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 대한 걱정으로 이 편지를 좀처럼 마무리 지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되묻지만 잘 지내고 있나요? 마지못해 하는 답변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잘 지내고 있는가요?
이제 당신은 세상에 혼자 남게 되겠지요. 나는 갈대처럼 흔들리는 당신을 오랫동안 잡아 줄 수 없어요. 나도 갈대마냥 흔들리고 있어 그대와 서로 바람 부는 대로 부딪치고 얽히며 참는 수밖에요.
병원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는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잠이 들지 않는 침대 위의 그녀는 연신 목이 마른지 물을 달라 아이처럼 조릅니다. 당신은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잠을 줄여야 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겁이 나서 잠을 못 잤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녀는 유일한 당신 편이었으니까요.
낮이고 밤이고 집에 가자고 생떼를 쓰고 소리를 질렀어요. 소변줄이 꽂혀 있는 것을 알면서도 화장실에 가자고 하며 걷고자 했어요.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때 한 번이라도 걸어 나가서 차갑고 신선한 겨울바람을 한 번 맡게 해 줄걸, 아니면 휠체어도 있는데 뭐 그리 나가면 안 된다고 복수로 가득 찬 배를 안고 버텼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건 후회인가 봅니다.
하루에 한 번 회진 시간마다 들어야 했던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예상한 내용이라 덤덤하게 당신의 얼굴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연명치료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는 모든 것을 거부했고, 그것이 의사소통이 되던 시절에 그녀가 원하던 것이라 길게 설명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흔들리고 엉망인 글씨로 그 한 장의 종이에 두 번의 이름을 적을 때, 과연 이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당신의 머릿속은 바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늘 생각합니다. 당신은 괜찮은지. 정말 괜찮은 건지.
결국 그녀는 찬 바람이 불지만 좋은 날에 당신 곁을 떠났습니다. 당신의 작은 손이 머리를 만져 주던 그 느낌을 알고 떠났을 것입니다. 하얗고 튼튼한 천에 포장되듯 묶여 장례식장으로 가는 그 차에서도 슬프진 않았을 겁니다. 그저 붓기로 터질 듯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던 엄마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가슴에 껌처럼 들러붙어 본인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만 생각이 났겠지요.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그곳의 차디찬 보관실에 들어가는 엄마를 볼 때도 그랬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저 웃으며 울고 있는 손님들을 받고 엄마를 땅으로 보내고 나서야 그녀는 아무도 없지만 엄마의 향이 가득 찬 집에 돌아와 한없이 울었습니다. 이젠 보듬어 줄 사람도, 반찬과 국을 잔뜩 해서 무겁게 집으로 돌려보내는 사람도 없습니다. 급하게 만든 엄마의 영정사진은 활짝 웃고 있지만, 사실은 엄마와 직전에 싸워서 연락이 뜸했던 것만 기억이 납니다. 그녀는 엄마와의 큰 추억도 없었던 것이 그리 서러웠습니다.
그대, 그러니까 나는 아직 괜찮지 않습니다. 많이 울었지만 엄마를 아직 보내지 못했습니다. 하루를 버티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있을 것만 같아 불을 켜지 못합니다. 부르면 대답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엄마가 없는 하루는 생각보다 길고, 나는 여전히 보내지 못한 딸로 남아 있습니다. 그 먼 길을 가다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다만 내가 많이 사랑했고 지금도 놓지 못한 채 살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엄마의 주름지고 굳은 발이 부드럽고 따스한 곳을 밟으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모르는 이 편지를, 오늘은 여기까지 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