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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Jul 12. 2021

1. 나의 의식주

- 집 이야기

사람은 장소에 대한 회귀본능이 있다. 회귀본능이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대상은 고향이다. 그다음은 자신이 한동안 몸담고 살았던 동네로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발길이 당긴다. 거기 나의 지난 시간이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기 때문이다. 장소는 추억을 재생하는 영사기가 되어 슬로비디오를 틀어줄 준비가 언제든 되어있다.     

주말에 그 비디오를 잠시 틀어보고자 신혼 생활이 시작된 산 아래 작은 도시로 가보았다. 처음에 전세살이 2년이 지나 소형 아파트를 장만했다. 하늘 아래 고층에서 태어난 두 딸내미들의 고향인 셈이다. 만 두 살에 이 동네를 떠난 큰딸은 그대로 보존된 길거리 모습을 보자마자 기억이 난다며 남대천을 거슬러 오른 연어같이 팔짝팔짝 좋아했다. 낡은 민트색 공중전화 부스도 그대로, 수저통을 샀던 지하 보물창고 가게도 그대로, 아파트 출입구에는 제철 맞은 능소화가 여전히 피어있었다.    

  

지나가버린 나의 청춘이 저러했을까. 핀 듯 만 듯 무심히 자신의 어여쁨을 분질러 꺾고서 새로이 피어나는 꽃송이들. 떨어지는 꽃송이에 한눈팔 겨를 없이 꽃은 피고 또 피어 시들지 않는 여름날의 열정을 화장을 고치듯 농염을 덧바른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서 복도 끝 한때 우리 집이었던 그 집 현관문을 바라본다. 어린이용 핑크색 자전거 두 대가 나란히 서 있다. 삼신할미가 딸을 점지해주는 집인가 보다. 지금도 뉘 집 아이들의 꿈이 예쁘게 자라는 스윗홈이 되어주는 그 집. 세상 모든 집은 그 자체로 위대하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딱지치기를 하고 있다. 시끌시끌 온몸을 도구화하여 딱지 뒤집기에 열중하는 아이들이 흑백 TV에서 튀어나온 옛날 아이들 같다. 길거리 어디를 가든 스마트폰 화면만 멍청하게 바라보는 아이들과 시간격차, 공간격차, 지능격차, 추억격차를 벌이는 우월하고 순수한 아이들이다. 저 아이들이 예전 나의 흔적을 찾게끔 이 공간에 더 몰입하게 해준다.


남편은 쓰라린 기억을 떠올리며 아직도 자신의 안경이 실종된 지점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신혼 때 남편은 일주일에 두 번씩 회식을 치르곤 했다. 그 당시 회식 문화는 1차 밥 2차 음주 3차 가무로 이어지는 유부남에게는 가정불화의 원인을 톡톡히 제공했다. 새벽 한두 시를 넘어서 정신이 혼미하여 들어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심신이 괴로웠다. 디지털 번호키가 보편화되기 이전이라 초인종을 누르면 열어줘야 하는 어느 늦은 겨울밤 새벽 한 시를 넘어 초조하게 기다리던 초인종 소리를 듣고서 흐트러진 남편 모습을 보는 순간 그대로 남편 안경을 벗겨 복도 너머 공중으로 날려버리는 극약처방을 했다.    

  

금지옥엽 안경이 실종되는 사건을 겪고서야 정신을 차린 남편의 귀가 시간은 자정을 넘기지 않게 되었다. 건너 건넛집 남편도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밤새 쫓겨나서 복도에 웅크린 모습을 목격하는 날도 있었다. 수수한 차림새로 암자가 있는 가파른 등산길을 자주 다녔고, 근검절약하여 융자금을 다 갚고도 돈이 모였다. 그러는 동안 귀여운 아기들이 태어나서 나는 엄마가 되었다. 나무 그늘이 유난히 짙은 산책로로 유모차를 밀면서 다닌 그 집이 아이 둘이 생기자 갑자기 비좁게 여겨졌다.      


이 길로 유모차를 밀고 다녔다, 그대로다


집을 고르는 나의 취향을 존중받을 수 있는 약간의 여유가 생겼고 산과 호수를 끼고 집 근처에 대학교, 대형 마트가 있는 이웃 도시로 이사 갔다. 층수는 여전히 두 층 내려온 고층, 아래층에 몹시 예민한 여자가 살고 있어서 층간 소음을 문제 삼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또래 엄마들을 만나서 친구들이 생겼고 역시 등산을 자주 다녔고 첫 시집을 내게 되었다.     

 

나는 산 아래 전망 좋은 이 집을 좋아했다. 거실에 앉아서 산 능선에 얹힌 너럭바위를 바라보는 고도가 좋았다. 연둣빛 신록이 번져가는 봄 산을 좋아했고 아침에 일어나서 맞이하는 눈 내린 설산을 특히 좋아했다. 부엌 쪽 발코니로 나가면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의 바위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관악산이 내 시야를 사로잡고는 저녁노을을 황홀하게 태워주었다. 동서 조망권이 탁월한 이 집이 싫증 나지 않았음에도 새 아파트를 분양받게 되었고 9년간 살던 집을 떠나 지금 집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 양가 부모님의 도움은 일절 받지 않았다. 오로지 자력갱생뿐이었다.      


층수는 지상 가까이 확 내려와서 안정감 있는 눈높이에 거주하게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산과 호수가 가깝고 근처 대학교가 있고 지하철역 가까운 살기 좋은 곳이다. 다 따져서 고른 것도 아닌데 이런 조건의 집을 좋아했는지 우연의 일치이다. 좋은 집의 조건은 건물 내부 환경과 집이 자리 잡고 있는 위치 외부환경의 조화로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과밀한 도시환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강남 비싼 집에 들어와 살래도 거부하고 말 것이다. 나의 몸을 비닐로 감싼 듯 갑갑하고 숨이 턱 막힌다. 두 발로 걸어서 산과 호수에 닿을 수 있고, 언제나 새소리 들리고, 남향 밤하늘에 붉은 여름 별 하나 가만히 떠오르는 지금 이 집이 너무나 좋다.    

  

가끔 생각해본다. 나의 다음 집은 어디가 될지… 지상으로 차츰차츰 내려왔으니 다음번에는 아예 땅에 바짝 눌러앉아서 살고 싶다. 맨발로 밟아보는 텃밭이 딸리면 더 좋겠다. 하얀 조가비 박힌 화단에는 철 따라 꽃을 심고 수피가 아름다운 나무를 심고 싶다. 키는 작으나 맵시 있는 소나무, 하얀 자작나무, 여름 배롱나무, 가을 모과가 노랗게 떨어지는 정원을 그려본다.     


과밀한 닭장에서 스트레스받고 오늘 아침에 죽은 닭 이야기를 잠시 하겠다. 지난봄, 이웃 아저씨가 만들어준 병아리 부화기에 달걀 열세 개를 넣어두고 엄마는 아침저녁 들여다보았다. 적정 온도 습도 조명까지 정성으로 들여다본 결과 병아리들이 알 껍질을 깨고 나와 삐약거렸다. 노란 병아리들은 노란 좁쌀을 쪼아 먹고 물을 마시면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종이상자로 만든 부화기는 점점 비좁게 되었고 그중에 약한 병아리 두 마리가 그만 발이 밟혀서 절룩거리게 되었다. 엄마는 신선한 배춧잎을 넣어주기 시작했고 병아리 티를 벗은 닭들은 사람도 들어가면 못 나오는 견고한 닭장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절룩거리던 닭 두 마리는 계속 후유증이 남게 되었다. 엄마가 모이를 넉넉히 넣어줘도 힘겨루기에서 밀린 녀석들은 모이가 부르는 조건반사에 뒤늦게 달려가도 또다시 앞선 녀석의 뒷다리 차기에 밟혀버렸다. 잘 못 얻어먹어서 더욱 비실비실해진 녀석 한 마리는 끝내 두 다리를 절룩거렸다.    

  

남은 찌꺼기를 겨우 먹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으면 그나마 동정심을 가진 닭 두세 마리가 주위를 둘러싸고 앉아서 “꼬꼬” 걱정해주었다고 한다. “너 이래 가지고 어쩌노?” 하면서. (엄마 말 그대로 옮겨 적음)  

   

이래선 안 되겠다 판단한 이웃 아저씨가 다시 비실이들을 분리시켜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전용 닭장을 지어주었다. 절룩거리는 닭 두 마리를 널따란 새집에 이주시켰다. 걱정을 한시름 던 엄마의 기대를 저버린 채 두 발이 다친 비실이는 새집에서 이틀을 살고 오늘 아침 생명을 다하였다. 스트레스원이 갑자기 사라지자 긴장이 풀려서는 생명의 끈마저 스르르 놓아버렸다. 닭이 살아가는 닭장도 이러하거늘 인간 사회는 오죽할까.     

집은 단순히 잠자고 거주하는 물리적인 구조물이 아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서 꿈을 키우고 사랑하며 나이 들어 죽음에 이르는,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을 실어 나르는 움직이는 배 한 척이다. 배는 닻을 내려 정박하고 있지만 하늘의 구름과 바람이 시간의 노를 저어 움직이는 동력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집도 나이를 먹고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경주 양동마을 한옥은 조상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성채 같았다.    

  

현대인들의 좋은 집에 대한 갈망은 늘 허기를 부추긴다.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공기 좋고 친자연적인 지역일수록 집값이 떨어진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공동주택으로써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새로운 아파트를 원하지 않는 필요충분조건이다. 만수위에 이른 우물 같다고나 할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우물 말이다. 아이들이 다 자라서 독립하고 나면 작은 정원이 딸린 붉은 기와를 얹은 집이 내 마지막 집이기를 소망한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 집이라면 바랄 나위 없겠고 그저 하늘이 탁 트인 집이면 좋겠다. 

                                   

슬로비디오를 틀어준 주공아파트 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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