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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Jun 29. 2021

살구 떨어지는 날에, 문득

내 고향 유월은 살구가 익어가는 계절!

산책 가는 길에 아파트 화단에 노랗게 익은 살구들이 떼굴떼굴 떨어져 있다. 지난 오월 빗물을 다 빼버린 하늘이 안구건조증에 걸린 태양을 매일 굴리느라 살구가 떨어진 줄 몰랐다. 장대 내리침 같은 장대비를 맞아야지만 떨어지는 속성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성한 것들을 주워 살구잼 한 병 만들어두면 좋겠지만 정기적으로 수목 소독을 하는 관상용 나무 열매를 굳이 엎드려 줍고 싶은 생각 없다. 짓무른 살구들은 당분간 개미들의 횡재수, 눈으로만 호강하고 만다.      

이른 봄에 꽃이 피는 과실수들은 열매도 빨리 내어준다. 가을을 기다리지 않고도 조숙하는 이 무렵 매실 살구 자두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삼켜진다. 혀가 오그라들면서 두 눈이 절로 감기는 신맛이 발그스름 익어가면 단맛이 들었다는 신호, 새콤달콤 구미를 당기는 자두를 위해서라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있다.    

 

고향 집 동산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한 그루 살고 있었다. 동산길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언덕 초입에 비스듬히 서 있는 나무는 봄이 다가왔음을 제일 먼저 알려주었다. 겨우내 꼭꼭 숨겨 두었던 연분홍 손수건들을 꺼내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어주었다. 그 나무가 사는 언덕배기 번지수는 유년의 이웃집보다 더 깊고 또렷이 내 기억 속에 음각되어 있다. 그 누구보다 매혹적이고 아름답고 온정이 넘치는 존재였다.

     

살구나무 아래에는 암소가 둥지를 틀고 지냈다. 가끔 송아지를 데리고 오순도순 지내기도 했다. 동산을 오르려면 소가 사는 앞길을 바짝 지나쳐 가야만 했다. 단 한 사람의 발걸음만 수용하는 비좁은 오르막길 사면 아래쪽은 논 구덩이. 고삐 매어진 소가 코를 벌름거리며 가까이 다가올까 봐 마음 졸이며 조마조마 간신히 뛰어오르곤 했다. 그 길은 암소의 허락을 받아야만 통과할 수 있는 길목이었다. 

    

내 고향 유월은 살구가 떨어지는 계절!

밤새 장맛비가 다녀간 아침 이웃 주민이 암소를 매어놓기 전 재빨리 둥지를 탈환해야만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주황색 갓 떨어진 살구알을 줍기 위해서였다. 간혹 소똥 옆에 떨어진 살구를 주울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다. 어차피 소똥 밭인데. 이 무렵 시골 아이에게 단물을 내어주는 과일은 살구밖에 없었다. 무서운 소똥 밭을 기웃거릴 만큼 간절한 목마름이었다.    

 

살구나무 바로 위에는 할머니 한 분이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이 분은 우리 집과 먼 친척 되는 주동댁 할매이다. 동산 중턱 손바닥만 한 공간에 단칸방 쪽마루 낸 지붕을 얹고 살았다. 이 집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이다. 살구나무 언덕길이 왼편이고, 동산의 모서리를 밟아가며 오르는 급경사길이 오른편이다.     


어린 내가 동산 모서리를 밟아야만 되는 경우가 일 년에 두세 번 있었다. 그냥 맨몸으로 올라가도 숨이 찬데, 두 손에 둥근 쟁반을 받쳐 들고 조심조심 심부름 가는 길. 보자기 덮은 쟁반에는 밥 국 탕 생선 과일이 담긴 명절 음식이 들어있었다. 경사진 각도에 저항하는 그릇들이 수평을 맞추느라 안간힘 쓰는 내게 들으라는 듯이 몹시 달그락거렸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국물이 조금 쏟아진 쟁반을 들고 할매집 쪽마당에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디면 안도하는 한숨과 함께 저 멀리 탁 트인 수평선이 푸른 보자기 끈을 풀어서 선물을 한 보따리 안겨주는 것 같았다. 내 눈썹에 수평선이 얹히는 순간이다. 그 맛에 힘든 줄 모르고 심부름 다녔다. 흰 수건을 머리에 동여맨 할매는 혼자 살았고 가난하였다.  

    

장맛비가 나무를 시원하게 훑은 날에 할매는 노란 살구를 한 됫박 주워서 산에서 내려왔다. 단물에 허덕인 아이들에게 한 됫박 살구는 너무너무 반갑고 귀한 먹거리였다. 짓무른 과육을 발라가며 좀 먹으려 들면 큼지막한 씨가 반 차지한 먹을 것도 별로 없는 ‘빛 좋은 개살구’. 입가에 덕지덕지 생색내는 단물을 발랐다.   

  

내 고향 유월은 오매불망 그리던 살구를 먹는 계절!

돌쟁이 아기 주먹만 한 떡살구라는 게 있다. 살구 몸집이 찰떡처럼 차지게 붙어서 한 개를 먹어도 푸짐했다. 초등학교 가는 언덕길 오른편에 교장 선생님 사택이 있었다. 사택 앞마당에 6년 동안 6월 딱 한 달 침을 질질 흘리며 오가게 만든 그림 같은 떡살구 나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6학년 유월 어느 날, 소사 아저씨가 수업 중에 갑자기 양동이를 들고 나타났다. 6학년 아이들에게 떡살구를 하나씩 나눠주라는 교장 선생님 특별지시라면서. 흥분한 아이들은 와와, 탐스럽게 익은 떡살구 한 알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6년을 기다린 인내의 시간을 충분히 보상해주었다.      


빛 좋은 개살구든 떡살구든 살구는 내 유년의 언덕 꼭대기에 달린 금단의 열매이다. 황홀한 봄날의 살구꽃이 그랬었고, 손 닿을 수 없어 소똥 밭을 기웃거린 허덕임이 그랬었다. 요즘 마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살구에게 선뜻 손길이 가지 않음은 왜 그럴까.


어린 나를 약 오르게 하고, 그렇게 샘통 올린 맛은 그저 그래서?     

언젠가 호기심으로 사 먹어본 그 맛도 그저 그랬다. 그럼에도 마른 장마철 널브러진 이 도시의 살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저 빛깔 좋은 금단의 열매를 제대로 값을 치러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 감질나는 작은 팩에 담긴 것이 아닌 5kg 정도 왕창 사서 가물가물한 떡살구의 맛을 다시 한번 진하게 맛보고 싶다는 생각. 실컷 먹고 남으면 잼을 만들던가, 건과일을 만들어보고 싶다. 피부미인 만들어준다는 살구씨 가루도 꿀에 개어 얼굴에 덕지덕지 붙여가면서.    



      

단지 내 떼굴떼굴 구르는 살구, 줍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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