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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Apr 23. 2018

그림자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겠니

연극 <아마데우스>, 천재가 아니어서 괴로운 사람들에게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사람이 있다. 그게 공부든, 일이든 어쨌든 그 분야의 센스를 타고난 것일 테다. 아마도 수재(머리가 좋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 정도겠지. 그리고 천재가 있다. 배우지 않아도 열을 아는 사람이다. 0에서 10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사회적 편견, 재능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가정환경 등 열악한 조건의 알을 깨 부시고 부화하는 것이 천재. 어찌 됐든 천재이기 때문에 표가 나는 것이고, 세상의 기준을 뛰어넘기 때문에 알을 깰 수 있는 것.

 그리고 세상의 기준을 만드는 수많은 범재가 있다. 하나를 배우면 하나, 많으면 셋 정도를 깨우치는 사람들. 안타깝지만 죽어라 노력해도 천재는 될 수 없는, 그들에게 붙는 최고의 찬사는 '노력파'가 다인 사람들. 연극 <아마데우스>는 그 '노력파'들에게 보내는 슬픈 위로이다.



출처:페이지1






노력도 미덕이다.

 살리에리는 음악을 사랑했다. 음란한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저 착실하고 성실하게 살았다. 음악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곡을 쓰기 전에 항상 신께 기도드렸다. 더 좋은 음악을 쓰게 해 달라고. 그러기 위해선 자신에게 영감을 허락하는 신에게 잘 보여야 했다. 그래서 더 신실하게 신을 섬겼고, 더 열심히 곡을 썼다. 살리에리는 범재보다는 수재에 가까운 인간이었을 것이다. 수재가 노력까지 하며 신을 열심히 섬기니, 살리에리 자신이 신이었다면 스스로가 기특하여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천재라고 소문난 모차르트를 만나게 됐다. 여인의 치마 속에 얼굴을 묻고, 레슨비는 술값으로 탕진해버리고, 겸손이라는 미덕은 눈곱만큼도 없는 모차르트를 보며 실망한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음악만큼은 실망스럽지가 않다. 마치 신의 목소리 같은, 처음부터 끝까지 견고하고 완벽하게 짜여진 악보...

 그 천재 앞에 자신의 노력은 아무 쓸모가 없다. 신께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드리는 시간, 몇 번이고 수정했던 악보, 모차르트를 환영하기 위해 작곡했던 행진곡. 노력도 미덕이라지만, 자신이 공들여 작곡한 곡을 한 번 듣고 수정해버리는 모차르트를 보며 어찌 절망감을 안 느끼겠는가. 차라리, 인성이 좋기라도 하면...

 신이시여, 저런 가벼운 녀석을 왜 당신의 도구로 선택하셨습니까?

출처:페이지1






빛과 그림자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서로에게 결핍된 부분을 갖고 있다. 모차르트에게는 현세의 힘이 없다. 돈, 명예, 권력 등이다. 모차르트는 재능에 대한 감사함이 없다. 극 중에서도 몇 번을 말한다. "작곡은 너무 쉬워요" 여자를 좋아한다는 소문 때문에 제자도 없고, 희박한 경제관념으로 그나마 번 돈을 유흥비로 써버린다.

 살리에리에게는 현세의 힘이 있다. 돈과 권력, 궁정작곡가라는 명예도 있다. 그러나 가장 간절히 원했던 천재적 재능이 없다. 살리에리는 신에게 충성한 듯 하지만, 사실은 신과 거래를 하고 있다. '내가 당신을 이렇게 섬기니, 나에게 세속적 부와 명예를 주시오. 그리고 더 좋은 음악을 주시오.' 그러니 모차르트를 보고 화가 날 수밖에. 내가 그렇게까지 당신을 섬겼는데,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지?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생긴다. 하지만 빛은 그림자가 없어도 스스로 찬란하게 빛난다. 그림자를 자처한 살리에리. 스스로 빛날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바닥은 벽은 죽음의 뒷모습일 텐데 그림자들은 등이 얼마나 아플까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껑충껑충 뛰어오를 때 홀로 남겨지는 고독으로 오그라드는 그림자들의 힘줄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한 사내가 또는 한 아이가 난간에서 몸을 던질 때 미처 뛰어오르지 못한 그림자의 심정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몸은 허공 너머로 사라졌는데 아직 지상에 남은 그림자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이원, 그림자들









평범한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모차르트는 명성을 잃고, 쓸쓸히 죽어갔다. 신은 왜 그에게 천재적인 재능을 줬으면서, 작곡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그러나 왜 살리에리에게는 음악 말고는 모든 것을 잘 하게 만들었을까. 안타깝게도 살리에리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모차르트는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다. 그의 음악은 계속해서 연주되고, 더 넓은 곳까지 울려 퍼진다. '음악은 모차르트로 시작돼서 모차르트로 끝난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살리에리는 질투에 눈이 멀어 모차르트의 삶을 파괴시킨다. 그의 오페라를 조기 종영시키거나, 아버지의 죽음이 트라우마로 남은 모차르트에게 레퀴엠 작곡을 의뢰하는 등 경제적, 심리적 고통을 동시에 주며 서서히 파멸하게 만든다.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은 주셨으나, 재능은 주지 않아 자신을 벙어리로 만들어버린' 신에 대한 분노가 모차르트에게로 굴절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음악만을 사랑했던, 음악을 위해 살아왔던 살리에리에게는 모차르트가 '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에게 "당신이 날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용서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늙어가는 살리에리. 모차르트를 죽인 사람으로 남고 싶지만, 사람들은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자신의 간접적 살인을 믿어주지 않는다.


 모차르트를 만난 이후로 스스로를 한 번도 사랑하지 못했던 살리에리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의 평범함을 용서합니다.

 

 수재에게 위로받는 범재가 되니 슬프지만, 그래도 알겠다. 아직도 내가 '발견되지 못한 원석'이라는 덧없는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아닌 것 같다. "작곡이 쉽다"고 말하는 모차르트와 달리, 나는 글 하나하나가 꽤 어렵다. 그래도 내 글을 꾸준히 읽어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그리고 나에게 글 쓰는 꿈을 꾸게끔, 좋은 글들을 써준 천재들에게 고맙다.




연극 <아마데우스>


 




 당신이 몇 년째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있더라도, 쇼미더머니에 몇 번째 도전하고 있더라도, 낭만 가득한 카페를 차리고 싶지만 돈과 시간이 부족해 꿈만 꾸고 있더라도 - 당신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을 용서합니다.








+) 영화 <아마데우스>도 있다. 연극은 4월 29일을 끝으로 막을 내리지만, 영화는 영원하니 보셔도 좋을 것 같다. 영화도 연극만큼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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