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첨물 Jul 20. 2019

디스플레이 20년 차 엔지니어가 바라보는 한일 경제전쟁

일본이 공격했다.

전쟁이다.

미사일 세발을 날렸다.

불화수소 (HF), Photo resist (EUV용), F이 있는 Polyimide


셋다 모두 익숙한 재료이다.

그리고 예전 기억이 떠오른다.



장면 1


20여 년 전 신입사원으로 부장님과 같이 일본 회사 재료 관련 미팅에 들어갔다.

양복을 입고 노트와 샤프를 들고 들어온 일본 엔지니어들은 한국 에이젼트 통역을 통해 기 배포된 자료를 바탕으로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미팅 전에 주고받은 명함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통역을 통해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부장님이

"야 나가자'

갑자스런 명령에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된 재료 관 질문에 일본 엔지니어들은 '알려줄 수 없다'로 일관되게 이야기하니

참지 못한 부장님은 그냥 나가자고 강하게 나갔다.

그렇게 하니 그제야 하나씩 자료를 오픈했다.

노트 반을 접어서 샤프로 썼다 지우개로 지우는 그들의 모습은

"야 이 정도로 꼼꼼하니 재료, 소재 선진국이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장면 2


그리고 20여 년이 지났다.

여전히 일본 재료 업체와 만나는 팅엔 일본 엔지니어들이

'파나소닉' 두꺼운 노트북으로 자료를 프로젝트로 띄우고

노트에 샤프로 내용을 적어 려가는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요한 정보들은 여전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장면 3


그리고 재료에 문제가 생겨 일본 공장이 있는 Kyoto 연구소로 출장을 갔다.

80,90년 한국 공장에서 일하는 작업복을 입고 모두 일하는 모습과

불량이 난 위치를 눈으로 하나씩 세어 노트에 기록하는 아날로그 방식의  모습들

그래프를 그려서 경향을 보기보다는 표로 데이터를 나열하는 모습

분명 일본의 소재 회사들의 경력과 노하우는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과거로 타임머신으로 타고 온 느낌이었다.

그들의 세계는 스티브잡스 이전과 같아 보였다.



장면 4


일본 엔지니어들과 통역을 통해 회의를 하다 보니 답답해서

영어로 하자고 했다.

담당 과장이 영어를 못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잘하지 못하지만 일본어를 듣고 바로 한국어로 답하면

그걸 통역이 일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식으로

회의 시간을 줄여보았다.




분명 일본 소재 산업 독보적이다.

한국 기업에 1차 납품하는 재료 이외에

한국 재료 업체가 납품하는 원재료를 들여다 보면

그 중 약 60%가 넘게 일본 재료를 사용한다.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서

관리해온 실험 방식과

그걸 통해서 하나씩 해결해 온 과정은 분명 단기간에 한국 소재 기업이 따라 잡기는 어워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전처럼 일본 재료의 우수성에 감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 독일 재료뿐 아니라 국산 재료도 비교해보면

비슷비슷한 것들이 많이 있다.

일본 소재의 장점은 독일보다 빠르고 중국보다 질이 좋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의 관행으로

생산 라인에 최적화된 일본 재료 이외에

다른 재료를 평가할 수도 없었던 문화에 있었다.




작년 국산 소재를 생산라인에 어렵게 평가를 하였는데

매번 생산라인 임원 및 엔지니어들에게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설명하였다'

그들에게는 '일본산' 재료를 대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좀 더 생산 스피드가 빠르거나 불량이 적어야 하는 이점이 있어야

평가가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료 변경은 불가능했다.

그때 시점에 왜 해야 하는지, 어느 고객이 신규 재료를 원하는지

개발 엔지니어가 찾아야 했다.

안 되는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다음 달이 되면 생산라인이 멈출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임원들에 의해 줄줄이 하부 조직까지 전달되었다.

물론 그 기간도 일이주가 소요되었지만

분명 위기감이 감돌았다.


첫 실무자 회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했지

여전히 '정말 재료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를 하고

신규 재료 평가에 드는 생산 capa 감소와

각종 환경 안전 서류 준비

라인 내 설비와의 정합성 검토 등

상당한 양의 추가적인 일 때문에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또한 숙제를 받은 부서와 실행을 해야 하는 부서가 달랐다.

그래서 문제가 더 복잡하게 꼬였다.

그러나 회의 후 시간이 지나면 조율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평가가 시작 되면 한국식으로 무척 빠르게 될 것이다.

핵심은 그 다음에 있다.

새로운 재료는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때 이걸 꼭 해결해야 하는 일인지,

아니면 상황이 바뀌었으니 나중에 해도 는 것인지

결정하는 임원의 자세에 달렸다.



나는 이번에 제대로 소재 국산화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준비되기를 바란다.

특히 국산보다 일본산이 좋다는 오래된 관행이 깨지고

지금은 안 좋은 국산 재료지만

'한번 이번에 키워보자'라는 대승적 결정이 임원진에 있었으면 한다.

그게 없으면 분명 흐지부지 될 것이다.

평가해 보니

역시 문제가 많네 하고

다시 일본산 소재를 들여와 생산을 할 것이다.

'아베 찬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전쟁이

단순 1회성 도발이 아니라

장기전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면서 상생하길 바란다.

분명 현 수준은 국산이 일본산보다 문제가 많다.

그건 처음 일본산 재료가 도입될 때도 문제가 많았음을 잊었기 때문에 하는 소리일 것이다.

수십 년 동안 그 일본산 재료를 최적화하기 위한 공정 개발을 했기 때문에

지금이 있듯이

신규 재료 최적화 작업은 수년, 수십 년이 걸릴 일이다.

긴 호흡을 가지고 이걸 준비하는 회사가

리스크를 줄이고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




갤럭시 노트로 적어 내려 가는 엔지니어와

반 접은 노트에 샤프로 적어 내려가는 엔지니어

어느 누가 잘할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필요하면 아주 빨리 적응하고 변화해가는 사람들이

이 격변의 4차 산업 세대에는 좀 더 오래가지 않을까

조용히 주장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재 국산화는 진행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