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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Jan 14. 2022

늘 그 자리


바깥은 영하의 칼바람이 부는데 실내는 포근하기만 하다. 동지를 지나 한기가 누그러진 볕이 금세 봄을 데려올 듯 화창하다. 말없이 다소곳한 화초들이 먼저 알아챈다. 10mm 꽃대가 보일락 말락 숨바꼭질하던 바이올렛이 며칠 새 꽃봉오리가 도톰해지면서 8cm가량 무럭무럭 자라나더니 자줏빛 고운 꽃 한 송이를 활짝 피워 주었다. 밤이 되면 추운지 꽃잎을 오므려 이불을 덮고 아침에 나와보면 나보다 먼저 기상 꽃잎을 산뜻하게 단장하여 새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 모습 너무 예쁘다.     



거실 창가에서 겨우내 꽃 피우는 부용은 다육식물인데 노란빛이 도는 주황색 꽃 모양이 튤립을 닮았다. 서로서로 순서를 정하여 차례차례 피고 지면서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름을 모르는 하얀 별 모양 꽃도 쌀알처럼 웅크렸던 미색 알갱이를 터뜨려 선명하게 피어났다. 새해 들어 식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일제히 기지개를 켠다. 냉엄하던 햇볕이 자상한 손길을 다시 내밀어 주었기에 가능한 기적이다.     



키 작은 화초들도 이렇듯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면서 아름답게 깨어날 줄 아는데 겨울 코트에 덮인 사람들은 옹고집이다. 새 달력을 받아 든 모습은 무기력하고 무엇이 진정한 변화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늘 받아먹는 밥그릇에 똑같은 밥을 담아 먹는다. 새로운 마음이 보태지질 않는다. 내가 변하지 않으니 세상도 그 모양 그대로이다. 묵은 딱지를 불려서 새살이 돋아나면 좋으련만…      


미접종자에게 대형 마트 출입이 봉쇄되면서, 집 근처 슈퍼에 시장을 보러 갔다. 실외 공간에 주차를 하다 보니 일단 손이 시리고 춥다. 배제당한 기분이란 이런 걸까. 씁쓰름하다. 최소한으로 산다고 적어간 품목 중에 없는 물건들이 있다. 난감하다. 비치된 카트 크기가 작아서 그득 주워 담는 충동구매도 안 하게 되었다. 씀씀이 줄어들어 대형 마트 갈 때와 비교해 비용이 절반 감소하였다. 한동안 돈 벌게 생겼다. 궁하면 궁한 대로 살아가는 법이다.      


슈퍼에 진열한 사과는 빨간빛이 탐스러워 신선한데 감귤은 시들시들하다. 다 먹어가는데 어디서 사야 하나. 집에 돌아와서 무농약 생산품으로 제주도 현지 택배 주문하였다. 주문하는 김에 고향 집에도 한 상자, 친구에게도 한 상자 보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친구에게 기별하겠나. 형편이 어려운 그 친구에게 추운 날에 따스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꼬마전구 같은 선물을 할 수 있음에 다행하다. 감귤 상자에 내 마음을 담아서 주고 친구는 감귤을 까먹으며 내 마음을 받게 될 테니까.     


미스코리아 출신 스님의 토굴 수행을 TV로 보게 되었다. 엄동설한 냉기를 허연 입김으로 보여주는, 전기도 물도 없는 바위 토굴에서 그녀는 수행하고 경전을 필사하고 얼음이 언 산속 옹달샘에 내려가서 시린 손을 씻고 빨래를 하였다. 식사는 하루 한 끼 곡물에 물을 부어서 불린 생식을 하고 있었다. 어느 모진 삭풍 부는 바위 부처님께 다가가서는 하루해가 떨어지도록 삼천 배를 경건하게 고통스럽게 마치었다.   

   

자신의 업보를 닦아서 아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위대한 모성이었다. 뾰족하게 날 선 삶의 경계에 마주쳐서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안 보일 때 사람들은 구원의 신을 찾는다. 종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신은 자신의 눈 안에 이미 들어 있다. 그걸 찾아내지 못하고 모를 뿐이다. 가정에서 집에서 마음을 비우고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기도처가 어디 따로 있지 않다.      


속세에 파묻혀서 마음을 방만하게 사용하고 때를 묻히면 길이 안 보이게 가로막힌다. 자신 스스로 깜깜한 길을 걸어간 그 끝에 다다른 것이다. 진작 어두운 길을 걸어갈 때는 그 길이 어두운지 밝은지 정도인지 사도인지 알지 못한다. 마음이 이미 어두워져 방향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살아가는 매일 매 순간 외줄 타기이다.      


한눈팔고 비틀거리고 휘청거리고 흔들리는 그 순간 알아채서 정신 제대로 안 차리면 누적된 위험신호는 경고등을 켠다. 욕심도 마찬가지이다. 욕심은 더 큰 욕심의 아가리를 벌려서 잡아먹히게끔 유도한다. 이 길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 반성의 힘이 필요하다. 나쁜 습관이 굳어져 생긴 관성의 힘을 끊어낼 때는 결단이 필요하다. 단호하게 고쳐먹어야 한다.      


스님의 용맹스러운 정진을 보면서 온기에 감싸여 나태한 내 모습이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늘 먹던 그릇에 같은 생활 패턴을 일삼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 냉장고에 먹던 식재료가 남아 있음에도 사들이는 소비 습관, 무조건 대형 마트에 가고 보는 시장보기도 이참에 재고해 볼 허물이었다. 새로이 집을 지을 때는 설계도가 필요하듯 차량이 이동할 때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듯 앞으로 나아가는 동적인 움직임에는 목표와 구체적인 설계(실천내용)가 설정되어있으면 더 쉽게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길도 마찬가지 아닐까.      


더 괜찮은 인간이 되고자 탈바꿈하는 그 모습 속에 변하지 않는 꼭 움켜쥐어야 할 보석도 있다. 나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 겸손, 감성, 의지력, 나를 나답게 하는 예전부터 쭈욱 있었던 긍정적인 그것. 그 본질이 흐려지면 나는 소중한 내 모습을 잃게 된다.   

   

친구가 나를 떠올리면 한결같은 그 모습 나이 들어서도 간직하고 싶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너 많이 변했다.” 이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어쩜 너는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예전 그대로이니!” 이런 목소리를 반가워한다. 고향에서 일하는 친구가 오랜만에 만난 내 모습 보면서 우리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은근 기분이 좋았다.     


늘 그 자리를, 그 모습을 지킨다는 건 너절함을 감수하는 끈기와 좋은 가치를 수호하는 양심, 자신을 믿는 자존심, 주위를 향한 애정이 디딤돌이 되어 있을 만한 자리에 오래오래 있게끔 만들어준다. 믿음은 한결같은 진정성에서 우러나온다. 아침저녁 달라지는 세월의 맞바람에 부대끼면서도 잔잔한 미소를 드리운, 냉이꽃이었으면 한다. 수줍은 냉이꽃은 거칠고 도전적인 월동을 이겨내고서 봄으로 향한 언덕이나 밭둑에 피어난다. 화려하진 않지만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는 강인함으로, 아지랑이처럼 아물거린다. 내면에 영근 씨앗을 맺고 겉으로는 수줍은 척, 마음은 이미 노란 나도냉이꽃이 하늘거리는 봄 동산에 오른다.     




지난해 봄 고향 들판, 늘 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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