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코르셋에 대하여
'진지한 수박' 매거진을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 '수필을 쓰지 않겠다'라고 다짐했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 대한 내 신념을 글로 남기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다. 나의 가치관은 아직 형성되는 중이기에 색이 옅고, 언제든 바뀔 수 있으며, 뿌리가 깊지 않다고 여겼다. 이렇게 글까지 썼는데, 나중에 그 생각이 바뀌면 어떡해? 그런 창피한 일을 만들 수 없는, '폼'이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피했다.
하지만 만들었다. 수필을 쓰려고 판을 깔았다. 그리고 첫 글의 주제로 '탈코르셋'을 잡았다. 이 글을 읽는 내내 약간의 걱정을 안고 있을 나의 친구에게 말하고 싶다. 이건 '이렇게 하자'보다는 '나는 이랬다'라는 글이니까 괜찮아.
탈코르셋 : 보정 속옷을 뜻하는 코르셋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않을 것을 주장하는 사회적 운동을 말한다. (출처:네이버 오픈사전)
나는 정말 말 그대로 중고등학생 때 '탈코르셋'의 인간화였다. 그 시절에는 꾸밀 줄 모르고, 그럴 돈이 없기도 했으니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예쁘고 잘 꾸미는 친구들도 있었다. 예쁘고 말랐던 친구가 있었는데, '걔가 밤마다 학교 운동장을 뛴다더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 친구의 마름이 타고난 것인지 혹은 노력의 결실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근거가 되는 소문이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어쨌든 학교 교실에서 보이는 그 친구는 참 예쁘고 말랐었다.
그에 비해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오히려 평범보다 조금 못생긴 학생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고, 긴 교복 치마를 입고, 통통한 몸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렇지만 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다니는 게 창피하지 않았다. 중요한 사실을 말하자면, 행복하지도 않았다. 급식실에 갈 때, 시험 끝나고 강남역으로 놀러 갈 때,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갈 때 - 내가 예뻤으면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판단할 때 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오기를 부렸다. 교복 입을 때만큼은 꾸미고 싶지 않았다.
은연중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살이 넘으면 이렇게 다니지 않기로 해'라고 암묵적인 약속을 걸어오는 사회를 절대로 피할 수 없음을.
20살이 되어서 안경을 벗고, 살을 빼고, 화장을 하니 짠-하고 달라진 나의 모습을 기대 안 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재수를 했다. 그리하여 나의 본격적 꾸밈은 21살부터였다. 외모지상주의의 정글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365일 다이어트를 했고, 인터넷 쇼핑몰을 자주 들여다봤다. 처음으로 파마도 해보고 염색도 해봤다. 눈썹을 뽑고, 깎아가며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건 22~23살쯤. 굉장히 놀랐었다. 눈썹의 모양도 중요하구나.... 게을러서 그랬는지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한 발씩 늦는 편이었지만, 아무튼 꾸준히 진화해가는 중이었다.
탈코르셋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런 말 하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행복했던 것 같다. 꾸며진 나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것도, 번화가에 놀러 가는 것도 즐거웠을 거다.
나는 불편한 것을 굉장히 못 참는 사람이었다. 기분이 언짢은 것은 꽤나 잘 참는데, 몸이 불편한 것은 절대로 참지 못했다. 구두를 신으면 발이 너무 아팠다. 나는 그게 내 발볼이 넓은 탓인 줄 알았다. 그래서 취직하기 전까지 낮은 로퍼 말고는 구두가 하나도 없었다. 그 로퍼마저도 고무로 만들어진 잘 늘어나는 로퍼였다. 그런데 모든 여자들이 하이힐을 신을 때 아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배를 조이는 바지는 절대 안 입었다. 밥 먹을 때 너무 불편했고, 숨 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여자들이 허리를 조이는 옷을 입었을 때, 밥을 덜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많은 여자들(어쩌면 남자들까지)이 '괜찮아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바보같이, 운동화 신을 때와 구두 신을 때가 같으니까 구두를 신는 줄 알았다. 그리고 구두를 신으면 불편한 발볼이 넓은 나의 평발을 조금 원망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집에 돌아오면 구두를 벗어던지고 맨발의 자유로움을 만끽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나는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는가. 두 번째, 편한 하이힐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가.
대학교 2학년 때, 무슨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나는 안경을 쓰고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입었다. 어느 날의 옷은 상의는 줄무늬, 하의는 땡땡이 반바지, 신발은 체크무늬 운동화였어서 친구가 사진을 찍은 적도 있다. 만약 그때도 탈코르셋 운동이 공공연했다면 다들 나보고 '탈코'한다고 칭찬 혹은 욕을 했을 거다. 그때 나는 잠을 좀 더 자고 싶고, 몸이 편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졸업반 때는 다시 열심히 꾸몄다. 대학교 2학년 때 쌓은 꾸밈 에너지를 펑펑 썼다. 그렇게 졸업을 했다. 내가 탈코르셋 했었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 게 아니다. 매일매일 꾸미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그것이 내 즐거움인 줄 알았으므로.
나는 '꾸밈'이 배려의 차원이 되었으면 한다. 중요한 날의 TPO만 지킨다면, 나머지 날은 누구나 자유롭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자유로움이 진정한 행복이 되었으면 한다. 탈코르셋의 흐름에 휩쓸려, 다른 사람들의 눈 때문에, 엄마가 살쪘다고 잔소리해서, 다른 사람들이 말랐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많이 깨지고, 싸우고, 다투고, 합의해야 한다. 생각보다 긴 토론이 될 것이다. 우리의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가 되어도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린 계속해야 한다. 더 나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