해요. 성 프란체스코와 성녀 클라라의 탄생지여서 더 그럴지도 모르죠. 중부의 작은 도시여서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반일 투어로 지나가는 곳이지만, 저는 왠지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특히, 아시시의 꼭대기에 있는 로카 마조래에서의 노을은 잊을 수 없어요. 일주일을 있어도, 7일 동안 빠지지 않고 해질 녘이면 요새에 오를 거예요. 광활한 평야가 펼쳐지고, 저기 산 너머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전 눈물을 흘렸어요. 아름다워도 눈물이 흐를 수 있구나를 처음 느꼈던 광경이었죠. 그날 밤 저희는 서로 사랑했어요. 몸과 마음을 다해. 다시금 가도 참 좋을 것 같은 도시예요.
이곳의 또 다른 포인트는 3대 기적이 있는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이에요. 제가 아시시가 성 프란체스코로 유명하다고 했죠. 프란체스코 성인의 세 가지 기적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요. 첫째는 프란체스코 성인 동상이 바구니를 들고 있는데 흰 비둘기 두 마리가 700년 대를 이어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고 해요. 저도 직접 봤는데, 흰 비둘기가 있더라고요. 두 번째는 장미 향이 나는 복도예요. 사실 전 이거 믿지 않았는데, 진짜 복도를 걸으니 장미 향이 진동하더라고요. 세 번째는 이곳의 장미는 가시가 없대요. 여기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데, 프란체스코 성인이 육신의 욕망을 이기기 위해 장미 넝쿨에 몸을 혹사해 피를 흘리며 싸웠더래요. 이 모습을 본 예수님께서 장미의 가시를 없애고 욕망을 이길 수 있는 의지를 주셨다고 합니다. 저는 정원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개방되어 있지 않아서 장미의 가시 유무에 대해선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흰 비둘기들과 장미 향이 나는 복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저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엔 충분했답니다. 다시 가도 방문하고 싶어요.
장소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에너지를 충전을 할 수 있는 여행지가 있고, 에너지 방전되는 여행지가 있지요. 전 이탈리아에 다시 간다면 꼭 아시시에 들릴 거예요. 그곳이 저의 에너지를 많이 충전시켜주고, 삶의 원동력을 심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으니까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심적으로도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