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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Jul 26. 2021

조선백자, 옛 향기 속으로

올여름 태풍의 사절단 중 제일 먼저 도착한 손님은 한증막 같은 무더위였다. 찜통 열기 가득한 골목길을 헤쳐 피서지로 찾아간 곳은 ‘조선백자 특별전’이 열리는 이화여대 박물관이었다. 남국에서 올라온 거대한 비바람도 조선백자의 고요한 숨결에 와닿으면 순식간에 사라질 광란의 일탈일 터, 그 자태를 보고서야 서늘한 그리움으로써 뜨거운 여름살이를 감당해낼 작정이었다.


설레는 발걸음은 희고도 푸른빛이 감도는 백자 호와 마주치면서 시간여행이 시작되었다. 알맞게 부풀어 오른 어깨와 가슴을 거쳐 쭉 뻗어 내려오는 허리의 기울기는 완만하지만 모딜리아니의 소녀상 긴 목처럼 날씬하여 군더더기 없는 곡선의 이끌림에 제압당한다. 백중 보름달빛이 한 줌 서린 듯 청명한 기상이 지체 높은 양반집 안주인의 흠집이라곤 묻어나지 않는 얼굴을 닮았다. 무명 저고리 옷고름을 단정히 맨 별당 아씨가 어른거린다. 아무것도 그려내지 않은 무심의 표정에서 그토록 많은 인상들이 우러나올 수 있을까. 툭 건들면 맑은 물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은 동그란 입구로부터 쉼 없이 풀어져 나오는 바람 같은 이야기들! 처염상정(處染常淨, 더러운 곳에 머물더라도 항상 깨끗함을 잃지 않는다) 연꽃들이 피었다 지기를 되풀이해도 그 모습 그대로인 물의 본성을 빼다 박았다.



보물 제645호 백자철화 운룡문 호 옆에 나란히 백자청화 운룡문 호가 전시되어 있다. 백자철화에 그려진 용이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당혹스러워하는 걸 보면 이무기로 살던 호수에 중요한 물건을 놓고 승천한 것 같다. 

"너 왜 그랬어?" 나무라는 듯 엄격해 보이는 청룡의 마음을 얻지 못한 상심의 눈빛이 참 해학적이고 인간적이다. 여의주를 놓친 큰 실수를 하였다면 일백 년쯤 대기하는 벌을 받으러 물속 깊이 회향하였을 게다. 실과 바늘 사이 암수로 보이는 두 마리 용이 구름 사이로 꿈틀대며 운기 상승하는 박진감이라니 보고만 있어도 기운이 펄펄 난다.



유백색 달 항아리에 이르러 조급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한 발 떨어져 훌륭한 인품을 대하듯 경외심으로 지켜본다. 그 넉넉한 품에 안겨 옴짝달싹 운신했던 비좁은 언행들을 다 비워버린다. 풍상은 입었어도 세월의 주름은 비켜간 항아리는 텅 비었다. 물로 씻어 흔들어도 헹궈낼 수 없는 지독한 그림자의 모순을 떨쳐내지 못해 더 정감 간다. 형태학적 미의 완성도를 높이는(?) 좌우 비대칭 항아리는 불완전한 삶의 방식으로도 균형감각을 지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기우뚱하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안정감은 오랜 연륜으로부터 체득한 지혜 아닐까. 


물이나 기름을 채우는 것은 주인 마음이지만 텅 빈 그 자체로 존재감을 발휘한다. 따라줄 수 있음은 넉넉하기 때문이다. 비어있음은 다시 채울 수 있음을 말한다. 채우고 비우는 그릇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생긴 그만큼 주고 비우고 다시 채우고... 흘러넘치지만 않으면 된다. 넘침은 적재적소에 나눠줄 수 없는 무관심 무성의 고갈 다름 아니다. 차라리 비워두는 게 낫다.


등잔 밑이 어두울수록 빛은 더욱 밝게 비치는 법, 모든 피조물의 존재방식도 예외가 아니다. 샛별 하나 뜬 여명의 고독으로부터 아침을 깨우는 달 항아리는 창호지를 걸러 투과하는 남향 햇빛처럼 포근하다. 두레박으로 갓 길어 올린 우물 맛이 난다. 살풋한 어머니 살 냄새가 난다. 지치고 힘들어도 찾아갈 곳 없는 내 불평을 다 말해보라 한다. 듣는 귀 하나만으로 삶은 도리를 다하는 거라고, 제 그림자를 다독이고 사랑하는 항아리의 고백을 들으면서 전시관 코너를 돌아 푸른 모란꽃이 그려진 화접문 호와 합을 만난다.



가마터에서 막 구워 건져낸 윤기를 자랑하는 도자기 피부의 실체란 이런 것이다. 뼈를 녹이는 뜨거운 불속에서 물오른 예쁜 얼굴을 창조해내는 흙은 목화토금수 오행의 근원 중 나무와 금을 품고 물과 불을 이기는 으뜸이라 할만하다. 고작 백세를 내다보는 인간의 손으로 빚은 백자는 자비로운 흙의 품성과 불의 심장을 간직하여 천년만년 살고도 그대로인 자연에 버금가는 생존을 하고 있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이 활짝 피어날 적에 가마솥 뜨거운 밥의 온기를 저 세련된 합에 담아서 귀한 복록을 누리던 그릇 주인은 누구였을까.



백자청화 국화문 병 굽에는 덕온공주가 살던 저동궁에서 사용된 것임을 나타내는 한글이 표기되어 있다. 덕온공주(1822년~ 1844년)는 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셋째 딸이다. 16세에 남녕위 윤의선과 결혼하였고 1844년 5월 24일은 헌종의 간택일이었는데, 둘째 아기를 배어 무거운 몸으로 경사에 참석하였다가 급체를 하는 바람에 죽었다고 한다. 


상기할 점은 이 술병이 관상용으로 두고 보는 실생활과 먼 까다로운 그릇이 아니라는 것이다. 늦가을 뜨락에 첫서리를 맞고 은은하게 풍기는 국화 향에 취한 저동궁에 초빙된 애주가들은 사철 헷갈렸을 것이다. 백의를 입고 한지에 매난국죽을 불러들여 사대부의 정신을 일필휘지 시서화로 그리다가 백자 술병으로 맑은 곡차 한 잔 따르는 선비의 지조는 고매한 경지에 이르렀다. 집착하다시피 순결한 백색에 튀는 먹 한 방울의 배척 정신이 온 세상을 덮는 하얀 눈보라 그친 뒤 드러나는 실상과의 마주침에 놀랄만한 혼란 아니었던가. 미적 완결을 지향한 백색 주의가 놓치고 만 슬픔들이 솔바람처럼 아득한 시간의 저편에서 불어와 조선백자를 휘감고 돌아나간다.



유려한 곡선을 따라 가지를 뻗은 소나무는 부드럽게 몸통을 틀어 언제 어떻게 휘어질지 모를 깎아지른 벼랑의 생존법을 충실히 이행한다. 백자청화 송죽인물문 호는 절벽을 타는 그림이다. 영생하는 낙락장송 그늘에는 신선 같은 인물 두 사람과 시중을 드는 아이가 현장감 있게 움직인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보아 때는 여름, 나무 아래 책상을 펴고 독서 삼매경에 취한 인물은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책장을 넘기자 책을 덮고 시심에 취한 듯하다. 


소나무 바로 옆에 뿌리내린 대나무는 소나무와 반대로 구도를 잡고 낭창낭창 바람에 못 이겨 마디마디 부러질 듯 한가롭다. 합죽선처럼 둥글게 퍼진 푸른 솔잎도 바람을 부르거니와 또렷한 솔방울 모습, 호방한 필치로 각도를 트는 소나무 가지의 절제된 방향감각이 여백을 고려하면서도 바람의 대명사 대나무와 어우러진 수작이다. 다시 불어오는 저 솔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인물의 서정은 바뀌고 변하였다. 지금의 우린 가난하고 맑은 자연의 바람을 외면하기 일쑤다. 온갖 문명의 이기를 쐬고 벗은 듯 얇아진 옷을 입고서도 더 덥다고 아우성이다. 한 그루 소나무 그늘에 잠겨 청풍 유람하는 선비의 풍류와 아치(雅致), 너무 멋스럽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전시공간을 따로 할애한 국보 제107호 백자철화 포도문 호에 당도하였다. 높이 53.5cm에 이르는 대작은 그 뿜어내는 기운이 상서롭다. 풍만한 가슴의 굴곡을 따라 포도넝쿨의 자유로운 기개가 담장을 막 넘어오고 있다. 구불구불 덩굴손의 의지는 곱슬머리처럼 구속을 싫어하는 본능에 충실하여 탐스런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장인의 고집과도 닮은 넝쿨은 잘록해지는 허리 위에서 유희를 멈추었다. 화선지에 흠뻑 물먹은 듯 농담을 조절한 포도 이파리는 붉은 철사 안료로도 담녹색의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다. 


원래 대상과는 전혀 다른 한 가지 색깔로써 더 사실적으로 표현해내는 기법은 농담이 아닐는지. 평면으로 펼쳐진 한지처럼 자유자재로 곡면의 도자기에 공중에서 떨어진 포도넝쿨의 생생한 동작을 저리도 실감 나게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고색창연 순백의 여백으로 타 넘어온 포도송이를 탐하지 않을 자 나와 보시라. 삼복더위를 오히려 좋아하는 청포도들이 익어갈 무렵 어느새 풀벌레 찌르르- 선선한 산들바람 불어올 것이다.



조선백자는 형태, 빛깔, 회화 세 요소를 모두 갖춘 무결하고 영속적인 예술작품이다. 더 위대한 것은 기능적 쓰임새도 다 하였던 생활 자기였다. 예술이 생활이고 생활이 예술인 선조들의 미적 혜안이 반영된 백자는 당대 최고의 평가를 받는 근거이다. 손 닿을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의 거리를 헤쳐 가까이 다가온 타임캡슐 도자기들의 아름다운 실체를 보고 눈길로 쓰다듬고 느낄 수 있었다. 차갑고 따스한, 풍만하고 날씬한, 먼 가까운, 별빛 달빛 바스라진 햇빛, 물과 불, 흙과 바람, 부드러우며 까슬한, 인간과 자연의 무궁한 조화를 모두 여기 담아두었노라! 

한여름 열기에 더해 아궁이에 불 때서 밥해 먹고 살아온 조상 영전에서 더워도 덥다고 말하지 말라. 그윽하고도 서늘한 신윤복의 미인도 속 여인과 박물관을 데이트하고 나온 바깥은 2015년 7월, 정신문명은 한 수 아래다.




조금 시원해지셨나요?

서늘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조선백자를 바라보노라면

옛시간의 단단한 매듭이 느껴집니다.

선조들의 매끈한 손길이 만져집니다.

몇 백 년의 시간이 담긴 그릇이어서, 시간의 형태미를 완성하는 곡선에

눈길이 머뭅니다.

화려한 색을 배제한 빛깔에 매료됩니다.

그 빛은 우리에게 도달하기 위하여

멀고 먼 시간의 거리를 여행하며 건너온

별빛 달빛과도 같아서

더 간곡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생명의 불꽃은 스러져도 가마 불꽃으로 남긴 도자기들!

흙과 불의 합작품,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원형입니다.

온갖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사람의 내면에 만들어지는 그릇을 생각해봅니다.

그 그릇은 불길이 거셀수록

단단하게 차오릅니다.

나만의 지혜로 완성해가는 그릇이 

조선백자처럼 아름다우면 좋겠습니다.

향기를 담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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