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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Nov 19. 2022

한 페이지가 지나간다

“웡웡웡웡~”

“웡웡웡”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짙게 가라앉은 어둠을 뒤척여 음향효과를 유발하면서 곤히 잠든 연못에 돌을 던졌다.

음량으로 보아하니 상당히 덩치가 큰 개다.

새벽 3시, 깊이 잠들어있어야 할 시간이 맨정신으로 말짱하게 깨어났다.

알람을 맞춰놓은 5시 반이 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다시 잠들 길을 잃어버렸다. 

창문을 열고 소리 지르고 싶다.

‘야, 너 뭐야? 내 잠 물어내.’


딸아이 수능 시험 치는 오늘, 하필 오늘 저 들개는 기다렸다는 듯이 불쑥 어디서 헤매다 나타났단 말인가. 

자정도 아니고 새벽 네 시도 아닌 세 시 이 야심한 시각에…

마치 우리 집 창문을 보고 짖어대는 것 같았다.

늑대과 야행성 들개가 분명하다. 

쳐다볼 보름달도 없건만 뉘 집 창문에 도둑이라도 붙었단 말인가.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아이도 깨어났는지 뒤척거리는 눈치다. 

아! 이게 뭐람.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들개는 어둠 속에 우두커니 짖어대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찌어찌 스르르 잠들 길을 찾아서 잠이 들었다. 


알람 소리에 다시 깼다. 머리가 띵하다.

어제 불려놓은 쌀을 압력밥솥에 부어 가스불을 켰다.

버터를 녹인 팬에 마늘을 집어넣고 들들 볶다가 미리 손질해놓은 전복을 구웠다. 칼집 넣은 윗부분이 꽃처럼 화들짝 벌어져 피어났다. 메추리알 장조림은 전자렌지에 넣어 데우고 묵은지 김치볶음도 따끈따끈 다시 볶았다. 애호박 양파 청양고추 버섯 두부 넣어서 어제 끓여놓은 된장찌개를 바글바글 끓였다. 


아이를 깨워서 이른 아침밥을 차려주고 보온밥통에 뜨거운 밥 찌개 반찬을 차례차례 정성껏 담았다. 

큰아이 수능 날에는 계란말이를 싸주었다.

학력고사 세대 나는 친척 집에 올라와서 그 새벽 차갑고 미끈거리는 물미역을 초장에 찍어 먹었었다. 

그 느낌이 지금도 구강에 맺혀 생경하다. 폐를 끼친 것만은 분명하다.


아이도 개소리에 잠이 깼다고 한다.

눈두덩이 부어서 툴툴거린다. 

아, 그 개 꽁무니를 찾아서 혼쭐 내주고 싶다.

내 살아온 평생 한밤중 개 짖는 소리에 잠이 깨기는 처음이다.

차 안에서는 저도 나도 조바심을 냈다.

이른 시각 차들은 왜 이리 막히나? 신호등은 왜 우리 차 앞에서 끊어지나? 

예상시간보다 15분 지체되어 고사장 입구에 도착하니 경찰관들이 차량 안내를 하고 있었다. 

잠시 잡아준 손 스르륵 뺀 아이는 교문으로 종종걸음 사라졌다.


기도하고 심호흡 긴장을 풀어라, 등등 해주고 싶었던 말들이 입안에 갇혀 웽웽거렸다. 

이게 다 그 개 때문이다. 그 개 때문에 잠을 망쳐서 머리가 띵해서 아무 생각도 안 났던 것이다. 

아이가 들어가고도 자리를 쉽사리 떠날 수 없었다.

다른 학부모들은 아이 하차 후 쌩하니 사라진다.

교문에 매달려 엿을 붙이고 간절히 기도하던 그런 모습들 어디로 갔을까.  

도롯가에는 차 두 대만 달랑 남았다.

남편과 내려서 학교 주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수능이 치러지는 이 학교는 아이 고입 원서 쓸 때 많이 고민했던 학교라서 더 각별하다. 면학 분위기가 좋은 두 학교를 두고서 고민 많이 했었다. 결국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선택했는데 지금에 이르러 살펴보니 양지바른 이 학교는 공원이 둘러싼 주변 여건이 쾌적하고 학습 분위기를 반영한 침착한 벽돌 건물이 무척 맘에 든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 학교로 선택했을 것이다.

수능을 이 학교에서 치게 되다니, 이상하게 마음이 놓인다. 


온종일 걸리는 시험 아니던가.

개장을 30분 앞둔 근처 수목원에 도착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역시 우리뿐이다. 놀이공원 줄 서서 기다리는 아이같이 무작정 기다렸다.

게이트 문이 열리자마자 입장, 아침 이슬을 밤새 흠뻑 머금어 신선한 숲이 일제히 두 팔 벌려 맞아들인다. 

인적이라곤 없는 넓은 수목원이 불면에 시달린 나를 향해 산소 탱크를 열고서 단풍이 물든 나무들, 천상의 새소리를 들려주었다. 


야자나무 선인장 몬스테라 극락조 말바비스커스 덩굴 꽃을 매단 클레로덴드럼 톰소니에 식물이 열대 밀림을 가득 이룬 실내 식물원을 지나 얕은 물이 고인 습지 생태원에 이르렀다. 

둥그스름한 바위들이 듬성듬성 박힌 수면 위로 적갈색 잎을 떨구기 직전 메타세콰이아 나무들이 거꾸로 자라고 있었다. 이따금 내려앉아 목을 축이며 지저귀는 새소리가 환상적이다. 바위는 무인도를 상징하는 오브제, 늦가을을 장식하는 이 공간은 거대한 설치미술 갤러리이다.


물구나무서서 상하를 거꾸로 바라보면 안 보이던 것을 보이게끔 획기적인 시각을 열어준다. 고정관념에 갇혔던 우열이 뒤집어진다. 잘생겼던 얼굴이 못생겨지고 하늘이 땅이 되고 단점이 장점으로 승화된다. 불가능한 뒤집기의 끝판왕 수면 거울을 내게 비추면 어떻게 될까. 안 바뀌는 자신이 답답하다면 수면에 비춰보자. 

뭔가 달라 보일 테니까.


1교시 국어 시간을 지나 수학 문제지를 마주하고 있을 시각, 아이를 응원하는 파이팅을 외친다. 

고등학교 입학과 더불어 코로나가 터진 코로나 세대는 학력 격차가 크다고 들었다. 

2년 동안 반은 학교에 가고, 반은 집에서 온라인 학습을 하였었다. 

3학년이 되어 매일 등교하게 되면서 태워다 주고 태워오면서 보낸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후다닥 달음박질 빨리 지나갔다.

질풍노도 사춘기를 지나며 많이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오후에는 늦가을이 제철인 줄 알고 계절을 속인 장미 정원에서 장미 향이 실린 바람을 마시며 행복한 이 시간, 그간 고생한 엄마를 위해 아이가 선물한 보너스 같았다. 특히 꽃잎들이 빽빽하게 붉은 미로를 감싼 장미들이 눈길을 끌었다. 


생명의 신비와 심장 정념 관능 유혹을 상징하는 붉은 장미는 사랑의 여신 베누스의 꽃이자 골고다 언덕에서 흘린 예수의 피에서 태어난 꽃이라고 한다. 장미 가시는 고통, 피, 순교를 의미하고 장미는 침묵, 비밀의 의미가 있어 서양의 회의 장소에선 장미가 그려진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생의 비좁은 관문을 지금 지나고 있는 아이도 가시 터널을 지나 언젠가는 자신의 빛깔로 꽃 피우게 되리라. 장미를 움켜쥔 사람들의 손에도 손 가시가 달려있다. 투박하고 거친 손은 가시가 박힌 손, 그 손이 피 흘리고 있다면 겨울이 다가서기 전에 바른 즉시 보송보송 핸드크림을 쥐여주고 싶다. 박힌 가시를 빼내는 힘은 따스한 관심과 사랑 아닐까. 


아이와 가까운 공간에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며 머리가 맑아지고 컨디션이 점점 좋아졌다. 

이제 영어를 치르고 막바지 과탐 영역이 시작되었다. 

학교로 돌아가서 교문 근처에서 기다렸다.

그새 학부모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엄마, 아빠들은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들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자식 뒷바라지하는 어깨들이 지치고 무거워 보인다. 시험 종료 시각이 한참 지나고 나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 틈으로 쓱 나타난 딸내미, 표정이 밝다. 

“수고했다, 수고했어!”


저녁노을을 등진 호수를 우측에 끼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느긋하게 음악을 듣는다. 

수능을 앞둔 지난 몇 달간 음악도 잡음에 불과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가 외쳤다.

“엄마, 바닥에 깔린 이 책들 다 버려.”

“성적 나오고 버려도 안 늦거든.”


한밤중에 수험생과 학부모 잠을 깨우고 달아난 그 개는 어디로 갔을까?

무슨 메시지를 주고 달아난 건 아닐까?

나쁜 개는 아닌 것 같다.

학부모로서 짐을 내려놓는 긴 하루, 한 페이지가 지나간다.       




                  

실내 정원


바위 오브제가 놓인 설치미술 갤러리


아름다운 장미정원, 장미를 가까이할 땐 가시를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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