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내리 불면증으로 띵한 머리를 흔들어 깨운 건 아침 새소리였다. 마당에 내려서니 투명하게 눈부신 동해안 햇살이 푸른 하늘을 말끔히 개어놓았다. 언제나 희뿌연 불순물이 섞인 대도시의 아침 공기와는 차원이 다른 세상의 새 아침 커튼을 활짝 열고 서서 푸근하고 정결한 숨을 한가득 들이켜 마신다. 지난해 봄 화단에 심어둔 노란 장미와 진분홍 장미는 사이좋게 향기로운 오월의 장미를 피워내고, 자줏빛 연분홍 흰색 꽃이 한꺼번에 피는 삼색병꽃도 벙긋벙긋, 곱게 빗질하여 갈래머리를 땋은 금낭화는 소녀처럼 새초롬하다.
엷은 구름막 뒤로 숨어서 보이지 않는 아침 해를 찾아서 들길 위로 올라섰다. 일찌감치 봄비를 말려버린 대기와 대지는 온통 푸석거리는 흙먼지투성이, 구두 발등 위로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는 길과 달리 모내기가 한창인 논배미에는 물꼬를 튼 논물이 찰방찰방 넘실거린다. 바싹 마른 가뭄에도 이 너른 들판을 먹여 살리는 용당골 지하수가 저 건너편에 대대손손 자리 잡은 이상 물 걱정은 접어두는 은혜로운 땅. 논골 갯내음에 파묻혀 간밤에는 개구리들이 와글와글 울어댔는데 또다시 생명을 먹여 살리는 질퍽한 들판 위로 구름 조각배를 띄운 하늘이 내려와서 잠겼다.
고향 들판, 나란히 줄을 맞춘 모심기가 진행되고 있다
바닷가 어촌에 이르러 방파제로 나가보았다. 이른 아침 꿈결에 취한 바다는 파도를 잠재우고 연근해 조업에 나선 어선들이 그물을 탐색 중인 바다. 이렇게 잠잠하다니 거대한 빙판 호수가 아닐까, 저 단단한 수평선을 걸어서 울릉도로 가는 상상을 해본다. 고요한 사색을 거쳐 격정에 이른 순간 다시 수그러드는 바다는 변화무쌍 종잡을 수 없는 바람의 선율을 소리와 몸짓으로 표현하는 바람의 집, 태양이 뜨고 지는 태양의 집, 달빛이 풀어놓은 물감을 온당하게 예술적으로 기교를 부리는 달의 집이다.
지난밤에도 파도는 잔잔했으리라. 뭍에 뱉어놓은 해초라든가 속내를 꺼내놓은 흔적이 없는 걸로 봐서 온순했으리라. 바다는 원래 내성적이었다. 시퍼런 속내를 감추고 겉은 평온한 척 언제 뒤집어질지 알 수 없는 사람, 자기모순에 겨워 한 며칠 감정앓이 끙끙 뒤끓다가도 이내 가라앉아버리는 사람을 닮았다. 바다가 격노할 때는 가까이 다가가선 안 된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다. 스스로 진정이 되었을 때 다가가서 지친 그를 바라보면 그는 모든 해답을 알고 있는 현자의 모습으로 절름거리는 세상을 향하여 평온을 가르친다.
우리는 절뚝거리는 불균형을 감추기 위하여 모순을 취한다. 나의 결함을 감추기 위하여 애를 쓸수록 더욱더 티 나게 절뚝거린다. 무결함 순정부품 10년 AS 가전제품만도 못하다. 십 년간 변치 않고 자신의 순수함을 보증하는 사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운 세상. 순수를 지향하며 절뚝거리는 나의 불완전한 걸음에 목발이 되어주는 바다를 찾아오면 그는 모든 티끌을 깨끗이 씻어내어 후련하게 헹궈준다. 그리고 등 떠밀어 돌려보낸다. 돌아섰다. 엄격하고 차갑고 속세 모든 오물을 담아내고도 맑고 푸른 스승으로부터.
해안가에 연미복을 잘 차려입은 제비들이 부산하게 날갯짓 저공비행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어판장 전선줄에 앉아서 신선한 바닷바람을 마시며 아침의 활기를 탄다. 고향집 처마에도 사글세를 얻어서 흙집을 지어놓았다. 지푸라기를 진흙에 개어 오목하게 달아놓은 주머니가 견고하기 이를 데 없다. 제비집은 천장에 바짝 붙어 있어서 몸집이 큰 다른 침입자들을 경계하도록 만들어놓았다. 새알이 들었는지 어미새가 걸터앉아서 둥지를 들여다보고 보살폈다.
고향집이 길손 제비들의 쉼터가 된 지는 오래다. 제비들도 안다. 이 집주인의 넉넉하고 따스한 마음씨를. 엄마는 길고양이들도 거둬 먹인다. 내가 어릴 적에는 7번 국도 지나가는 거지들이 구걸하러 들어오면 식구들 먹는 밥그릇에 밥과 반찬을 담아서 쟁반에 내주었다. 한 번도 그냥 내쫓는 법이 없었다. 버스 터미널 바로 앞 우체국에서 당직 근무를 서던 아버지는 막차가 끊겨 찾아오는 객지 사람들 딱한 처지를 듣고는 우리 집에서 잠을 재우고 아침밥을 먹여 보내는 일이 허다하였다.
나는 해마다 찾아오는 제비들 안부를 엄마에게 묻는 걸 좋아한다. 집은 지었는지, 새끼는 낳았는지, 언제 떠나갔는지… 깃털에 부는 찬 바람을 싫어하는 제비들이 곧장 집을 비우고 떠나가면 나는 몹시 서운해한다. 이듬해 봄이 돌아오기까지 나의 둥지를 잘 여며도 어딘가 한기를 탄다. 제비들이 떠난 빈자리가 내게도 생기는 것이다. 광활한 태평양 위로 날아갈 적에 깃털에 이는 바람결을 내비게이션 삼아 방향을 읽고 귀로에 오르는 그들은 영물이다. 여름 별장 겨울 별장을 오가는 그들의 삶이 인간보다 우월한 웰빙 라이프, 나의 부러움을 산다. 우린 한평생 한곳에 말뚝 박혀 정착하고는 여권 돈 시간이 없으면 어디 먼데 자유로이 떠나지 못할 매인 몸 아니더냐.
고향집 제비, 검은 눈이 순박하고 믿음직스럽다
들길에는 산딸기 오디가 한창이다. 짙은 보라색 오디 두세 알을 손가락 마디에 물들여가며 따먹었다. 특유의 향내가 나면서 달콤하다. 오디를 따 먹을 때면 언제나 두리번거리게 된다. 동네 뒷산에는 계단식 뽕나무밭이 있었다. 이 무렵 뽕나무들은 시커먼 오디를 금단의 열매처럼 장식해놓았다. 그걸 놓칠 리 없는 동네 아이들이 작은 손아귀를 뻗쳐 한 줌 따먹은 입가에는 보랏빛 물이 들어 금세 티가 났다. 뽕나무밭주인 달수 할배는 뒤늦게 지팡이를 들고 나타나서 노발대발 소리쳤다. 지금도 그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맺혀있다. 할배한테 붙잡히면 죽을 것 같았다. 그때 저린 가슴이 누가 뭐랄 것도 없는 오디 열매를 앞에 두고서 망설여진다. 한 알, 두 알. 더 이상은 못 먹겠다.
오월의 마지막 선물을 내어준 아침 들판을 휘- 둘러보고도 띵한 머리가 조금씩 잔여 통증 그래프를 그린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이제 이레, 검은 의식을 치르고도 잔잔하게 웃으시는 아버님 생전 모습만 뇌리에 맴돈다. 남편을 만나기 이전 아버님이 먼저 나를 며느릿감으로 지목하셨다. 내가 이십 대일 때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셔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아버지 간호를 해드렸는데 그때 병문안 오신 아버님이 나를 병실에서 보시고는 맘에 들어하셨다고 한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결국 나는 그 집 며느리가 되었다.
스치듯 지난 아버님과의 인연이 남편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시댁은 언제나 시끌시끌한 분위기였다. 차분한 나는 그 분위기에 스며들지 못해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는데 유일한 내 편이 아버님이셨다. 아버님도 나직한 목소리 말이 없으셨다. 몇 년 전부터는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우리가 상경할 때 집 안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손을 흔들어주셨다. 웃음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마치 이 세상을 하직하는 마지막 모습 같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 모습이 지난 설 아니면 추석이었다. 어쩌면 고향에서 뵌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아직 아버님과의 사별을 체감하지 못한다. 내 부모님이 아니어서 살과 뼈를 발라내는 고통 대신 먹먹한 이 느낌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잔잔한 통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해마다 봄을 물고 돌아오는 제비들에게 아버님 안부를 물어보면 답변해줄까. 아침 들판을 걸어오며 만난 여러 갈래 들길 중에 내가 선택한 길이 따로 있듯이 인생길을 지나오며 여러 인연을 만나게 된다. 멀리서 눈인사하며 스치는 인연, 내게 직접 다가와서 엮이는 인연. 그 인연을 소중히 여겨 정성을 다해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 싹싹하고 살가운 며느리가 못돼서 아버님 사랑에 보답하지 못했다. 아버님, 말없이 품어주신 깊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평안히 영면하십시오!
해안가에 갯메꽃이 한가득 피었다. 하늘과 바다 저토록 푸른 그리움을 향하여..
데이지 꽃들이 피어난 사구공원은 팜파스, 초원의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