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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첨물 Apr 10. 2022

40대 조직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20여 년 전 읽었던 책이 생각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열심히 치즈를 찾아다니던 생쥐는 미로 끝에서 당황한다. 치즈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누가 치즈를 옮겼을까 하고 생각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전에 많은 징조들이 있었음에도 주변 상황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함을 지적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주제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전 회사 생활은 사원 위 선임들이 있었고 10여 년 된 경험 많은 과장급 책임 연구원들과 양복 입고 다니는 부장급 수석연구원이 언제 임원이 되나 하면서 열심히 독촉하고 다니던 모습이었다. 그런데 내가 막상 40대 부장급이 되었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가 40대 중반과 40대 초반 연구원들이다. 하나의 토픽을 가지고 공정/재료를 개발하는데 모두 40대 남자 연구원들만으로 구성되어있다. 어? 이거 뭐지? 누가 치즈를 옮겼을까 하는 생쥐의 외마디를 내가 하고 있는 것이었다. 

뭐지? 갑자기 내가 그 책의 주인공인 생쥐가 된 것 같았다. 

세상이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 불러오는 내 배를 보면서도,  예전과 같지 않은 건강 상태를 보면서도 못 느끼고 열심히 회사를 다니며 일만 했었는데 갑자기 변화한 모습이 훅 하고 들어왔다. 물론 변화의 징조들은 많았다. 직급 체계가 없어지고 더 이상 신입사원들이 안 들어온 지 10여 년이 지나고, 신입 때 보았던 부장들이 이제 나와 같은 직급으로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들... 그리고 MZ 세대들의 당돌한 질문에 당황해하는 나의 모습 등등

그리고 깨달았다. 세상이 바뀌었음을...



그렇다고 내가 변화에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꾸준히 회사에서 요구하는 변화의 압력에 식스시그마 블랙벨트를 따기 위해 공부했고, 새로운 툴을 배웠다. 어느 날엔 앞으로의 세계는 창의력이 중요하다며 트리즈 기법을 배워 특허를 쓰고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고 하면서 압박했을 때는 트리즈를 공부하며 러시아 해군 장교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면서 일을 했다. 회사에서 준 기회들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학위 과정을 회사를 다니면서 마쳤고 학회에 논문을 내고 발표하러 다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회사는 투자 속도가 느려졌고, 학회 발표하는 것을 꺼려했으며, 무언가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매출은 수십조를 유지했고, 개발과 양산은 바쁘게 움직이며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이 점점 기술 성장의 포화곡선을 따라 가고 있었다. 언뜻 보면 예전과 비슷하게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 내부를 한층 가까이서 살펴보면 많은 것이 달라져 있던 것이었다. 옛날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전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공존하면서 세대 간의 갈등이 곳곳에서 관찰되었으며 매출이 수십조인데도 상장 회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문제제기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아 왜 나는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지 못했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리고 살펴보았다. 대한민국의 많은 대기업들이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고 비슷한 조직문화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총칭)’에 이어 ‘당토(당근마켓, 토스)’ 라는 새로운 플랫폼 기업들이 기업 가치뿐 아니라 그들의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전파되고 있었다.



 강호동과 유재석은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고 있지만 약간 다름을 느꼈다. 강호동의 이미지는 약간 정체된 것 같은데 유재석의 변화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은 여전히 그의 위치를 대체하기 불가하도록 만들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다르다.  100세 시대에 70이 넘는 노인의 몸이 꾸준한 관리와 운동으로 젊은이와 비슷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의 은퇴를 이제는 정말 준비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동적인 늙음이 아닌 능동적인 늙음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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