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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Mar 20. 2018

깊고도 기쁜 슬픔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천재는 단명(短命)한다

 우리나라에는 단명한 시인들이 몇 있다. 김소월은 스물아홉에, 이상은 스물일곱에, 박인환은 서른에 죽었다. 그리고 『입 속의 검은 잎』을 쓴 시인, 기형도는 스물아홉에 죽었다. 기형도는 89년 3월의 어느 날, 한 극장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모순적이게도 그가 ‘시인답게’ 죽어버려서, 그의 시는 더 빛이 난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섭고도 당연한 운명이다. 우리는 죽음이 무서워서 죽음을 노래한다. 하지만 기형도에게 죽음은 마치 친한 친구 같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詩作 메모 中


 기형도는 죽음에게 끌려간 것이 아닌, 죽음을 따라 간 시인이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지듯이, 그는 신이 숨겨 놓은 여러 가지 이치들을 시(詩)를 통해 폭로하고 미련 없이 다른 세계로 가버렸다. 부재(不在)가 존재를 증명하듯이, 죽음은 삶을 증명한다. 그의 시들은 죽음을 노래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가 살아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천재는 단명한다. 그러나 기형도는 천재이기 때문에 단명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번 생의 몫을 모두 감당했기 때문에 떠나갈 수 있었다. 중앙일보사에 입사하여 글을 쓰다가,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이 되고, 극장 안에서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누가 그에게 그런 역할을 맡겼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이 어둡고 깊은 감정을 노래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
-「진눈깨비」 中






그의 무기는 시

그의 삶은 산업 사회의 부조리함과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외로운 투쟁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 목련 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 …… /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대학시절」 中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이 세계에서는 찾지 못했다. 총성이 울려 퍼지고, 친구들은 국가의 기관으로 끌려가고, 지식인은 침묵하는 억압적인 시대. 80년대의 많은 시인들처럼, 그의 무기는 시였고, 그는 묵묵하게 저항적이고 어두운 시들을 써갔다. 그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 세상 위에 유토피아가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정거장에서의 충고>)들은 실현이 불가능함을 이미 인식하고 있는 그의 염세적이고도 현실적인 사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대의 아픔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개인의 내면에 깊숙이 박혀있는 슬픔을 끄집어내기도 하였다. 그의 시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그 시대의 더 어두운 개인을 성찰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시詩는 시대에 맞선 무기가 아니라, 개인의 슬픔에 맞선 무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 …… /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헤매었으나 /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中

 기형도의 시는 스스로를 한 번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 자신에게 보내는 자백의 연서(戀書)이다. 그의 시는 시종일관 죽음을 노래하는 허무주의적인 성향을 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육체가 떠난 뒤 남겨지는 영혼에 대해서 생각했다.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지만, “가엾는 내 사랑”을 “빈집”(<빈집>)에 놓고 가는 시인이었다.









길 위의 슬픔

  기형도의 시에는 여러 공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도시’ 혹은 ‘서울’은 기형도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긴다. 그는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 덕분에 저는 도둑질 말고는 다 해보았답니다.”(<鳥致院>)라고 말한다. 기형도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런 그에게 서울은 가혹하고 차가운 공간이었던 것이다.

한번 꽂히면 어떤 건물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 김은 중얼거린다, 이곳에는 죽음도 살지 못한다 / …… / 한 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오후 4시의 희망」 中

 

반면 ‘길’은 그에게 도시(혹은 삶)에서 떠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가는 비 온다>)라고 말한 것처럼, 길은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는 또한 시에서 여행자, 행인, 지나가는 사람 등의 단어를 자주 썼다. 그는 삶에 대하여 여행객의 태도를 지녀왔다.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 /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中


 기형도가 20대에 시로 남겨놓은 그의 삶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길 위에 머물렀던 외로운 생이었다. 그의 청춘은 겨울처럼 춥고 배고팠다. 우리의 청춘과 기형도의 청춘을 함께 들여다본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그의 슬픔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모두 슬픈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뻐하다가도 슬퍼지는 존재이므로, 슬픔을 건강하게 환기하는 방법을 항상 고민해야 한다. 기형도가 남겨놓은 슬픔의 흔적들이 우리에게는 그 방법이 될 것이다. 때로는 기쁨보다 슬픔이 우리를 진실되게 하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슬픔을 마주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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