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일기 첫날.
금주 다짐을 기념하며 음주에 관한 유명한 책, 출간 즉시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은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원제는 Drinking: A Love Story 이다.
“나는 술이 내는 소리를 사랑했다.
와인 병에서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술을 따를 때 찰랑대는 소리,
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캐롤라인 냅이라는 작가가 썼다. 정신분석학자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밑에서 쌍둥이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81년 브라운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이후 20년간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심각한 중독에 몇 번 빠진 적 있는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드링킹>,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 <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좋아하는가>, <앨리스 K. 의 인생 가이드> 등을 썼다. 마흔 둘이라는 이른 나이에 폐암으로 별세했다.
“나는 마셨다”로 책은 시작한다.
I DRANK
나는 마셨다
리츠칼튼호텔에서 퓌메 블랑을 마시고, 회사 건너편의 칙칙한 중국 식당에서 조니워커 블랙 온더록스를 더블 샷으로 마시고, 그리고 집에서 혼자 마셨다.
(중략) 술을 끊기 전, 집에는 언제나 코냑 두 병이 있었다. 한 병은 전시용으로 부엌 탁자에 보란 듯이 올려놓았고, 진짜는 낡은 토스터 옆 찬장 뒤에 잘 감춰두었다. 전시용 코냑은 상당히 합리적인 수위 감소세를 보였다. 보통 일주일에 1인치 정도. 하지만 진짜 코냑은 아주 빠르게, 때에 따라서는 며칠 가지 않아 사라졌다. 그때 나는 혼자 살았는데, 그러면서도 이런 이중 행위를 한 것은 그러지 않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겉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내게 언제나 중요했다.
나는 기뻐서 마시고, 불안해서 마시고, 지루해서 마시고, 또 우울해서 마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에는 병석에 계신 아버지의 장식장에서 술을 훔쳐 마셨다.
술은 그녀의 집착을 부채질했고, 그녀의 눈물을 부채질했으며, 그녀의 절망감과 무기력을 훨훨 부채질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작은 일부는 은밀한 안도감을 느꼈다. ‘술주정은 추한 일이야. 그 주정뱅이가 여자라면 더욱’. 그녀와 나를 비교하면 우월감과 안도감이 밀려왔다 – 21p
‘미친 짓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이번 한 번 뿐인 걸. 이번 한 번은 스카치를 가져가야겠어. 이번 주는 정말 스트레스가 많았으니까. 스카치라도 마시면서 나를 달래고 싶어. 어때? 별일 아니잖아.‘ -24p
술은 식도를 태우며 내려갔고, 나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것은 따뜻하고 푸근했다. 만일을 대비해서 보험을 들여놓는 듯한 기분이었다. – 25p
이들은 대부분 대인관계가 좋고 친구도 많다.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들은 주변에 아주 흔하다. 이들은 직장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식품점 계산대에 얌전히 줄 서 있다. 의사, 변호사, 교사, 정치인, 화가, 심리치료사, 증권거래인, 건축가 등 전문 직업인도 많다. -28p
극도로 눈썰미가 예리하거나 그 또한 알코울 중독에 시달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실제로는 날마다 숙취에 시달리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하루가 기울어갈 무렵이면 당장 달려나가 술을 마시고픈 생각에 몸을 비튼다는 사실을,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내 인생이 온통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을. -30p
물이 대지를 흐르듯이 알코올은 가족의 핏줄을 타고 흐른다 -49p
마티니는 아버지의 천성적 무뚝뚝함을 거두고, 깊은 슬픔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63p
나는 그 5년 전부터 날마다 술을 마셨지만, 아버지가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자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아버지의 질병은 내 가슴에 바닥 모를 두려움의 구멍을 뚫었고, 나는 그것을 채우려고, 거기서 달아나려고, 그것을 마비시키려고, 미친 듯이 술을 마셨다. -81p
보호 장치 – 85p
그것이 없으면, 그 갑옷이 없으면 세상에 맨몸으로 서게 되는 듯한 허기지고 질긴 두려움 – 87p’
AA (알코올 중독자 치료 모임) 모임에 가면 늘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안에 어떤 공허의 우물이 뚫려 있다는 것, 술에서 헤어나려면 그 우물을 채울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이라는 이야기를. -90p
그리고 그것은 일정 기간 맞는 말이다. 술은 우리 안에서 아픔과 괴로움을 일으키는 것들을 녹여버리고, 다른 자아가 들어설 자리를 만들어낸다. 그 자아는 새롭고 개선된 버전일 뿐 아니라, 갈등 같은 것도 훨씬 적은 버전이다. -100p
“술을 마시면 내가 원하는 내가 되었어요”
“술을 마시면 내 마음 가득한 더러운 기분이 사라졌어요” -101p
AA 모임에 나가면 가장 먼저 듣는, 그리고 가장 먼저 우리 가슴에 사무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알코울 중독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인격이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다. 술은 우리가 성숙한 방식으로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하려면 겪어야 하는 힘겨운 인생 경험을 박탈한다 – 113p
술을 마시고 남자를 사랑한다. 술을 마시고, 술 마시는 남자를 사랑한다 – 127p
알코올 중독자들이 이중 인생을 영위하는 것은 하나의 삶을 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 하나의 삶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선명한 이해에 기반을 둬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132p
애인들에게 악착같이 집착하는 방법으로 성장이라는 버거운 과제를 피하며 살았다 -133p
인생을 진전시키는 의미 있는 사건들은 정신이 명료할 때 일어난다 -146p
미국에서 알코올 중독을 육체적 질병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1960년에 엘빈 모턴 젤리넥이 <질병으로 본 알코올 중독>을 출간하고부터다. -188p
‘.그렇다면 내가 문제가 아니었네. 심리 분석이나 의지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어’ -183p
알코올 중독의 길에 들어서고 나면, 확률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다시 안전하게 술을 마실 길, 정상적이고 사교적이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음주로 돌아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이런 일을 설명할 때 오이와 피클이라는 비유를 든다. 알코올 중독자는 피클이 된 사람들이다. 오이가 피클이 되지 못하게 막을 수는 있지만, 피클이 된 것을 오이로 되돌릴 수는 없다 -184p
처음 우리를 술 속에 던져넣은 원인은 곧 우리를 다른 끔직한 것들에도 척척 던져넣는다 -192p
미국 내 알코올 소비량의 절반이 11퍼센트의 인구가 소비한다 -222p
“내가 술을 마실 때마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는 언제나 술이 관련되어 있었어요” -231p
그녀가 두려움과 불안, 우울을 잠재우려고 오랜 세월 지속해온 만성적이고 일상적인 음주는 자기 통제력을 망가뜨렸고, 시각을 왜곡시켰으며, 선택의 여지를 생각해볼 수 없게 만들었다. -237p
“남자의 승인을 통해 내 존재 가치를 느끼고자 하던 일” – 240p
이런 식으로 감정을 다스리려고 술을 마신다면, 그 감정을 극복하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 255p
AA에서 말하는 회복의 12단계 가운데 첫 단계는 이렇다.
우리는 알코올에 대해 자제력을 잃었음을 인정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수습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갔다. -272p
고통스러운 선택을 하는 대신, 그에게서 벗어나는 대신, 나 자신을 추스르는 대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대신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고 그런 역학에 무너졌고, 남자 앞에 무너졌으며, 분노에 무너지고, 처절하게 집착하고 있었다 -330p
알코올을 개입시키지 않고도 다른 사람과 따뜻한 유대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 – 339p
그때 주류 판매점으로 달려나가 술을 사지 않은 것은 단 하나, 첫 잔은 바로 둘째 잔으로 이어지고, 둘째 잔은 다음 잔, 또 다음 잔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중의 하나다. 한 잔도 마시지 않거나, 한 잔을 마시고 한 병 혹은 그 이상을 갈망하는 것. 내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딱 한 잔’이란 없었다는 것을. 349p
그 순간까지도 나는 성장이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며, 어른이란 생물학적인 나이가 아니라 정서적인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정서적 수준이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선택하는 것임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359p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신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 뿐이다. -36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