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연우 Jan 18. 2022

겨울비 내리는 졸업식


투명한 겨울비를 와이퍼로 쓸어내며 꽃집으로 향한다. 졸업시즌을 맞이하여 예쁘게 단장한 꽃다발들이 누군가의 손에 선택되길 기다리고 있다. 이미 포장된 꽃다발은 꽃집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기성품이다. 내 취향에 맞는 장미와 프리지어를 고를까 망설이다가 순간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튤립과 안개꽃을 골라서 꽃다발을 주문한다.     


붉은 부직포에 아이보리색 리본으로 묶은 빨간 튤립 일곱 송이와 하얀 안개꽃, 사랑과 축하의 마음을 담아내기에 충분하다. 다시 비 오는 거리로 나선다. 1월에 내리는 겨울비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다. 그 손님이 내민 손길은 차갑고 축축해서 현관문을 나설 때부터 썩 내키지 않았다. 우산을 펴고 접을 때는 여지없이 모직 코트 깃 속으로 파고들었다.     


장맛비 같은 동절기 온난화에 겨울잠 자던 꽃눈들이 겨울눈을 깨울까 말까 고민한다. 검은 우의를 뒤집어쓴 듯 거무죽죽 번득이는 나무들도 이 풍경이 못마땅하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함박눈이 내린다면 사람들은 미소를 머금은 눈사람이 되어 이 거리를 걸어갈 텐데, 두 얼굴의 빗물이 구두에 젖어 질척거린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중고등학교 언니 오빠들 졸업식이 다가오면 미리 꽃다발을 집에서 만들었다. 생화가 귀한 그 시절 시골에서는 목에 거는 둥근 꽃다발을 주로 만들었다. 먼저 짚을 둥글게 말아서 철사로 고정한 뼈대를 만든 다음 끈으로 짚이 안 보이게 친친 감아주고, 상록수 편백 나뭇가지와 직접 만든 진분홍색 색종이 꽃을 보기 좋게 꽂아서 달고, 반짝이 테이프를 뿌려주었다. 더 근사한 액세서리를 달았을 것 같은데 어린 나는 구경꾼에 불과했다.      


그 꽃다발은 졸업식이 끝나고도 한동안 벽에 걸려있었다. 두고두고 기념이 될 만한 시들지 않는 꽃이었다. 어느 해 겨울 언니를 따라서 뒷동산에 올라 초록색 침엽수 가지를 꺾었던 기억이 난다. 꽃다발 하나를 만들기 위해 뒷동산에 오르고 문방구에도 여러 번 수고로운 정성이 들어간 꽃다발을 손수 만들면서 후배들은 더 설레었다. 그만큼 의미가 깊은 날이었다.      


요즘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직접 참석해서 축하받는 손주들 손에는 꽃다발이 여러 개 들려있다. 우리 집은 단출하다. 조심조심 생화 꽃다발을 귀빈처럼 안고 우산을 씌운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빗방울이 우산에 부딪는 소리를 낼 때마다 튤립 귀부인은 향기를 아낌없이 발산한다. 졸업식장에서도 나는 몇 번이나 정신이 아득하게 가라앉았다. 품에 안은 꽃향기가 저기압을 타고 내 후각으로 직행하였기 때문이다.     


유리창이 빗물로 얼룩지는 1월 초순 졸업식장, 졸업생들은 길게 줄지어 서서 졸업장을 한 명씩 호명되어 받는다. 스크린에는 학생의 어릴 적 사진과 좌우명이 떠오른다. 어떤 학생은 갓난아기 사진을 올렸다. 어느새 저렇게 훌쩍 자라나서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다니… 엄마인 나로서도 이제 중학교 출입할 일 없는 졸업이다.     


드디어 3학년 4반 우리 아이 순서다. 유치원 때 연꽃 앞에서 찍은 사진과 나란히 “거짓은 언젠가 드러난다” 좌우명이 조명된다. 박수를 치면서 우리 아이가 수많은 격언 중에 왜 저 말을 선택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거짓의 결말을 강조함으로써 정직하게 살아야 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말이다.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이윽고 교가가 제창되고 졸업식은 함박눈이 녹은 겨울비처럼 싱겁게 끝났다. 아이에게 다가가서 축하 꽃다발을 건네자 그제야 졸업식의 주인공이 된 아이는 친구들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중에서 낯선 얼굴이 눈에 띄었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막판에 친해졌다는 현정이라고 한다.     


현정이 부모님도 가까이 다가왔는데 얼굴이 낯익다. 지난가을 학교 급식 검수할 때 같이 만났던 엄마였다. 그때는 분명 친하지 않다고 했는데 정말 막판에 친해졌나 보다. “하나, 둘” “찰칵”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현정이가 운다. 얼굴이 새빨개져 울음보를 터뜨렸다.  

   

나는 현정이와 그 엄마를 번갈아 보았다. 그 엄마에 그 딸, 엄마도 짠한가 보다. 우리 딸은 멀쩡한데 남의 집 딸내미의 뜨거운 눈물이 차가운 겨울비를 물리치고 내 눈가를 훈훈하게 데워준다. 요즘 세상에도 이렇게 순박한 아이가 있다니, 그 애가 남달리 보였다. 내 딸과 현정이는 진학하는 고등학교가 다르다. 이제 서로 헤어짐에 솟구치는 눈물이 종일 하염없이 내리는 저 찬비와 어찌 비교되랴.     


졸업 기념 돈가스를 사 먹이고 집에 돌아와서도 밤이 돼서도 울먹이는 현정이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좀 진정이 됐으려나. 문득 나의 졸업식 장면들이 스쳐 지난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중략~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이 노래만 부르면 졸업식장은 자동 버튼을 누른 것처럼 눈물바다가 되었었다.    

 

눈물이 귀해진 요즘 졸업식장에서 나는 한 아이의 눈물을 천금같이 보았다. 그 아이 마음이 얼마나 살갑고 순수한지 또 얼마나 따스한지 느끼기에 충분했다. 먼 훗날 딸에게 효도를 많이 받을 것 같은 현정이 엄마의 웃는 얼굴이 오버랩된다. 사흘 내리 우수관을 타고 흐르면서 밤잠을 설치게 만든 겨울비는 그쳤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날씨는 제 절기를 찾아가고 있다.     


식탁 유리병에 곱게 모셔진 튤립도 제 역할을 다한 뒤 시들고 있다. 처음에는 꽃봉오리가 살짝 벌어지더니 차츰 실크 치맛자락을 감아쥐고 이제는 꽃잎을 영영 다물어버렸다. 빛깔도 빨강에서 적자색으로 짙어졌다. 시들어가면서도 반짝이는 광이 나고 여전히 유혹적인 입술로 속삭이며 물기를 잃어가는 중이다.   

   

인생 학교에 재학 중인 우리는 언제 졸업을 하게 되려나. 영원한 만학도로서 배움의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앞으로도 몇 번의 졸업식이 남아 있지만 내겐 공식적인 졸업식이 없다. 조금 더 기다리면 학부모로서의 비공식 졸업은 맞이하게 된다. 그날 성가시게 구는 학부모 e알리미 앱부터 삭제하겠다. 높다란 울타리를 에워싸고 구속하는 학교 그늘을 벗어나면 진정한 배움의 학교 출입문이 넓은 세상으로 열려있다. 방학도 없이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 학교에서 오묘한 섭리를 배우는 나는 아직 학생이다. 온순한 어린이의 마음과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등 떠밀려 졸업하지 않아도 되는, 언제나 재학생이다. 자연이란 스승이 주는 ‘학생증’ 신분은 얼마나 젊고 든든한가.






2020년 1월 

이듬해 2021년 1월, 큰딸은 고등학교를 소리 소문 없이 등 떠밀려 졸업했어요.

새벽밥 먹여가며 아주 먼 데로 학교를 다녔는데 

엄마인 제가 섭섭하더라구요..

"비대면 졸업식"이라면서.


지금도 사정은 나아진 게 없지요.

졸업시즌인데 말이죠.

2020년 작은딸 졸업식이 더 의미 있게 되새겨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늘 그 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