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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Oct 07. 2021

단 하루 벼룩시장 상인

** 2012년 10월 작성하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사를 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거주하는 이 도시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축제를 하는데 시민참여마당에서 벼룩시장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냥 벼룩시장이라면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을 텐데 아트마켓도 함께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호기심이 불붙는 도화선을 건드렸다.


취미로 틈틈이 만든 바느질 작품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다.     

100% 핸드메이드 손바느질을 과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아줄지 궁금해졌다. 

부랴부랴 이틀에 걸쳐 쿠션 두 개를 정성껏 만들고, 앞치마 반달파우치 조각매트 러그 총 6점을 내놓기로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유아기 입었던 다른 아이들도 아직 예쁘게 입을 수 있는 상태가 양호한 원피스와 점퍼를 꺼내어 실밥 뜯긴 곳을 다시 수선하고 손을 봐서 열 벌을 엄선해놓고 재고로 간직하고 있던 시집에 일일이 사인하고 작아진 신발도 몇 켤레 골랐다.     


이제 품목마다 가격을 매기고 손바느질 작품에 대해서 홍보문구를 만들었다.

귀여운 신발은 천 원, 알록달록 깜찍한 브랜드 원피스는 오천 원, 점퍼는 삼천 원. 

“Hand made for You" 가게 이름을 팝아트 글씨로 멋지게 꾸며 원목 의자에 테이프로 붙여 입간판 구실을 하도록 만들었다. 가장 비중 있는 바느질 작품은 투자한 시간과 재료비를 감안하여 다소 비싸게 책정하였다. 어차피 이것들은 전시용이자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것이니까 판매용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시중에 싸고 좋은 것들도 많은데 굳이 손바느질에 대한 가치를 묻는다면 궁색하지 않은 답변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일단 체온을 품으면서 최소 이틀에 걸쳐서 한 땀 한 땀 누벼 완성한 것인 만큼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볼수록 손길이 가고 애착이 들고 안정감이 생기고 등에 한 번 기대더라도 잠이 잘 오는 심리적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바느질을 하면서 가능하면 무념의 경지를 추구한다.

바늘 따라 실 따라 딴생각을 좇다 보면 바늘에 찔리기 일쑤다.

귀가 달린 바늘은 내 마음속 잡념마저 알아듣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어디 깊은 산속에 숨어 있어도 바늘만 잡으면 내 마음을 들켜버릴 것이다. 

바느질 명상을 하고 있으면 바늘이 바로 죽비 선생님이다.     


처음 장사를 한다는 설렘 때문일까.

설친 잠을 대충 물리고 새벽시장에 보따리 장사하는 상인의 심정으로 짐을 꾸려 시장이 열리는 장터로 향했다. 단체로 온 진짜 상인들은 미리 쳐놓은 천막 아래서 물건들을 한창 펼치고 있었다.     

나같이 개인 참가자격으로 온 사람은 이른 시간이라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서부 개척시대 프런티어 요지를 점령하듯 맘대로 차지할 수 있는 땅 한 평 쭈뼛쭈뼛 망설이다가 아늑해 보이는 장소를 택하여 돗자리를 펼치는데 그 어색함이라니(?) 지금부터 밑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낯가림이 심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할 것인가?      


머릿속에 밑그림을 그려 상상해보는데 영 어색하다. 일단 사람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간 병원 교육현장에서 숱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던가. 그 경험이면 충분하다. 오늘 하루 연기하는 셈 치지 뭐. 사람들의 시선을 등으로 돌려 막고 생각해둔 내 가게 이미지 그대로 물건을 배치하고 서성거리자니 뒤이어 내 옆으로 사람들이 다가와 짐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토요일 오전 시각 사람들의 발길은 한산하고 쌀쌀한 날씨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때 곱게 생긴 중년 여인이 다가와 대번에 쿠션 두 개를 다 달라고 하였다.

비닐 포장된 물건을 살피지도 않고 바로 달라고 하기에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Hand made for You’ 상호 아래 의자에 기대 세워놓은 간판 물건들이 벌써 팔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기대감으로 

“이거 손바느질한 거라 가격이 좀 나가는데요.” 반응을 살폈다.     

그러자 여인은 성급했던 매입 의사를 스르르 접으면서 안 되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얼마쯤 생각하시냐고, 원하는 가격에 맞춰드리고 싶어 물었다. 

여인은 아쉬운 듯 뒤돌아섰다.


나는 고마움과 미안함 두 가지 마음이 들었다.

고마움은 내 물건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봐 준 안목에 대한 감사였고, 미안함은 싸게 드리지 못하는 거에 대한 내 마음이었다. 곧이어 할머니 한 분이 손녀 줄 거라며 원피스를 사 가기 시작하면서 아이들 옷은 순조롭게 잘 팔렸다. 모자를 쓴 중년의 여인이 시집을 살펴보았다.

얼른 다가가서 말했다.

“이거 제 시집이에요, 선물하세요.”

 “직접 썼어요?” 

 “예.” 

“재주도 많으시네.”      



한 권 사가신다.

“야호~” 시집을 팔아서 기분이 너무 좋다.

벼룩시장 입구에는 중고서점이 크게 열려서 책 한 권에 천 원, 오백 원 하는 터였다.

이런 데 와서 시집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텐데 내 시집을 콕 집어 골라서 사준 그분이 정말 고마웠다. 

그분은 오후에도 친구 한 분을 데려오셔서 시집 한 권을 더 사고 아이 옷도 사가셨다.     

점심때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점점 북적였지만 지갑을 여는 이는 거의 없었다.

장사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되는 경기 체감 순간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남편과 아이들이 내 가게를 지켜주어 교대를 하였다.


잔치국수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서 쌓였던 한기를 몰아내는데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할머니들이 와서 엄마 작품 살피고 맘에 들어하시는데 너무 비싸대. 가격 낮춰, 그래야 팔려.”

“할머니들 가셨어?”

“응”     

아쉽다. 


손바느질에 대한 안목을 가지고 계셨을 할머니가 맘에 들어하시는데 물건을 못 내어드려서. 뒤늦게 이웃에 사는 지인이 내 가게에 합류하였다. 그녀도 아이가 신던 작아진 신발 몇 켤레를 주섬주섬 담아서 왔다. 새것 같은 부츠는 금세 팔렸고 운동화도 팔렸다. 그녀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나도 마찬가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이런 경험이 안 맞는 옷을 걸친 듯 영 불편한데 그게 이상야릇 재밌다. 어릿광대가 된 놀이랄까.

     

어느덧 오후 네 시를 가리키는 시각, 건너편 아파트에 댕강 잘린 햇빛이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펼쳤던 자리를 거둬 철수하기로 하였다.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오일장 파장 분위기가 비스듬히 기우는 햇살 자락에 묻어났다. 

갈 때보다 훨씬 단출해진 무게에 안도하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생활의 안정기로 접어든 오십 대 여인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살펴보던 쿠션과 파우치, 앞치마… 동네 벼룩시장에는 비교적 가벼운 지갑을 들고 오는 속사정, 장터와 구색이 맞지 않는 물건을 들고 온 나, 작품은 못 팔았지만 사람들의 구미를 잡아당긴 만족감. 무엇보다 원하는 가격에 드리지 못한 죄송함이… 이왕 가져간 거 선물처럼 싸게 드릴 걸, 사지 못한 마음이나 드리지 못한 마음이나 아쉬움으로 남는다.    

 

남편은 내가 집에서 무게 잡는 줄만 알았더니 장사 기질이 있다며 가게를 하나 해보란다. 이다음 고향에 내려가서 색깔 고운 오미자차, 노란 모과차, 국화차, 생강차, 대추차를 파는 세련된 찻집 여주인이나 되어볼까? 

개량 한복 입고서 말이다. 언젠가 누가 그랬었다. 나는 이상하게 그런 분위기 난다고.      

돈을 벌기는 어렵다.

돈을 쓰기는 쉽다.

오늘 하루 장사한 나의 수중에는 치킨 두 마리 값 수고로운 삼만 원이 쥐어졌다. 


모르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만나 웃고 얘기 나누며 가을 분위기 제대로 내보았다. 

내가 가진 소박한 물건들 내보이면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근처에 서서 빨갛게 물든 벚나무가 이따금 한잎 두잎 낙엽을 훑어내며 단 하루 상인의 어리숙한 장사를 내려다본다. 베이지 재킷에 자줏빛 스카프를 두른 그녀는 왔다 갔다 안절부절 겸연쩍은 미소만 짓고 호객행위를 할 줄 모른다. 샛노란 국화꽃이 축제 분위기에 어울리는 캡슐 향기를 은은하게 터뜨렸다.          


 

소박했던 나의 가을 가게



2012년 가을

약간 아주 용감했습니다.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소박한 가게를 땅바닥에 꾸렸던 그날,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표정을 드러내 보였어요.

말하고, 웃고,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떠들썩했죠.

있는 그대로!


2021년 가을과 대조됩니다.

지금 우리는 표정을 절반 잃어버렸으니까요.

이젠 자연스러운 생기를 일부러 거울 보면서 연습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버렸음을 깨닫습니다.


마스크는 그야말로 가면이 되어버렸어요.

마스크를 벗은 그날 우리의 표정은 얼마나 더 무표정해질지...


오랜만에 그때 그 경험 떠올려봅니다.

하나하나 다 생각나네요.

요즘 장사하시는 분들 얼마나 어려우실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힘내십시오!!!


간밤 누군가 오래전 이 글을 읽고 가셨더라구요.

그래서 읽어보았습니다.

재밌고, 참 소중한 경험을 했구나, 그래서 추억이 되었구나.

아이들이 입었던 꼬까옷들 지금 봐도 너무 이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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