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오브제

by 남연우

허스키 목소리가 울부짖는다, 창가에서. 간곡한 어조로 쓴 편지 한 통 들고 서 있는 그는 탈모가 진행된 정수리가 비에 젖어 휑하다. 빗물에 번진 글씨를 읽을 수도, 들러붙은 편지를 펼칠 수도 없어 안타까운 나는 그를 문밖에 세워둔다. 이미 떨어진 단추, 앞섶이 벌어진 틈새로 빗방울이 사정없이 들이쳐 너덜너덜 옷을 벗지 않으려 저항하는 그와 마저 벗으라 독촉하는 비바람이 다투는 소리가 요란하다. 화려한 비즈 깃털 장식 달린 가을 페스티벌 맞춤복이 해져 속상한데 벌써 벗어놓으라니, 이 아까운 비단 염색 어쩔까나.

젖어 못 쓰기에는 너무 곱고 아까운 옷. 선명한 색채 강렬한 개성 영혼이 깃든 낙과마저 흙으로 돌아가면 지체 없이 지우는 작업은 속전속결. 나무는 뒤돌아서 밀어내고 땅으로 닿기 직전 낙엽은 포물선을 그리며 에움길을 탄다. 움으로 태어나 신록이 되고 녹음이 되어 오래오래 살 줄 알았다. 달력에 표기된 입동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철새들이 줄지어 바삐 날아가는 잿빛 어두운 하늘이 무엇을 경고하는지 몰랐다.

유랑 극단 바람이 연주하는 선율에 흔들흔들 날밤 새워 파티를 즐겼다. 귓전 때리며 징하게 울어대던 매미들 잠잠해져 살기 좋은 시절이 마냥 행복했다. 어느 밤 바람의 연주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불협화음이 자꾸 생겨나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친절한 유랑 극단이 떠난 자리 냉기가 서려 몸살이 났다. 갑자기 이별을 통보한 나무에게 며칠을 유예해달라 통사정한다.

물기를 끊고 시름시름 앓았다. 한 줄 잎자루에 목숨이 붙어있는 경각의 시간 지난날들이 스윽- 지나간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왕관 모양 파동을 그리며 철썩 떨어지는 빗방울 칼날에 명줄이 떨어진다. 밤새 맞은 빗방울 수에 목숨 수(壽)가 다하였다. 아, 가벼워라. 자유로워라. 이토록 홀가분한 것을, 왜 그리 고민하였나? 무서워했나?

멀어질 때 비로소 그의 사랑이 보였다. 앙상하게 드러난 어깨에 얼마나 무거운 짐을 매달고 살아왔는지 짓눌린 흔적을 보았다. 그 어깨에 매달려 철없이 굴었던 가벼움을 참회하는 눈물 어떻게 전할까. 그는 고난의 십자가였고 생명이었고 우주였다. 그의 절규는 비창이었다. 최후의 연주는 끝나지 않을 거라며 떠들었다.

평온했던 날들이 각본에 의한 연습이었고 피눈물이었다. 나뭇잎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떨어지는 중이다. 추락의 날개를 달고 비끄러맨 깨달음이 자유를 주었다. 10초 9초 8초 7초 …… 각성은 점점 빨라져 땅에 부딪는 순간 해탈하였다. 죽음은 하나의 형식 다음 세계로 가는 출입문. 문을 여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문이 열리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벌써 기다린다. 비워져 무의 세계로 철저히 고립되자마자 기다림이 시작된다. 간절한 기다림이 가득 채워져 기다림이 기다림을 망각한 그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사랑은 모든 것을 잊고 새로이 시작한다. 다 채워질 때까지 또다시 찬란하게 빛이 난다.

집 앞 벚나무는 얇은 옷을 걸치고 있다. 이제 며칠 후면 저 옷마저 벗게 될 것이다. 정수리 어깨 다 드러내어 처절한 삶의 인증, 골격 X- ray를 찍고서 웅웅 겨울바람과 내통할 것이다. 각본이 없는 즉흥 대사를 주절주절 읊고 싶다. 틀에 박힌 안정감을 위안 삼아 매일매일 재방송하는 리플레이 싫증 난다.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날씨는 날것이잖은가. 우린 매일 아침 창문 너머 날것의 안색을 살핀다. 구름 바람 온도 햇빛 습도 미세먼지 쌓이는 낙엽의 두께 날리는 낙엽의 몸부림 당신의 목소리 언어 안부 음악……



쪼그라든 초록 뭉치로 흩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랬다면 많이 뭉쳐진 슬픔 감당하기 어려울 테니. 감추어진 끼를 서랍 속에 아껴두었다가 마지막에 꺼내 주어 감사하다. 잘 가거라, 한 해 눈물이여. 아픔이여. 기쁨이여.

2021년 가을 세레머니, 한국민속촌으로 다녀왔다. 멀리 떠나기에는 부담스럽고 가까이 만만한 장소이다. 출입문으로 입장하면 조선시대 시공간이 펼쳐진다. 이 문만 넘어서면 현대의 시간과 공간이 허물어져 파괴된다. 문설주에 기댄 지체 높은 양반의 옹골찬 눈매가 서려 있고, 쪽진머리 안방마님 옷고름이 매듭짓는 매무새 느껴지고, 아궁이 밥 짓는 그을음 속에 보시기 사발 그릇 달그락 소리 들린다.


어느 대갓집 뒤뜰에 칠엽수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다. 내 손가락보다 긴 잎맥이 오그라든 잎새 각을 형성하여 필사적 의지가 되살아난다. 거기 낙엽 파도가 무성하게 일어 땅에 둥그스름 박힌 바위를 갯바위로 고립시킨다. 이것은 한 편의 무언극 드라마틱하다. 바스락바스락 부서지는 낙엽 거품을 밟아가며 바위섬에 오르자 들뜬 파도가 조금씩 가라앉는다. 비질 소리만 기다리는 갯바위는 구조를 요청한다. 구조대는 방관한다. 이 고립이 너무 멋지다.


기와집 너와집 귀틀집 초가집 수많은 집 중에 살고 싶은 집은 초가지붕 무명베틀집이다. 두건을 쓴 여인이 지금도 무명실을 잣고 베틀이 보존된 그 집은 안채 사랑채 광이 자리 잡은 규모가 작지 않은 민가이다. 토담 울타리 안에 사철나무가 아담하게 자라고 목화솜이 다물린 텃밭이 마당귀에, 커다란 쌀독 광주리 농기구 늙은 호박이 보관된 광에는 채광 벽이 뚫려있어 환기성이 좋고 곡식 내음 아늑하게 배어있다.


광 바깥 시렁 아래 내걸린 수수 조 알록이옥수수 곶감이 겨울 양식이 되고자 쪼글쪼글 수분을 날리는 풍경이 목가적이고 평화롭다. 반질반질 기름 입힌 가마솥이 세 개 걸린 부엌에는 물동이 박바가지 사발 머리에 이는 똬리마저 둥근 형태 동그라미들. 불 때는 아궁이 입구만 사각형이다. 얼마나 닳고 닳아 모난 성질 없애야 이 부뚜막 안주인의 소임을 다할 수 있을까. 흙 마름질 단정한 이 집, 부지런하고 살뜰한 손길이 밴 살림살이 사람살이 집주인의 됨됨이를 말해주는 듯 정갈하다.


만약 민속촌 출입문이 닫혀 하룻밤 여기서 지내게 된다면? 장작개비로 불을 지펴 온돌을 데우고 호롱불에 불을 밝히겠다. 곶감을 빼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표주박에 뜬 우물물을 달게 마시겠다. 밤이 깊을수록 칠흑 같은 어둠에 몸서리치겠지. 턱밑까지 이불을 끌어당겨 옛사람이 불쑥 문을 열고 나타나지 않을까 무서워하겠지.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하여 관리사무실 전기 불빛을 찾아 전설의 고향 주막거리 지나고 서낭당 지나고 어휴, 폐장되기 전에 느티나무 초롱불 배웅받으며 서둘러 옛날을 빠져나온다.


가을을 가을답게 장식하는 오브제 중에 비극적인 낙엽만 있는 건 아니다. 핑크뮬리, 새빨간 찔레꽃 열매, 시든 풀잎, 억새, 고목 까치밥, 샛노란 모과, 혓바늘 돋은 솔잎, 솔방울, 트렌치코트 잘 어울리는 여자 그리고 국화를 만났다. 지난봄 ‘일요일에 만난 그녀’ 옆에 짙은 향기를 품은 국화 생김새가 남다르다.

소국보다 큰 직경 7~8cm 빽빽한 연분홍색 꽃잎이 안으로 밀집할수록 진분홍색, 꽃술을 안 보이게 감추고 있는 처음 보는 꽃이다. 장미만큼이나 독보적인 이 꽃을 보려고 두 번이나 찾아갔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밤낮 세심한 돌봄 관심을 주었을, 날것으로 날뛴 야생의 날씨는 가을 페이지를 구독한 후 겨울의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막 지나가는 그 페이지에 노을빛 단풍잎을 꽂으면서.



핑크뮬리 안개 숲에 갇힌 가을 오브제


지난봄 일요일에 만난 장미 가시를 밀어내고 처음 보는 귀부인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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