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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Jul 31. 2022

Mars,

[maːrz]

요란한 장대비가 여러 번 지나간 밤하늘에 문득 떠오른 얼굴. 불을 끈 창가에 다가가서 내다본 동쪽 산마루 불그스름 빛무리 막 떠오른 별 하나 단번에 알아보았다. 사 년 전 본 동남향 각도보다 정동향으로 치우쳐 더 작아진 모습으로 나타난 시각은 밤 11시. 그때도 이 시각에 만났었지.

반가워, 반가워. 내 그리움 부푼 꽃 한 송이 너라는 얼굴을 알아보고 만나다니…

그간 왜 너를 잊고 있었던 걸까. 

우주 저 너머로 운행 궤도를 멀리했다고 여겼었나 봐. 

같은 태양계 지구 바로 곁에 언제나 돌고 있는 패밀리인데 말이야.


거리는 더 멀어졌지만 아름다운 모습은 여전하구나. 지난밤엔 먼 시선을 던져 너를 마중하고 나서 기쁜 나머지 창문을 한 뼘이나 열어놓고 깜박 잠들었어. 서늘한 바람에 눈을 뜨고 일어나니 내 머리 위에 성큼 다가와서 반짝이는 네 빛깔은 핑크골드, 전에는 핑크 다이아몬드라고 불러줬지.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빛깔은 대상의 본질이야. 무엇에 치중하고 어떤 가치를 발현하는지 취향 성격 내면을 말해줘. 넌 외향성 직관형 온정주의인 것 같아. 빛은 대단한 존재야. 우주를 가득 채운 암흑물질을 뚫고 상상할 수 없는 먼 거리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잖아. 


깨알같이 작은 물질과 정신의 복합체인 나를 빛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내게도 빛이 들어있을지 모르겠네. 그 빛은 지금 깊숙한 곳에 숨어있지. 언젠가 때가 되어 몸에서 나오려 할 때 그 빛은 고통을 수반해. 육신의 껍질을 벗어내려 발버둥 치겠지. 꿈틀꿈틀 고치를 벗는 나방처럼 생살을 찢고 날개가 나오는 과정 아닐까. 빛은 날개이니까.


얌전히 웅크린 나의 빛은 어떤 색채일지 궁금해. 빙하를 녹인 호수 빛깔 에메랄드그린이어도 좋고, 백조자리(시그너스) α별 데네브를 닮은 푸른색이어도 좋아. 너랑 같은 따스한 사랑의 빛깔 핑크골드는 아닌 것 같아. 내겐 너를 닮은 열정이 희미하거든. 어쩌면 내게 없는 빛깔이어서 더 끌리는지도 모르겠어.

끌어당김은 비슷하거나 아주 다르거나 둘 중 하나야. 


지난 6월 NASA 우주탐사선 퍼서비어런스가 화성 돌 틈에 낀 알루미늄 포일 조각을 발견 촬영한 영상을 보았어. 7월에는 가늘고 긴 끈 모양 물체가 발견되었지. 퍼서비어런스 착륙 당시 떨어져 나온 조각으로 추측하고 있다는데 인류의 발길이 닿기도 전 쓰레기를 먼저 보낸 것 같아 미안해. 순결한 네 피부에 상처를 낸 것 같아.


내가 사는 지구는 온난화로 기상이변이 발생하고 있어. 여름을 맞이한 북반구는 폭염으로 인해 대형산불 발생, 섭씨 40도에 이른 열기는 아스팔트 땅거죽이 벌집 쑤시듯 일어나고 철로가 뒤틀리고 그린란드 빙산이 녹아서 반쪽이 된 모습을 보았어. 지구상 모든 빙하는 200년 안에 사망선고를 받는다고 해. 해수면이 높아지면 해발고도가 낮은 섬나라들은 점점 가라앉게 되겠지. 태평양 섬나라 투발루는 50년 이내에 수몰된다고. 투발루 정부 관계자는 무릎이 반쯤 잠긴 바다에 서서 연단을 설치하고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 연설을 하였다지.


어떻게 하면 이 모든 재앙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먼 미래 인류가 지구라는 별에서 엑소더스 이주할 구세주는 바로 너 Mars. 

열기 가득한 오늘 하늘은 짙푸른 바다. 구름이라곤 안 보이는 망망대해 한복판 오렌지빛 태양이 군림하는 섬과 바다는 수평선을 긋고 만나. 끝이 안 보이는 세계는 서로 통하나 봐.


다음 주에는 태풍이 끌고 오는 적도길이 열리면서 폭염과 폭우가 동반되는 한여름이 될 거라는데…… 불에 달군 콘크리트 구조물에 담겨 열대야를 기다리는 밤 11시 Mars, 널 볼 수 있어 행운이야.


도시에서 피서하기 제일 좋은 곳은 박물관이야. 어찌나 시원한지 으슬으슬 춥더라고. 게다가 입장권도 무료, 기록 이전 선사시대를 거닐며 툰드라 동토 지대를 탐험하였지. 그들은 너무나 질박하고 감각적이고 탐미적인 작품들을 지하에 매장해놓았어. 타임캡슐이 된 빗살무늬 토기들은 예술의 시작점이 선(line)을 긋는 행위에서 출발했음을 알려줘. 하나의 선이 출발하여 그칠 때까지 길이의 길고 짧음을 떠나 집중을 하게 되지. 하나의 선은 한 사람의 정신이 실려있어. 그렇게 무수하게 그어진 선들이 모이고 만나 리듬과 질서를 부여, 의미 있는 작품이 만들어져. 


처음에는 민무늬였을 거야. 말랑말랑한 표면이 심심하다고 여긴 누군가가 뾰족한 나뭇가지를 잡고 그려보고 싶었겠지. 내 시선을 끈 검은색 토기는 질서정연한 빗금의 각도를 왼쪽으로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짧게도 긋고 길게도 긋고, 짧은 빗금 사이사이 수평 줄무늬도 넣었어. 파도에 일렁이는 물결을 보는 것 같아. 작품을 미리 구상하여 체계적으로 그렸음을 알 수가 있어. 그 규칙과 배열이 놀라워. 



붉은간토기는 민무늬 토기인데 코럴 색채, 광택 나는 질감 그리고 아담한 형태미까지 갖춘 여성적인 작품이야. 채색하지 않은 흙의 어떤 성분이 이런 색채를 띠게 만들었을까. 광택은 표면을 갈아서 낸 거래. 코럴 립스틱을 바른 도자기 피부 여인이 떠올라. 



시간의 숲을 지나고 지나 신라 시대에 이르러 곡옥이 달린 금관 금허리띠를 보고선 그 압도적인 화려함에 넋을 잃게 되었어. 저 금관의 주인공은 태평성대를 이룬 신라의 성군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서라벌의 기와집들을 수놓은 연꽃무늬 수막새들은 사방으로 향기가 퍼져나가는 사계절 연꽃을 피워냈겠지. 옛 연못 퇴적층에서 나온 아라가야 연꽃 씨앗은 물과 햇빛을 만나자 해쓱한 홍련을 피웠다지. 귀퉁이 깨어져 허물어진 수막새마저 완벽한 돋을새김으로 진흙 속 꽃들을 피워내고 있어. 



16세기 문인 관료 ‘정사신이 참석한 계회도’ 병풍 앞에선 내 무의식에 촛불을 밝히는 한줄기 빛이 스며들어 흐릿한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어. 정사신(1558-1619)이 처음 벼슬에 나아간 때부터 4년 동안 여섯 번 참석한 계회(모임) 그림을 모은 병풍이래. 조선 시대에는 과거에 합격한 동기끼리, 같은 관청에서 일하는 동료끼리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모임이 성행했고 모임 장면을 그림 그려 나누어 가졌대. 꿈속에서 본 이상향을 그린 몽유도원도를 보는 듯이 강가 널따란 너럭바위 위에 갓을 쓴 선비들이 앉아있고, 짐을 부린 마부와 막 도착한 선비, 강물에 뜬 목선들의 한가로움이 그려진 황톳빛 스크린이 등장인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생명력을 복원시켰지. 



고려 시대 비천상이 새겨진 범종 소리 “징- 징- ” 스피커에서 흘러나오자 시간이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차가운 옛 바람이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거야. 옛 내음이, 아주 오래된 향기를 맡은 듯 어딘가로 스며들어 옛사람들과 교감한 것 같았어.

시간을 운행하는 별들은 알까?

영화를 뒤로한 채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Mars, 넌 지구상에 흘러간 인류 역사를 생생하게 스카이뷰 했겠지. 

어쩌면 내가 본 박물관의 과거 시간을 압축한 채 빛으로 떠오른 너의 오늘 밤과 나의 만남 또한 한순간 사라져 갈 단 한 점, 우리가 서로 알고 있다는 동질감 동류의식 이것이 언젠가는 결속되어 맺고 맺히는 구심점이 되어줄 거라 믿어. 


Mars, 태양신 라(Ra)를 숭배하던 이집트 나일강 유역 사막여우였는지도 몰라. 

낮 동안 달궈진 바위에 올라 사막 위로 불어오는 은모래 바람맞이 꼬리 깃털 휘날리며 은하수를 올려다보던 여우. 그 여우가 더 늙고 뜨거워진 태양을 향해 투덜대며 머리를 빗질하는 여자가 되었다는 2022년. 지구본을 거꾸로 돌리든 서에서 동으로 빨리 돌리든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첨탑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어. 그 화살은 과녁에 꽂히지 않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 그냥 나아갈 뿐이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직접 보고 촬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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