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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Aug 10. 2021

이기적인 여름휴가 반납

전날 잡아먹은 수탉 한 마리의 부재 때문일까. 

자정을 넘기면서 시작된 닭들의 외침은 밤새 극악스럽게 울어댔다.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쇳소리 연발. 

“누가 우리 수탉 잡아갔어?” 따지는 소리가 들렸다. 

먼동이 터 올 무렵 닭 울음소리는 경쾌하고 힘차고 푸근한데 말이다. 지나치게 밝은 가로등 불빛이 부추긴 닭들의 불면증이 내게도 도졌다. 모기 소리는 애애앵, 씃씃 쓰르르- 쓰르라미 소리, 아아윽 아아윽 요상하게 우는 길고양이 다녀가는 소리. 뭇 생명들이 발설하는 밤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다 깨다 밤새워버린 여름 하룻밤이 다하였다.     


밀짚모자 몸빼바지 팔목 토시를 착용한 노동자로 변신한 시각은 이른 아침 6시. 고추 200포기를 심어놓은 고추밭 네 고랑이 그 시각 이미 불바다이다. 익을 대로 익은 고추밭의 불을, 해가 뜨기 전에, 모조리 따서, 꺼놔야 한다. 고추나무가 매단 새빨간 태양광 전구를 작은 전지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냈다. 서서, 엎드려서, 쪼그려 앉아서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한 그루씩 소화해나간다. 몇 걸음 전진하고 나자 허리가 아프고 땀이 솟구쳤다. 앉았다가 일어설 때는 어질어질 어지러웠다.      


고춧가루 들어간 음식을 하루 한 끼라도 안 먹는 사람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 대다수는 열광적인 고추 소비자이다. 그 매콤하고 구미가 당기는 빨간 마법 가루의 생산 현장은 생각보다 치열하다. 고추는 뜨거운 열기를 담은 빛깔 그대로 한여름 태양의 열매이다. 태양에 맞서는 것은 위험하니까 이른 아침에 나왔지만 금세 끈적거린다. 산등성이를 타고 강렬한 동해안 빛이 넘어오기 전에 작업 속도를 내야 해서 서두르다 보니 더 힘들다.     

그릇에 붙은 고춧가루 한 점마저 귀하게 닦아 먹어야 함을, 이 고생을 하지 않았다면 간과했을 나는 오만한 소비자였다. 자루에 따서 옮기고 세척하고 기나긴 날들 볕에 말려 보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을 요구하던가. 가루를 빻을 적에는 꼭지를 따서 말린 고추를 다시 한번 먼지를 닦아주고 방앗간 가서 빻을 때는 하다못해 재채기를 요구하는 고춧가루. 매운 값 제대로 한다.     



‘내 사랑 순이’ ‘코스모스 피어있는~’ 나훈아 노래를 틀어놓은 아버지는 퍼질러 앉아서 고추를 따신다. 며칠 전 배앓이하신 아버지 얼굴은 반쪽이 되셨는데 식전부터 고추 따는 일을 극구 말렸지만 완강하시다. 객지에서 온 자식 눈에 빨간 고추는 초록 고추 반대 색깔 귀찮은 일감일 뿐인데 아버지 눈엔 갓 시집온 새색시같이 예쁘게만 보일 것이다. 걱정이다. 저렇게 무리하셔도 괜찮으실지. 작업은 태양을 영접하기 전에 끝났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아버지를 모시고 군 의료원으로 갔다. 허리 굽은 노인들이 느릿느릿 이동하는 대기 순서 또한 천천히 지나간다. 이 아득하게 매몰된 시간은 시계침이 없다. 그저 가라앉아 잠길 뿐이다. 자꾸 탈이 나는 몸에 기대 고장 나는 시간은 무의미하게 지나간다. 피부 아래 갈 길 가는 혈관을 찔러서 채취한 혈액 분석, 방사선 영상, 의료진의 지식으로 병명을 얻고, 알약이 투약되는 시간은 곧 연명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대기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시간이 멈추거나 시간과의 사투를 벌이는 엇박자가 일상적인 거기서 동네 친척 어르신을 만났다. 귀가 어두운 그분은 큰 소리로 혼잣말인 듯 들으라는 듯 누군가를 비난하고 있었다. 도저히 말대꾸할 가치가 없는 말, 그런 말들 식자들은 대놓고 지리멸렬 괴논리로써 꾸준히 전개하는데 반해 머쓱하셨는지 이내 조용하다.      


아버지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로 들어가자 젊은 의사가 앉아있다. 노인환자가 대부분인 그 공간에서 그는 구김살 없이 밝은 인상의 소유자이다. 찬찬히 들어주고 눕혀서 복부를 촉진하고 의사로서 권위의식을 부리지 않고 수용적이다. 말씨도 이곳 지방 사람이 아닌데 돈 물자 화려한 불빛이 사람들을 유인하는 도시를 떠나 시골 의사직을 수행하는 직업의식이 놀라울 따름이다.     


입원 수속하고, 채혈실 X-ray 검사를 아버지 걸음 따라 느리게 동행하면서 죄송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동안 아버진 여러 번 이 불편하고 힘든 과정을 혼자서 밟아가며 병원을 오갔기에. 입원 가방을 짊어지고 한 손에 지팡이, 다른 한 손에는 검사 용지를 들고 얼마나 느린 달팽이 걸음을 옮기셨을까. 신체적 고통은커녕 무거운 짐조차 나눠 들지 못한 불효를 절절히 느끼면서 병실로 이동하였다.     


열흘 전 선풍기를 틀고 주무신 아버진 가벼운 목감기가 있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 배탈이 나면서 내리 사흘 식사를 잘 못하게 되자 감기가 깊어져서 폐렴으로 진행돼 있었다. 그 사실도 모른 채 병약한 몸으로 진땀을 흘리면서 고추를 따시다니…… 강인한 정신력으로 허약한 체력을 다스리는 아버지를 너무 믿었던 불찰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 방 청소를 하였다. 평소 깔고 주무신 돗자리를 걷어내자 묵은 먼지가 덕지덕지 눌러붙어 있었다. 이렇게 지저분한 자리에 누워 계셨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르자 눈물이 나온다. 왜 진작 깨끗하게 청소해드리지 못했을까? 비쩍 마른 엄마는 이제 삼시 세끼 식사 준비만으로도 벅차다.    

  


휴가? 해안길 차 타고 지나가다가 짙푸른 바닷물에 잠시 잠깐 발만 담가 봤다. 고온다습한 해풍이 옷자락을 자꾸만 펄럭이는 바닷물이 사파이어 빛깔만큼이나 시원하다. 황갈색 갯바위로 둘러싸여 아담한 그 바다, 뜨거운 모래밭을 엉금엉금 걸어서 다가간 깊고 푸른 바닷물에 첨벙 빠지고 싶었지만 나는 한가로운 피서객이 아니다. 뒷산에 적송과 대숲이 우거진 고택에도 짬을 내어 가보았다. 골바람이 솔잎 대숲을 흔들어 불어오는 후원은 어찌나 시원한지 독립자금을 댄 명문가 집안다운 서늘한 기상이 서려 있었다. 축대를 쌓은 뒤뜰 흰 도라지꽃이 선비의 지조를 말해주는 듯 눈길을 끈다.     



지난봄까지 고향에서의 귀한 시간과 맞닥뜨리면 나만의 힐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누려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간절한 돌봄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어쩌면 손님처럼 다녀가지 않았었나? 정성껏 한다고 해도 두 손과 두 발 최선을 다하여 부모님 봉양해드리지 못했던 미진함이 있었음을 뉘우쳐본다.   

   

고향이 아니어도 도시에 살면서 자연과의 소통과 휴식을 여유롭게 챙겨 왔던 나였다. 평소 내 집에서 움직이는 활동량보다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는 고향집은 할 일이 태산이다. 먹고 치우고 청소하기 더하기 농번기 농사일을 이번 휴가 사흘간 다 겪어봤다. 차에 앉아있는 시간이 유일하게 휴식하는 시간이었다.      


상경 전날 밤 고향집 옥상에 누워 여름 밤하늘 별들을 바라보았다. 나의 오랜 고향 친구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북극성 백조자리 거문고자리 독수리자리 일등성 느그들을 볼 수 있어 힘들었던 오늘 하루 행복하구나. 탁 트인 반구형 별자리 아름답구나. 느그들은 좋겠구나. 언제나 빛날 수 있어서. 영원해서. 별들의 고향 초록 대숲 붉은 벽돌집 내 부모님을 잘 지켜주렴. 이기적인 여름휴가 반납 완료, 참 잘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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