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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이 내 몸에 퍼지는 방식

by 이원아

죽음 학자인 Elizabeth Kubler Ross는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 몸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다음과 같이 관찰할 수 있다.


첫번째 – 멍하다

놀라고, 당황스럽고, 정신이 없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필요에 의해 해야 할 일을 한다. 계속 해오던 일이 있고 그것을 꼭 해야 한다면 그 일을 계속 한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은 모르지만 쨌든 몸은 그동안 해왔던 삶을 계속 이어나간다.


두번째 – 화가 난다.

누군가로부터 직접적으로 상처를 받은 경우엔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경우 ‘대체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묻고 또 묻는다. 납득하기 어렵다. 이 납득할 수 없음으로 인해 탓할 대상을 만들고 싶어진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문득 화가 나기도 한다. 괜히 신경질을 내고, 모진 말을 하고, 책임 소재를 찾는다.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직접적 원인이 있는 것 같은 상대에게 달려가 뭔가를 해야겠다고 작정하기도 한다. 무슨 말을 해야겠다고,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자다가도 일어나 씩씩거리고 원망할 대상을 찾는다.


세번째 – 무심한 세상이 보인다.

분노가 바글바글하던 어느 날, 눈 앞으로 풍경들이 지나간다. 걸어가는 사람들, 움직이는 차,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복사기에서 나오는 종이. 그제야, 세상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안에서 얼마나 큰 화가 난들, 내가 속으로 누군가를 얼마나 욕하든, 원망할 대상을 찾느라 밤을 설치든, 주먹을 꽉 쥐고 누군가에게든 화를 낼 작정을 한들 세상은 관심이 없다.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면서 나의 분노에 무심한 세상이 보인다.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하고, 바쁘게 움직이며, 각자 그들의 일상을 살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내 세상은 한동안 멈춰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나 혼자만 이 공간에서, 이 구덩이 안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 혼자만 주먹을 쥐었다 펼 뿐 다른 누구도 내 마음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다들 너무나, 세상이 무심하다.


네번째 – 나만 이렇게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아 보인다.

‘나만..’ ‘왜 나만..’ 이런 생각이 한 번 들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그 생각에 들어가게 된다. ‘왜 나만’ 이라고 묻고 싶었던 과거의 일들이 구술 꿰어지듯 하나 하나 떠오른다. 내 인생에 일어난 나쁜 일들의 목록이 자동 재생되는 영화처럼 엮어진다.


다섯 번째 – 외롭고 서럽다

무심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자각한 어느날,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나만의 공간에 오롯이 들어온 어느날

눈물이 터진다. 외롭다. 나만 이렇게 힘들다. 나에게는 지금 하루 하루 움직이는 일조차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 또 무언가를 해야하고 어디론가 가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벅차고, 이렇게 하루하루 계속 살아가는 일이 힘겹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게 놓여있는 이 슬픔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대로 주저앉고 싶고 너무나 서럽다.


여섯 번째 – 어쩌면 모든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도 그렇다. 생각해보면 내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다르게 행동하거나 다르게 말할 수 있었는데,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는데, 내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 그리고 지난 일들도 생각해보니 다 내 탓인 것 같다. 내게 일어난 모든 나쁜 일이 다 내 탓인 것 같다.


일곱 번째 – 나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뭔가 구제할 수 없는, 해결할 수도 치유할 수도 없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나쁜 일들이 내게 일어났겠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제대로 하지 못했지. 내가 그렇지 뭐, 이런 생각들을 한다.


여덟 번째 –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 내게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보인다.

사소한 실수, 누군가의 말 한 마디, 잔액이 없다며 직원에게 건네 받은 카드, 집에 두고 온 교통카드, 집에 두고 온 안경, 이어폰의 한 쪽을 잃어버린 것, 회사에서 실수로 서류 한 장을 빠트린 것, 복사를 해야 하는데 뒷면을 한 것, 구두 굽이 나간 것, 서류 순서를 잘못 섞은 것, 친구와의 약속에 늦은 것 등에 대해 (예전엔 분명 그냥 지나치거나 넘겼을 일들인데도) 내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것을 얘기하는 지표로 느껴진다.

그러다 설령 누군가 나의 실수나 사소한 문제에 대해 지적이라도 하면 굉장히 우울해진다.


아홉 번째 – 특히 집에 돌아와서 혼자 있을 때, 밤에 자기 전에 돌이켜보니 내 인생의 크고 중요한 일들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했던 것, 최고의 결과를 내지 못했던 것,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상처를 받았던 경험, 좋게 끝나지 못한 관계, 나를 떠나간 사람, 일이 잘 되지 않았던 것들이 떠오르며 내 인생의 크고 굵직한 선택들이나 사건들에서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그 모든게 다 엉망이라는, 내 인생은 엉망 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겪는 이 일도 원래 구린 나라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 같다. 스스로가 패배자고 루저라고 느껴진다. 일상에서 위축되고 자신감이 줄어든다. 쉬웠던 일조차 어렵게 느껴진다.


열번째 – 내 인생에 대한 나쁜 판단과 생각이 들고 동시에 그것들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다.

자꾸만 어쩔 수 없었던, 이미 지나간, 내 힘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의 문제들에 대해 생각한다. 분명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잘못되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내 인생이 문제 투성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열한번 째 – 완전한 무력감을 느낀다.

나는 어찌할 수 없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열 두번째 – 슬프고 억울하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근데 난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럼 난 해도 안 되는 구나.

주변 사람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갑자기 모든 것들에 서러움과 서운함을 느낀다.


열 세번째 – 내 인생에 희망이 더 이상 없어 보인다.

내 인생을 구제할 수 없다. 내 인생은 나쁜 일로 가득할 것이고 그에 대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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