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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Mar 25. 2022

먼 곳을 바라보는 그대에게

코로나 팬데믹 한가운데 봄이 오려나 봐요. 희뿌연 미세먼지 먹은 산수유들이 노란 황달 빛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어요. 목련 나무 위에도 새하얀 가슴 깃털을 가진 아기새들이 막 내려앉아서 나날이 봉긋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바이러스를 삼킨 가족이 생겨났답니다. 목이 아프다고 하네요. 엊저녁에는 쟁반 밥상을 세 개나 차렸답니다. 1호 밥상은 남편 방문 앞에 갖다 주면서 “1호, 대답하라” 불렀더니 쉰 목소리로 “네” 대답합니다.


2호 밥상은 감염을 경계하는 자발적 격리자 큰딸에게 주었구요. 3호 밥상은 7일간의 격리가 해제된 작은딸에게 가져다주었어요. “3호, 대답하라” “네에엥” 건강을 되찾은 맑고 앙증맞은 목소리가 대답합니다.

밥상을 수거하고 나서는 수저를 식초 뿌린 뜨거운 물에 푹푹 삶아요. 딸기와 오렌지를 담은 과일 접시를 똑같이 세 개 나르고 앞치마를 벗어 한숨 돌리려던 그새 남편은 물통을 내놓았군요. 뜨거운 물을 담아주고 나서 할 일을 마쳤습니다. 나는 세 명의 목숨을 책임진 격리병동 총괄 매니저가 되었어요. 창살 없는 감옥으로 변한 내 집 거실에서도 마스크를 쓴 채로 지냅니다. 다행히 내 방은 공원이 내다 뵈는 베란다로 신선한 산소가 들어오고 있어요. 숨을 마음껏 쉴 수 있어 좋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아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체들이 세상을 지배하다니요. 거대한 문명을 이룬 인간들을 통제하고 목숨을 빼앗고 그들의 모임을 억제하고 비행기 이착륙도 뜸하게 만들고 사사건건 개입하는 지금은 그야말로 바이러스 왕국입니다. 심지어 인간들의 경제권도 틀어쥐고 있잖아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빙산의 일각을 믿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어요. 사실 현상을 떠받치는 원동력은 따로 있는데 말이죠. 물질이란 있다가도 사라져 버리고 또다시 나타나기도 하면서 누군가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 것 같아요.


계절도 그래요. 누가 혹한의 겨울을 물리쳐 내보내면서 봄을 부르는지 과학은 대답하지만 신비롭기만 합니다. 우리는 그저 자연의 조화라고 부르지요. 제일 위대한 종교는 자연 아닐까요. 총을 들고 편 가르기 하는 종교전쟁을 보아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어기고 죽이다니요. 국경을 불문 삼림이 우거진 숲속, 인적 드문 바닷가에 깃든 평화를 사랑합니다. 햇빛에 국경이 어디 있나요? 달빛은 이념으로 쪼개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바이러스는 아직도 구식 무기를 들고 피 흘리며 싸우는 미개한 인간들을 비웃고 있을 겁니다. 너희들 까불지 마. 으스대지 마. 잘난 척하지 마. 우린 총이 없어도 세상을 지배할 수 있어. 너희들이 실험실에서 백신을 만들고 치료약을 만들 동안 우린 벌써 변종을 만들어두지. 우릴 따라올 생각은 마. 더 빠르게 번식과 돌연변이를 거듭할 테니. 애초에 조용히 숨어 지내던 우릴 세상으로 호출한 건 너희들이야. 그러니 비난할 자격조차 없는 거지. 우린 다 계획이 있어. 언젠가는 우주 로켓에 실려 멀고 먼 태양계 그 너머로 날아갈 거야. 재밌잖아. 초고층 빌딩, 반도체 칩, 잠수함, 우주선을 만들진 못해도 거기 실려 무임승차하는 게임의 승자는 바로 우리란 걸 잊지 마.


페터, 당신은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요.

내가 컵 안에 쌓아둔 돌산에 앉아서 당신이 떠나온 그곳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요. 친구라도 데려올 걸, 너무 외롭게 했어요. 솔방울 모자를 쓴 당신은 높은 데 걸터앉는 걸 좋아하지요. 창틀에 선반에 앉아서 먼 곳을 바라보네요. 손에는 오리나무 열매를 들고서 당신이 살던 알프스 산자락 통나무 집 샬레를 찾아가고 싶은 거겠죠.


2015년 오스트리아 볼프강 호숫가 길겐 마을에서 당신을 처음 보았어요. 꼬마 목동 같은 귀여운 모습에 손을 냉큼 내밀고 말았어요. 양들을 부르는 휘파람 소리 향긋한 건초 내음 별똥별 스치는 고산지대 여름밤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연모하는 목동이 나타난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한반도의 도시로 데려온 이후 당신은 그곳의 젊음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쓸쓸한 표정으로 향수병을 앓고 있어요. 미안해요. 당신이 속해 있어야 할 알프스의 빙하와 만년설 그리고 미친 듯이 부는 푄 바람으로부터 당신의 영혼을 멀어지게 해서 너무 미안합니다.


거기 산골 사람들은 투박한 성미를 지녔다고요. 저 뜨겁고 건조한 푄이 골짜기 눈을 녹이고 먹어치우면서 불어오면 편두통을 앓는 사람들은 독한 위스키나 별모양 거품이 생기는 오래된 술을 마시면서 푄과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겠지요. 그 바람은 눈이 달려있어요. 심약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뒤흔듭니다. 애써 가라앉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뒤섞어버리고 미래에 오지 않은 불안을 가중시켜 머리를 아프게 하죠. 애증을 시달리게 합니다. 멀어졌던 연인이 눈앞에 나타나는 환상을 불러와서 괴롭게 만듭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게 합니다. 그는 안절부절못합니다. 마음속 회오리바람에 심란해진 그는 술에 의존하고 여자들은 창가에 제라늄을 키우면서 어서 빨리 이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립니다.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허브티를 마시면서 뜨개질을 하거나 피아노를 연주합니다.

알프스 사람들은 창문에 레이스 커튼을 칩니다. 나무들을 뒤흔드는 소란이 안 보이게, 정다운 햇살만 내비치게, 웅웅거리는 푄의 광란을 어떻게 잠재울지 막막해진 그들은 밤 늦도록 푄보다 더 큰소리로 떠들고 노래 부릅니다. 그런데 그 푄이 떠나가면 그리움이라는 후유증이 남습니다. 아마도 아픈 만큼 뚜렷이 각인되는 흔적이겠지요.


당신 이름을 페터(Peter)라고 지은 건 페터 카멘친트의 고향이 스위스 고산 니미콘 호반이기 때문입니다. 페터 카멘친트는 고향 산골을 떠나 도회지로 가서 대학에 다니고 마침내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지만 무미건조한 도시의 삶을 등지게 됩니다. 자신을 키워준 자연의 신비로운 아름다움 속으로 회향하게 됩니다. 허름한 아버지의 산골집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장소임을 깨닫게 되지요. 20대에 읽었던 그 책을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진실한 문학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보고 나에게도 혹 본받을 교훈이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나는 도시의 재즈바 콘크리트 숲 카페 백화점 배달음식을 받아먹으며 문학의 소양을 키우고 싶진 않습니다. 나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며칠 전에는 이대로 여기에서 내 남은 인생이 저당 잡힌다고 생각하자 끔찍한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아무 실현 가능성 없는 희망 고문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구체적인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나의 무기력함에 어떤 새싹 같은 의지도 없음을 알게 되었죠. 도시의 편리함을 취하면서 회의적인 회색분자가 바로 나임을 알게 되었죠.


헤세가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니체가 말했습니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암흑 속에 빛나는 별은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일 수도, 빛을 반사하는 혹성일 수도 있습니다. 빛나는 별은 하늘에만 있지 않아요. 우리가 발을 디딘 대지에도 숱하게 별들은 반짝입니다. 지구도 스페이스를 운행하는 별이니까요. 스스로 빛을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대도 말입니다. 우리는 빛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여기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반짝반짝’ 위성 신호를 내보냅니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려 합니다. 나는 정돈된 질서를 좋아한 걸까요. 혼돈을 정의 내린 질서 말입니다. 이미 정의를 마친 도식은 낡아빠진 개념인데 말입니다. 서로 부딪히고 충돌하고 고민하는 무질서의 혼돈을 끄집어내어 가다듬는 일이 문장의 배열인 걸까요.


시는 마땅히 그럴 겁니다. 고민하지 않은 시가 시일까요?

한 편의 시를 창작하기 위하여 하루 꼬박 몰두합니다. 무엇을 보았고 강한 스파크가 일었습니다. 그 의미를 알아내기 위하여 계속 생각합니다. 때론 며칠 어떤 시는 한 달이 넘게 의미를 얻기 위하여 애씁니다. 마침내 의미 있는 알맹이가 걸러집니다. 그리하여 씁니다. 하나의 정의를 마친 개념을 선포합니다. 나는 이 일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할 수가 없거든요. 그 중독은 즐거움이 따릅니다. 세상이 모르는 가치를 내가 만들고 있다는 감흥을 줍니다.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페터, 당신은 헤르만 헤세의 자화상입니다.

헤세는 시간에 관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간 정신이 발명한 것 중 하나가 시간이다. 시간은 참으로 정교하면서도 묘한 발명품이다. 그것은 더욱 깊은 고통을 주고, 세상을 더 힘들고 복잡하게 만든다. 인간은 오직 시간 때문에 자신이 갈망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된다. 오직 시간 때문에, 이 고약한 발명품 때문에! 자유롭고 싶다면 무엇보다 시간이라는 목발부터 던져버려야 한다.”


시간은 해와 달이 관장합니다. 낮은 해의 시간, 밤은 달의 시간. 햇빛과 달빛이 언제나 우릴 지켜봅니다. 빛은 우릴 축복해주면서 서서히 늙게 만듭니다. 의지하던 목발을 던지고도 두 발로 떳떳하게 서 있으려면 흐르는 강물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붙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시간에서 자유로운 나무와 바위를 바라보면 영원함을 알게 되나요. 생과 사 두 극단을 오가는 삶에 있어서 나의 선택권은 없습니다.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고 불편한 결말을 들춰내기보다는 현재 충만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시간의 비밀은 아무도 모릅니다. 나를 데려오고 데려가는 고향을 믿습니다. 안전하게 데려왔으니 안전하게 데려가겠지요. 시간은 신의 영역입니다.


인간은 제한된 수명을 째깍이는 초침과 시침 분침으로써 구분하여 조바심을 냅니다. 발버둥 칩니다. 나는 느긋하려 합니다. 고장 난 시계를 쳐다보면서 하늘을 살핍니다. 해시계는 정확합니다. 배꼽시계도 있구요. 약속 시간은 잊은 지 오랩니다.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른은 자라서 노인이 됩니다. 노인이 서글프다, 말하지 마세요. 그들은 점점 더 젊어지는 중이에요. 지금은 꽃피어있는 계절이에요. 꽃이 지더라도 나무는 내년을 기약합니다. 꽃은 원래 그 자리 돌아오면 되는 거예요.


매일매일 스쳐 지나는 날들 속에 의미를 찾는 기쁨의 눈을 잘 간직하겠습니다. 무의미가 의미가 되는 그 반짝이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나를 지켜봅니다. 내 위로가 전해졌는지 지금은 들창코를 들어 올려 가벼운 미소를 짓습니다.

페터, 당신의 고향에는 코로나 광풍이 진정되었겠지요. 어서 빨리 지나가길 같이 기도드려요. 헤세가 말한 고통을 잘 참아내고 견뎌내며 깨어있는 의식을 통해서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태가 행복이라고 ,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도 꽃 피는 봄이 와서 총성이 멈추기를 바랍니다.


페터, 좀 답답하지요. 나는 당신을 늘 고정석에 모셔둡니다. 전에는 부엌 선반에 두었었고 지난겨울 내 방으로 옮겨왔는데 당신께 신선한 바람을 쐬어준 적이 없었네요. 창가로 옮겨줄게요. 벚나무가 보이죠. 도톰하게 꽃망울이 차오르고 있어요.

곧 연분홍 꽃구름이 핑그르르 떠다닐 거예요. 당신을 꽃 비행기 태워서 잠시 고향으로 보내드리고 싶어요.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요. 언젠가는 나랑 같이 자연으로 돌아가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겁니다.

페터, 여자 친구를 만들어줄까요? 찾아볼게요. 당신과 어울리는 소박하고 정겨운 여인을. 둘이 나란히 앉아있으면 덜 외로울 거예요. 왜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는지 원…… 조금만 기다려요!


아, 저녁 설거지를 하다가 생각났어요. 당신에게 딱 어울리는 짝이 있어요. 그녀도 유럽에서 당신과 함께 왔어요. 앉아있는 자세도 똑같아요. 작은딸 방에 지금까지 있었답니다. 보라색 꽃치마를 입은 소녀는 라벤더 향주머니를 손에 들고 있어요. 스플리트 라벤더 마을에서 왔어요. 위아래 오르내리는 스프링을 밀짚모자에 달고 있어서 당신이 원한다면 점프하는 묘기를 보여줄 거예요. 아주 예뻐요. 이렇게 가까운 인연을 모른 채로 떨어져 지내게 했군요. 나의 불찰입니다. 한집에서 서로 만나는데 칠 년이 걸렸군요. 천만다행입니다. 한결 밝아진 당신의 표정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이제는 슬픈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지 말아요. 사랑은 가까이 아주 가까이.





이분이 페터입니다. 착하게 생겼죠... 어쩐지 외로워 보여요.

                       

소녀가 다가오자 목동은 빙긋 웃습니다^^ 이제부턴 둘이서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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