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과 나, 그리고 타인들

by 이원아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가장 많은 통찰을 주는 것은 바로, 타인이다. 우리는 나쁜 일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많이 배울 수 있다.

나의 주변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는 나쁜 일이 내게 남기는 것들의 핵심 챕터에 속한다.


1. 타인들은 어떤 마음을 가질까

내게 나쁜 일이 생겼을 때 타인들이 가질 수 있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때 우리는 기본적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상상력 사전>에서 한 말을 기반으로 한다.

<그들이, 내게 가졌다고 표현하는 마음들>

당연히 그들은 내게 '어떡해' '많이 힘들겠다' '힘내' 와 같은 말들을 많이 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나쁜 일을 당한 사람 앞에서 '꼴 좋다!' 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잘 없다.


<그들이 실제로 가질 수 있는 마음들>

1. 진심어린 위로와 유감스러운 마음, 내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 내게 힘이 되고 싶은 마음


2. 장기하는 '별일 없이 산다' 발매 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Q: 예전에 노래 ‘별일 없이 산다’가 만들어진 배경을 들었거든요. 사람들은 내게 별일이 있길 바라기 때문에, 별일 없이 산다고 말해줘야 한다고요. 차라리 마음을 숨기겠다니까 궁금하네요.

A: 어머니 말씀을 듣고 만든 노래예요. 친부모라든지 사랑하는 애인이라든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은 제가 잘되길 바라죠. 하지만 대부분은 안부를 물을 때 뭔가 좀 안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기도 하잖아요. 남이 잘 안 되면 반사적으로 안도감이 드니까요. 일견 나쁜 마음이긴 하지만 자연스러운 사람 심리예요. 그 앞에서 “나는 별일 없는데~” 라면 약 오르지 않을까요?


모두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노력하고, 노력하는 만큼 초조해하고 불안해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얼마나 비싼 땅을 샀나' 궁금해하며, '나는 과연 땅을 살 수 있을까' 걱정한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 그래서 누군가 나쁜 일을 당했다고 하면 반사적으로 안도한다. '나는 나쁜 일을 안 당했구나',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독하지만, '잘됐다'라고 실제로 생각할 수도 있다. 당사자에 대해 대해 평소 가졌던 생각이나 감정에 따라 다르다.

- 나쁜 일을 당한 사람을 평소 미워했을 경우

- 나쁜 일을 당한 사람이, 상대에게 잘못한 것이 있을 경우

- 나쁜 일을 당한 사람에 대해 평소 열등감이나 시기 질투가 있었던 경우

등등, 그 마음의 매커니즘은 다양하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그 일을 당해 참 꼬시다'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인간 마음의 움직임이다.


<그들이 내게 보일 수 있는 행동들>

- 나를 위해준다. 내게 위로의 문자를 보내고, 내게 맛있는 것을 사준다.

-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즐거운 활동을 함께 하고,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되는 진실들>

- 나에게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과 에너지이다.

- 실질적으로 나를 도와주는 것과, 나를 말로 위로해주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 나는 지금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나의 나쁜 일을 통해 무언가 배우는 것만큼, 타인들도 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 어떤 타인들은 그것을 그들의 삶에 적용한다. 내가 나쁜 일로 인해 주춤해 있는 사이 어떤 이들은 나의 나쁜 일들을 교훈 삼아 도약하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고, 더 빨리 걸어간다.


그리고 어떤 타인들은 나와의 관계를 조정한다.

- 더 멀어지거나

- 더 가까워지거나


어떤 타인들은 나와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설정한다.

- 나쁜 일이 "전염"된다고 생각해 나와 가까이 하기를 주저하거나

- 혹은,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나에게 일어난 나쁜 일에 대해 상세히 듣기 위해 나와 좀더 가까워 지려고 한다

-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들은 이야기를 외부에 전하며 성취감 또는 쾌감, 친밀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쁜 일을 통해 사람이 싫어지기도, 더 좋아지기도 한다.

분명히 좋은 사람들은 있다. 그들은 나의 나쁜 일에 대해 과도한 감정을 보이지 않고, 나를 위로해주되 담담하고, 나의 이야기를 듣되 함부로 퍼뜨리지 않고, 나의 나쁜 일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묵묵히 내 곁에, 전에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있을 뿐이다. 나와의 관계에 변함은 없다.

그런 사람들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더 드러난다. 모래 속에서 찾은 반지처럼, 우뚝 솟아 내 마음에 들어온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짙어지고 깊어진다.


반면 싫어지는 사람들이 생긴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내 나쁜 일을 통해 안도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들에게서 보인다.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궁금해하는 모습이 보인다. 혹은 직접적으로 내게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선이나 벽 같은 것이 내 마음 속에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부당하지는 않다. 이 순간이라면 더더욱.


여러 일을 겪으며 느낀 건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는 것.

좋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분명 있는데, 그건 아주 운이 좋아야 하고 인연이 닿아야 하고 마음이 통해야 하고 내가 그들을 옳게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 것.

운이 안좋아서 잘못 걸려서 나쁜 사람들에게 쏟게 되는 시간과 에너지는 정말 아깝다는 것.

애초에 무탈하게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

그럼에도 삶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때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툭툭 털고 살아가는 힘을 우리는 '회복력'이라고 부른다는 것

그리고 나쁜 일을 겪는 건 이 '회복력을 강화하는 데' 굉장히 좋은 훈련이라는 것.

keyword
이원아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팔로워 77
매거진의 이전글나쁜 일에 대해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