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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아 Feb 25. 2022

1부 - 나쁜 일이란 무엇인가

나쁜 일에 대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생각들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가보자. 전지전능하고 공정한 판단 능력을 갖춘 AI 로봇이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매일 나를 지켜보며 내게 일어난 나쁜 일과 좋은 일의 스코어를 따지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응애- 내가 태어났다.


인간으로 태어난 일이 나쁜 일인지 좋은 일인지는 여기선 묻지 않기로 하고 태어난 그 순간에 내게 일어난 나쁜 일을 0, 좋은 일을 0으로 계산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0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나라에서, 어떤 지역에서, 어떤 성별로, 어떤 집안에서,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신체적 조건으로, 어떤 유전자의 조합으로, 어떤 형제자매적인 위치로, 어떤 부부 간 관계 아래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외모를 가지고, 장애의 유무, 어떤 얼굴색 및 인종, 어떤 조상, 어떤 가문, 어떤 목소리와 발성법을 가지고 태어났는지에 따라 – 그 자체의 가치로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제공되는 이익/불이익의 현황에 따라 굳이 이야기하자면 – 태어난 그 순간에 이미 내게 일어난 ‘나쁜 일’ 또는 ‘좋은 일’의 수치가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0점에서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100점에서, 어떤 사람은 -100에서 시작한다.


아주 어린 시기에 부모로부터 혹은 보호자로부터, 양육자로부터 받은 보살핌의 정도와 종류 등에 따라서도 수시로 스코어가 달리 매겨진다. 물론 ‘올바른 양육’이란 무엇인지를 물으면 여러 개의 혹은 사람 수만큼의 정답이 나올 테지만, ‘나쁜 양육’에 대해서는 오히려 점수를 더 쉽게 매길 수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3살 아이를 때리거나, 굶기거나 하는 걸 두고 좋은 양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그리고 우리 모두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고 선택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많은 것들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오래 주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얘기를 여기서 더 깊이 다루지는 않기로 하자) 


그 다음에는 또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들어간다고 할 때, 수많은 "나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또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누군가 내 간식을 빼앗아 가기도 하며, 선생님이 옆 친구만 칭찬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낯선 이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하고, 또 이웃집 아주머니한테 이유 없이 혼나기도 한다. 


하…. 태어나면서부터 정말 나쁜 일은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이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어린 시절에 생긴 나쁜 일은, 나의 잘못이나 선택이나 책임도 아님에도 내 삶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기도 하고, 대체로 내가 바꾸거나 어찌할 수 없다는 거다. 내가 어떤 가족을 만나는지, 어떤 성향과 어떤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지, 신체나 외형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솔직히 어느 누구도 내 취향이나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 


이 부분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고 그 결과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선택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기 때문에 새롭게 다가오는 나쁜 일들을 처리하는 데에 바쁘다. 게다가 선택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지나치게 몰입할수록 오히려 더욱 나쁜 일을 끌어당긴다는 깨달음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것에 얽매일수록 나에게 손해라는 생각이 깊이 들었다. 왜냐면 그것을, 이미 바꾸지 못할 삶이 내게 준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좋은 일이 우리 손을 잡아 끄는 데도 그것에만 눈을 돌리고 있다면 스스로를 잡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니 유년기를 보내고, 대체로 청소년기에 접어드는 때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나쁜 일은 내게 상처를 주었거나 나를 힘들게 한 모든 일 또는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 모든 것들을 통틀어 ‘사건’(?) 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나쁜 일’이라고 계속 지칭한다면 이 책에 ‘나쁜’이라는 단어가 수십억 번번 나올 테니 말이다.


말과, 행동, 내가 본 것과 겪은 모든 것들이 ‘사건’에 해당한다.


모든 인간은 나쁜 일 앞에서 공평하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나쁜 일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나쁜 일이 생긴 그 이후의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쁜 일을 내가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의 측면에서 어제와 지금과 내일은 같다.

그러니 나는 언제든 나쁜 일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과 싸울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간 내게 일어난 나쁜 일에 대해 정확하게 충분히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쁜 일의 정체에 대한 생각과, 나쁜 일이 나를 데려가는 곳에 대한 관찰, 나쁜 일과 나를 분리하기 위한 탐구들을 계속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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