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에 엎드린 봄볕

by 남연우

봄은 볼수록 새록새록 새롭다. 어둡고 무거운 땅 뚜껑을 힘껏 밀쳐 나오는 새싹들의 용기, 움츠러드는 찬바람에 도전하는 새움, 홀딱 반하게 만드는 봉긋봉긋 꽃망울들 모두 모두 새로운 새봄이다.


작년에 접었던 옷을 다시 꺼내 입는 내 마음도 새롭게, 봄바람을 탄다. 새파란 하늘가에서 불어오는 남풍에 연둣빛 수양버들이 하늘하늘 춤추자 마스크 끈을 벗겨내고 못 견디게 감미로운 바람을 마신다. 싱그러운 풀 내음을 한가득 실은 봄바람은 천국의 향기! 한 모금 캔 음료를 마시듯 흠, 흠 마시고는 후각에 다시 자물쇠를 채웠다.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학교 앞에 나지막한 매화나무 언덕이 있다. 홍매는 필 듯 말 듯 꾸물대고 활짝 핀 청매들의 결혼식을 꿀벌들이 부지런히 주선하는 중이다. 길을 건너 이 절기에 꼭 봐야만 하는 풍경을 만나러 간다.


걸음을 재촉하여 시선을 던지자 벌써 꽃구름이 핑글핑글 꽃사태 진 진달래꽃에 다가간 그곳에는 내가 경외심으로 지켜보던 대상이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다. 어머나, 고택 한 채가 흔적을 말끔히 거두었다.


집이 서 있었던 직사각형 터전은 누군가 막 땅을 개간한 듯 평평하게 다듬어졌고, 텃밭 자리에 신축 연립주택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마당 앞 돌담도 그대로이고 후원에는 이전 그대로 항아리, 시렁이 놓인 장독들 표정이 아무 일 없음을 말해주었다. 고택을 허문 집주인이 새로 집을 짓고 있는 걸까.


그런데 장독 위에 유독 내 눈길을 끌어당기는 뭔가가 놓여있었다. 녹색 목숨 수(壽) 글자가 그려진 백자 밥사발이 고택의 운명을 암시하듯 깨져있고, 그 곁에 백자 항아리 두 개가 앙증맞은 모습으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엎어져 있었다.


두 손바닥으로 감싸면 쏙 들어오는 크기로 보아 사탕 또는 바둑돌 담는 용도로 쓰인 것 같다. 백자 항아리에는 붉은 꽃들이 그려져 더 눈길을 끌었다. 뒤켠 수돗가에서 씻어내면 귀태가 좔좔 흐를 그 그릇들이 어찌 남의 손길을 타는 저런 곳에 무심히 엎어져 있는 걸까.


저건, 가져가도 좋다는 허락의 의미 아닐까. 아, 견물생심이라고 사심을 고쳐먹었다. 언젠가 이 길을 지나가면서 텃밭을 손질하는 고택 주인을 얼핏 본 적이 있다. 뒤뜰에 가지런히 놓인 연장들과 그 집이 거느린 화원의 정갈한 질서를 바라보며 글 꽤나 읽는 선비 집안이었을 거라는 내 짐작대로 주인은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지닌 점잖고 교양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들딸의 성화에 못 이겨 고택의 자존심을 뭉갰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나그네 산책길에는 고풍스러웠지만 구식에 맞춰 사는 그 집 속 사정은 언제나 불편하였을 것이다. 이사 온 직후 그 집을 처음 발견한 때도 진달래 꽃물 든 이 무렵이었다. 무명 저고리에 꽃분홍치마를 입은 스무 살 앳된 처녀를 바라보듯 소박해 보였다. 요즘 세상에 저런 집을 간직하고 살아가다니, 한국민속촌 중부지방 농촌 민가를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었다.


그 집은 안팎으로 흐트러진 데라곤 없는 모습으로 언제나 거기 있었다. 일 년 사철을 두고 바라봐도 비가 오는 궂은날에도 깔끔 개운하고 한결같았다. 마당 앞 돌담에는 나이 먹은 담쟁이들이 억센 초록 손을 엮은 솟을대문이 열려있고, 집 옆으로는 가지런히 이랑을 긁은 텃밭이 철 따라 농작물을 키웠다. 후원을 거느린 그 집은 매화 진달래 피는 봄이 늦봄까지 작약을 피워 소진하면 빗방울 젖은 옥잠화들이 상큼한 여름날의 계보를 잇고 가을에는 서리 맞은 국화가 뜨락의 운치를 메웠다.


흙벽에 걸린 농기구들을 바라볼 때부터 나는 그 집주인의 성품을 간파하였다. 용도에 맞게끔 제작된 연장들의 나열은 이름표만 붙이면 그대로 민속박물관이 된다. 주인을 만나서 집의 유래 역사를 듣고 싶은 유혹에 여러 번 시달렸다. 그럴 때마다 한 걸음 물러서서 아끼는 마음을 시를 지어 바치기도 했던 그 집은 어디로 가고, 물끄러미 눈길을 끄는 그릇들만 주인이 사용하다 말려놓은 그대로 살아온 긴 시간의 여운을 봄볕에 엎드린 채 숨죽이고 있다.


사라지기 전 그 집을 다시 보고 싶어 4년 전에 찍은 사진을 보다 보니 그때도 여기 이 자리에 똑같이 놓인 백자 항아리가 포착되었다. 개수만 둘에서 하나인 채로. 고적한 후원의 멋을 감상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놓아둔 섬세한 손길인가. 살뜰한 안주인이라면 예쁨을 가까이 두려는 본능을 거부하기 어려울 텐데, 그 무심의 경지가 파격적이다.


급하게 정리하느라 이삿짐 목록에서 제외된 희고 고운 항아리들이 이 봄 혼자 피고 지는 꽃들 같다. 청순한 여성의 블라우스 리본같이 팔랑거리다가 일주일 새 백발의 노파가 되어 흩어지는 목련 꽃처럼 애정 어린 대상은 결국 멀어지게 되어있다.


그림 같은 고택이 남아있어 내 발길을 사로잡던 그 길에 서서 내가 슬퍼한들 홀로 남은 진달래꽃만 하랴. 평생을 바쳐 지켜온 고택을 잃고서 꼿꼿했던 선비의 마음은 얼마나 애통했을까. 덩그러니 남은 집터에는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고택을 노래한 나의 시 ‘도시농부’는 옛 그림이 돼버렸다.




도시농부/ 남연우



볼트와 너트를 죄며 다가오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탱자나무 가시처럼 에워싸도

붉은 흙 한 줌 모아 요술 씨앗을 심고

진달래 꽃불 타는 고택 한 채 지키고 산다


솟을대문이 늘 옛날로 열려있고

바위솔이 자라는 기와지붕에 고서 먹물이 밴 그 집

산책길을 오가며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공중누각 창가에서 비죽이 고개 내밀어

푸른 잉크로 시를 쓰다가 태양의 꽃잎들이 떨어져

딸칵, 고장 난 시계로 멈춘 나의 하루


담쟁이 비늘 뒤덮인 그의 하루도

노동이 묻은 맨발로

출토한 쇠스랑을 농기구 전시실에 걸어둔다


구부러진 연장들은 깊어지는 삶의 내력

언젠가는 그의 허리도

기역 자(ㄱ)로 경작될 것이다


재개발 굴착기도 멈춰 세운

뼈대 있는 가문 후손 도시농부는

언행일치 혁명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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